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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맨날 예수님 이야기만 해요?

[유형선 칼럼]

작은 딸 수린이는 봄이 오면 초등학교 3학년이 됩니다. 초등학교 3학년은 첫영성체 교리반에 등록할 수 있는 최소 학년입니다. 2월 중에 첫영성체 교리반 신청을 하면 3월부터 교리반이 시작됩니다.

지난 주 주보에 공지된 첫영성체 교리반 모집 공고를 보며 저는 작은 딸에게 첫영성체 교리반 등록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게다가 성당 휴게실 책장에서 ‘첫영성체 교리서’도 마침 눈에 띠었습니다. 책을 꺼내어 작은 딸에게 보여주며 교리반에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만 첫영성체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큰 딸과 아내 눈꼬리가 이내 올라갑니다. 아빠가 작은 딸에게 너무 강제적으로 훈계하는 것 같다는 겁니다. 큰 딸이 마치 작은 딸의 대변인인 듯 저에게 목소리 톤을 조금 높여 이야기 합니다. 수린이는 첫영성체 하기로 이미 마음 먹었으니 아빠가 책까지 들이밀며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행동이라는 겁니다. 저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한 주가 지나고 다시 주일이 되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한 두 시간 지났을 겁니다. 작은 딸이 제 손을 잡으며 같이 놀자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그러면 예수님 이야기 해줄까?’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딸이 미간을 찌푸립니다.

“아빠! 또 예수님 이야기에요? 아빠는 맨날 예수님 이야기만 해요?”

저는 다시 한번 조용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러나 미련이 남습니다. 작은 딸과 첫영성체와 예수님 이야기를 어떻게든 한번 해보려고 머리를 굴려 보았습니다. 인터뷰를 하자고 작은 딸을 불렀습니다. 아빠가 질문하면 수린이가 대답하는 인터뷰! 작은 딸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사진=한상봉

Q. 수린이는 무엇을 좋아하나요?
A. 사랑이요. 사랑이 좋아요.

Q. 사랑이 왜 좋나요?
A. 사랑을 생각하면 뭔가 신비로워요. 그래서 사랑이 좋아요.

Q. 언제 사랑을 느끼나요?
A.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할 수 없어요. 다른 질문을 해주세요.

Q. 가족끼리 뽀뽀하는게 좋나요?
A. 네. 아주 좋아요.

Q. 제일 좋은 게 사랑인가요?
A. 음…… 사랑도 좋지만 꽃도 좋아요. 이런 이야기 하려니 너무 부끄러워요. 그래도 꽃이 좋아요.

Q. 어떤 꽃이 좋나요?
A. 모든 꽃이 다 좋아요. 그 중에서도 장미가 좋아요. 장미는 슬플 때도 선물할 수 있고, 기쁠 때도 선물할 수 있어요. 제가 다니는 초등학교 교화가 장미에요.

Q. 아빠가 수린이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너무 자주 하나요?
A. 네! 너~무 자주해요. 매일매일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좋아요. 아빠랑 이야기를 나누는게 좋기 때문이에요.

Q. 수린이는 봄이 되어 3학년이 되면 첫영성체 교리반에 다닐 건가요?
A. 네. 첫영성체 교리반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언니처럼 엄마처럼 미사때마다 영성체 할 거에요.

Q. 수린이는 영성체를 왜 하기로 결정한 건가요?
A. 잘 모르겠어요.

Q. 수린이는 성체를 먹어본 적 없지요?
A. 아니요. 먹어본 적 있어요.

Q. 에잉? 언제 성체를 먹어봤어요?
A. 언니가 조금 떼어서 나누어 준 적이 있어요.

Q. 어떤 맛이었어요?
A. 아주 맛있었어요. 뻥튀기 맛이었어요.

Q. 사실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거 알지요?
A. (고개를 흔들며) 아니에요. 몰랐어요.

Q. 성체를 받으려면 성체의 의미를 공부해야 해요. 그래서 아직은 성체를 받으면 안돼요.
A. (입을 삐죽거리며) 네에~.

Q. 수린이는 배우고 싶은 게 있나요?
A. 네! (얼굴에 화색이 돌며) 악기를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미술도 살짝 배우고 싶어요.

작은 딸과 인터뷰를 마치고 주일 미사 참석하러 성당에 갔습니다. 아빠는 맨날 예수님 이야기만 한다는 작은 딸 이야기가 미사시간 내내 머리속에 맴돕니다. 꼰대 아빠로 살아왔구나 싶습니다.

성체를 받기 위해 중앙 복도로 나와 줄을 서는데 작은 딸은 여느 때와 같이 가슴에 두 팔을 교차 시켜 X자를 그리며 저를 따라 나옵니다. 성체를 받고 자리에 돌아와 잠시 눈을 감는데도 여전히 마음이 심란합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가톨릭 성서모임 창세기반 모집한다는 안내문이 보입니다. 매주 화요일 저녁미사 후 공부한답니다. 아이쿠! 딱 걸렸구나 싶습니다. 더 이상은 입으로만 예수님 타령하는 꼰대 아빠 되지 말라고 기회를 주시는 것도 같습니다. 딸에게 영성체 교리공부 꼭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 이전에 먼저 공부하는 아빠부터 되라는 뜻 같기도 합니다.

홀린 듯이 신청서를 적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화요일 저녁마다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것만 잊지 마세요!”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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