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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교도소에서 싹튼 신앙

[최충언 칼럼]

내가 가톨릭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원주교구의 최기식 신부의 영향이 컸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나는 김천 소년교도소로 이송되었다. 당시 나이가 스무 살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였기 때문이다. 징역생활이 2년이 되어갈 무렵, 툿찡포교 베네딕도수녀회의 로사 원장수녀에게 교리공부를 받게 되었다.

주일이면 김천 지좌동 성당에서 신부와 신자들이 교도소 안에 와서 미사를 드렸다. 나는 일반재소자와 떨어져 맨 구석진 자리에서 로사 수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나는 1983년 12월 23일을 잊지 못한다. 이날은 내가 ‘플라치도’라는 세례명으로 김종필 뽈리까르뽀 신부에게 세례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마침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담당교도관이 몰래 선물로 통닭을 넣어줬던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날은 형집행정지로 출소 통고를 받은 날이었다.

출소해 의대에 복학을 하게 되었으나 급성간염에 걸려 휴학을 하는 둥 결국 10년만에 의사자격증을 얻었다. 이어진 인턴과 외과 레지던트 생활은 물리적으로 성당을 다닐 수 없는 환경이었다. 전문의가 되고도 냉담을 하다가 구제금융을 받던 때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구호병원>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고, 자연스레 성당도 나가게 되었다. 매일미사를 갈 정도로 열심이었던 것 같다.

레지오 마리애와 빈첸시오회 활동도 하고 본당 사회복지 분과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 새로 부임해 온 신부와 갈등이 생겼다. 신부는 너무나 사치스럽고, 본당 어르신들에게 함부로 말을 하고, 회계부정 사건이 터졌다. 자세한 내용은 차마 쓰지 못하겠다. 사목회의에서 따졌다. 사무장과 입을 맞추어 통장까지 새로 만들고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변명에 불과했다. 신부에게 대들면 독성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군말 없이 성당을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냉담을 하다가 이주노동자들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가톨릭노동사목을 알게 되었다. <도로시의 집>이라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소를 만들고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면서 가톨릭센터에서 주일마다 열리는 영어미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로 필리핀과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많았다. 되돌아보면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신부들과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세요. 너무 교회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 신앙생활에 지장을 받아요. 그냥 주일미사에 꼬박꼬박 나가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나이 지긋한 어떤 신자가 언젠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교회에서 시험에 드는 사람들은 대개 교회 일에 헌신적으로 동참하던 이들인 경우가 많다. 마음을 담아 일해보지 않은 이들은 시험에 들 일도 별로 없다.

 

사진출처=pixabay.com

봉헌금의 액수가 그리 중요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열어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다보면 상처를 받기가 쉽다. 그 누군가가 신부일 경우는 교회에 멀리하고 냉담하기가 더욱 쉽다. 상처가 두려워 마음의 빗장을 지르고 살게 된다. 어차피 삶은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고, 또 그것을 치유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 일체유심조라 상처를 받아도 좋다는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야 속이 편할 텐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어떤 계기로 다른 교단의 작은 교회에 잠시 다닌 적이 있다. 미사 형식은 가톨릭과 비슷했다. 집에서 거리가 멀었지만 주일마다 거르지 않고 다녔다. 신부와 신자들이 미사 후 점심을 함께 나누고 관계가 가까워졌다. 그런데 어느 주일에 공지사항 시간에 신부가 봉헌금 봉투에 신자 이름을 적도록 하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다음 주부터 그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루카 21, 1-4)

봉헌금의 액수가 그리 중요한가? 적게 낼 수밖에 없는 가난한 신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느껴져 화가 났다.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오백년 전 유럽 가톨릭이 얼마나 부조리했으면 독일에서 루터, 스위스에서 츠빙글리와 칼뱅 등이 거의 동시에 종교혁명을 일으켰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그들이 외친 교회개혁을 가톨릭이 수용했더라면 가톨릭과 개신교의 분열은 피할 수 있었으리라.

배려는 작은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다

우리세대는 추운 겨울에 손님이 찾아오면 자글자글 끓고 있는 안방의 아랫목에 먼저 앉으시라는 부모님들의 배려의 미덕을 보며 자랐다. 남에 대한 배려를 그렇게 배웠다. 배려는 작은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다. 자신을 억지로 미화하는 겉치레 생색이 아니라 진실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는 거울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배우게 하는 지혜이기도 하다. 남의 생각과 마음을 소홀히 취급하고 무시해버리는 교만하기 짝이 없는 생색내기 배려는 남을 지치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우울하게 만든다. 배려는 우리 내면의 이기심과 사심과 사욕을 한 곳으로 모아 정화시켜주는 무한의 힘이기도 하다.

자본이 하느님이 된 세상에서 교회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최근에 교회를 둘러싸고 일어난 불미한 일들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서로 사랑하기에도 짧은 게 우리의 생애가 아닌가. 성경의 종말 심판기준은 종교나 신앙도 아니고 기도와 예배도 아니다. 오직 불행한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가련히 보며 배려하는 연민과 측은지심, 자비심을 지니고 보살행, 자비행, 애덕행을 실천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종말심판의 잣대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야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2코린 8, 15)는 말씀이 이뤄진다.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던 초대교회 공동체의 신비가 이 땅에도 가득해지길 기도한다.

 

최충언 플라치도
외과의사.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단팥빵-어느 외과의사의 하루> 저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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