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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을 주교좌 성당에 건립하자

[김유철의 Heaven's door]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무엇인가

가톨릭대사전에서 설명하는 '십자가' 도입부다. “가로와 세로의 십자모양으로 교차되는 2개의 나무로 이루어진 것으로 십자가는 원래 이집트, 카르타고 등의 고대 동방에서 죄인의 양 팔과 발에 못을 박고 매달아 처형하던 도구였다. 이 형벌이 로마제국에 유입된 뒤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자, 그 후로는 십자가는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 제단, 죽음과 지옥에 대한 승리, 그리스도를 신앙함으로써 당해야 하는 고통 등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제대 위에 그 십자가를 모셔놓고 기도하고 기억하고 새긴다. 또한 집이나 사무실과 같은 공간과 자동차와 같은 교통수단, 반지와 목걸이 같은 장식품에도 십자가를 새기고 그 고통과 희생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새기려한다. (정말 그런 의미일까? 라는 반문은 여기서는 내려놓자.) 그만큼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신앙의 모든 것이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다리와도 같은 것이다.

 

사진=한상봉

일본천주교회와 한국천주교회의 사뭇 다른 고백

“우리들은 일본 교회의 모든 분들과 함께 다시 한 번 과거의 발자취를 돌아보아 반성하고, 그리스도의 빛으로 전쟁의 참상에 대해 깊이 인식하며, 미래의 평화 실현을 위해서 전력을 다할 것을 결의하는 바입니다. … 확실히 일본군은 한반도에서, 중국에서, 필리핀에서, 그 밖의 여러 곳에서, 그곳 주민들의 생활을 짓밟고 긴 세월을 걸쳐서 전해온 훌륭한 전통과 문화를 파괴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잔학한 파괴행위를 했으며 더욱이 무기도 지니지 않았던 여성과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무수한 민간인들을 살해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주변에는 강제적으로 한반도에서 연행되어 온 재일 한국인과 전쟁 종군 위안부들이 있습니다.“(일본가톨릭주교단 ‘평화에의 결의-전후 50년에 즈음하여’ 1995년. 일부)

참으로 놀랍고도 부끄럽지만 민족의 십자가를 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천주교회가 아닌 일본천주교회가 대리 고백한 것이다. 조금 더 부끄러운 일은 한국천주교회는 일본 주교단의 발표문이 나오고도 5년이 지난 2000년 대희년을 맞아 고백한 지난 세기의 반성문 7항 중 2항에서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 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한국천주교회의 ‘쇄신과 화해’ 2000년 대림1주일)라는 불투명한 고백 속으로 일제강점기의 친일행위 민족의 아픔을 외면한 죄를 뭉갰다. 그것은 십자가를 걸어놓은 교회에서 스스로 십자가를 외면하는 행위였다. 십자가는 2000년 전 예수의 1회용이었을까? 과연 한민족의 십자가는 어떤 길을 걸었을까?

조선의 소녀.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영화 <아이캔스피크>(2017. 김현석 감독)에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워싱턴의회에서 공개한 내용을 사람들은 극화로 보았지만 실제로 1991년 8월 14일 故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적으로 처음 증언했다. 모두의 할 말을 잃게 한 순간이었다. 부끄럽고 참혹한 일이지만 덮어두려야 둘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고 기록하고 회복해야 할 민족의 상처이자 십자가였다.

알려진 대로 일본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1931년 이후 일본군의 효율적 작전수행이라는 미명아래 1945년 패전 때까지 무려 8만~20만 명의 일본군 위안부를 이른바 ‘군위안소’에서 성노예로 삼았다. 위안부 연구자인 요시미 요시아키는 강제 동원된 여성 중 조선 소녀의 비율이 무려 절반이 넘는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성들은 당시 11세에서 27세였고 대다수 취업사기나 유괴, 납치 등의 방식으로 동원되었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자료 참조)

1990년 1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결성되고 1992년 1월부터 일본대사관 앞에 모인 수요집회는 지난 1월 3일 1316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를 열었다. 그 사이 2007년 미 의회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통과되었고, 2011년 12월 1000차 수요집회 때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그러나 박근혜정권과 아베정권은 2015년 12월 28일 이른바 ‘한일 위안부 합의문’을 통해 “이번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음을 확인”하며 “향후 유엔 등 국제 사회에서 본 문제에 대한 상호 비판을 자제한다.”는 악의적 합의문을 발표했다.

 

사진=한상봉

한국천주교회와 주교회의에게 제안한다

한국천주교회 모든 교구의 주교좌 성당에 평화의 소녀상을 모시자. 처음에 말한 십자가의 의미로서 그리스도인, 특별히 천주교회가 지닌 평화의 신앙으로서 민족의 십자가 품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 마치 2000년 대희년 때 당시 교종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파를 막론하고 로메로 대주교를 비롯해 마틴 루터 킹 목사, 알도 모로 이탈리아 총리, 폴 슈나이더 목사, 일본 수용소에서 숨진 성공회 신도, 아프리카의 조캠 선교사 등을 20세기의 순교자로 선정하고 이들의 업적을 치하했듯이 새로운 눈으로 민족의 순교자를 교회의 이름으로 품고 경배하며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민족의 부활을 하느님께 청할 것을 제안한다. 평화의 소녀상은 종교를 넘어선 민족의 십자가다.

또 하나는 한일 주교모임에 대한 것이다. 한일 주교들은 20여 년 전인 1996년부터 매년 정기 교류모임을 통해서 양국 공통의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서로 협력했고 그 주제를 다양한 사목 현안으로 폭을 넓혔다. 1회 주제였던 한일교과서 문제를 비롯해서 그동안 이주민, 사제양성, 청소년 교류는 물론 탈핵과 자살, 평화를 주제로 삼았으며 가장 최근 2017년 23회 교류모임에서는 ‘노인과 교회’가 주제였다.

특이한 것은 2014년 20회 교류모임의 주제가 ’국가주의를 뛰어넘는 복음적 삶‘이었는데 한일주교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거처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직접적인 주제는 한 번도 없었다. 애초 인간존엄성을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교적인 시각에서 두 나라의 역사를 본다면 피해 갈 수 없는 주제이고 이미 여러 주교들은 그 피해자들을 직접 방문한 바도 있다.

한일주교들이 다가오는 24회 교류모임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소녀상을 주제로 삼아 토론하여 공동성명서로서 목소리를 낸다면 두 나라 신자들은 물론이고 정부와 세계인들마저 그 실상에 대해 주목할 것이고 문제의 평화적이고 사목적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주교좌 성당마당에 들어선 평화의 소녀상과 성모상 그리고 십자가는 한국천주교회의 아이콘이 될 것이다.

김유철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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