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 주교 "본당은 동네의 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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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주교 "본당은 동네의 샘입니다"
  • 권혁주 주교
  • 승인 2017.12.1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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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권혁주 주교 2018년 교구장 사목교서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본당의 쇄신-

1. 지금 우리 교구는 2019년 교구설정 50주년을 준비하며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는 말씀아래 ‘쇄신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이 쇄신 운동은 교구 고유의 모습을 찾기 위한 운동입니다. 교구 고유의 모습은 교구를 이루고 있는 가정과 본당으로부터 출발해야 하기에 작년에는 ‘가정의 쇄신’을 통하여 참된 가정 교회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고, 올해는 ‘본당의 쇄신’을 위해 함께 마음과 힘을 모으고자 합니다.

본당은 친교의 집입니다.

권혁주 주교

2. 먼저 본당이 어떻게 집이 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가정이 가장 작은 교회의 단위로서 모든 교회 공동체의 토대를 이룬다는 생각은 가정의 쇄신 없이 본당의 쇄신도 불가능하다는 발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가정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 매우 다르지만 함께합니다. 가정에서는 타인과의 관계의 근본적인 태도를 배웁니다. 본당은 바로 이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집은 가정의 중요한 토대입니다.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편안하고 따뜻한’ 집에서 힘을 얻듯이, 본당 소속 모든 신자들도 사랑과 일치로 친교를 이룬 본당에서 영적인 힘을 얻어 그 힘으로 세상을 위한 일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당은 또한 혼자 소외되어 살아가는 사람, 집이 없는 사람,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집과 가정이 될 때’(‘새로운 본당’, P.23), 진정으로 친교를 이루고 친교를 사는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3. ‘친교’란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말합니다. ‘친교’라는 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을 특징짓는 중요한 말마디 중 하나입니다. 이 말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천명한 데서 비롯되며 이 말은 ‘백성’이라는 말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교회의 참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백성의 친교를 사는 교회’의 모습을 통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구원공동체’의 모습을 이 지상에서부터 구현해나가는 사명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본당이 친교의 집이어야 한다는 것도 바로 교회의 이러한 기본 사명을 잘 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4. 교회의 친교가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공동체 모델은 무엇보다도 초대교회 첫 신자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2~47) 이처럼 ‘교회의 친교’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초대교회 첫 신자들의 공동체 생활을 오늘날 본당의 전형으로 여기는 이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당은 오로지 ‘형제애로 한 마음을 이룬 하느님의 가족’이며, ‘형제애가 감돌고 따뜻이 사람을 맞아 주는 큰집’이고, ‘신자들의 공동체’입니다.”(평신도 그리스도인, 26항) 본당 공동체 안에는 하느님과의 친교, 형제적 친교, 교계적 친교가 잘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곧 함께 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함께 형제들이 서로를 위해 주고 사랑하며, 사제와 신자들이 함께 기쁨의 친교를 일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당도 가정처럼 ‘친교의 학교’가 되는 것입니다.

본당은 백성이 함께 기도하는 집입니다.

5.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본당에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도 들으며 하느님 백성의 전례를 거행합니다. 전례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신앙을 고백하며 본당 공동체의 쇄신을 이루어 나갑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2017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은 한국천주교회의 본당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1975년 이후 42년 만에 개정된 새로운 전례서로 새로운 분위기에서 모든 본당 공동체가 성찬례를 거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전례의 쇄신 안에서 본당의 쇄신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새로 나온 「로마 미사경본」(제3표준판) 자체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지속된 전례의 쇄신과 적응을 위한 오랜 노고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6. ‘성찬례가 교회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전례의 쇄신으로 본당의 쇄신을 이룬다.’는 뜻으로 알아들으면 어떨까합니다. “전례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교회는 복음화 됩니다. 전례는 또한 복음과 활동을 경축하는 것이며 자신을 내어주는 새로운 힘의 원천입니다.”(「복음의 기쁨」, 24항) 우리 공동체가 모여 드리는 미사성제는 천상잔치의 미리 맛봄입니다. 특별히 모든 신자들이 함께 모여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주일은 “즐거움과 휴식의 날이 되도록”(전례헌장 106항) 해야 합니다. 미사성제가 엄숙하고 경건하게 거행되어야겠지만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성체를 모심으로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사제와 신자가 함께 노력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7. “교회는 기도하는 대로 믿는다.”(Lex orandi, lex credendi)는 교회 격언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본당 안에서 기도하는 방법도 배우고 믿음도 키워나갑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당은 기도하는 학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례 받은 새 영세자가 기도하는 법을 잘 모를 때 다양하게 기도하는 방법을 익히고 배울 수 있는 곳도 본당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우고 익히는 것도 바로 본당 생활을 통해서입니다.

본당은 동네의 샘입니다.

8. 본당은 “갈증을 느끼는 모든 사람이 찾아 드는 ‘동네의 샘’”(「평신도 그리스도인」, 27항)이 되어야 합니다. 본당은 지역의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집이 되어야 하고,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의 목마름을 풀어드렸듯이 본당은 목마른 자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즉 지역의 신자들뿐만 아니라 지역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 구성원으로 생각하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지역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해야 하며 본당 공동체는 그들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9. “본당 공동체는 항상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다면 한 때 갈릴래아의 거리를 다니셨던 것처럼 어디를 다니실까? 누구를 방문하실까? 누구와 말씀을 나누실까? 무엇을 하실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하면 금방 떠오르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분명 사제관이나 본당에만 머물러 계시지는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21세기의 본당은 자주 성당 문 앞에서 서성이는 이주민들을 발견하면서 온 세상을 향해 열린 인간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합니다.”(새로운 본당, P.47)

평신도 희년의 축복을 함께 나누는 본당

10. 한국천주교회는 2017년 평신도 주일인 11월 19일부터 2018년 평신도 주일인 11월 11일까지 1년을 ‘평신도 희년’으로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2018년에 설립 50주년을 맞는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한국 평협)는 주교회의에 평신도 희년 선포를 요청했고, 주교회의는 전국 모든 신자들이 평신도 사도직을 보다 활발히 실천하고 확신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 희년을 선포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희년의 특별은사인 전대사를 모든 신자들이 받을 수 있도록 교황청 내사원의 특별 허락도 받았습니다. 각 교구에서는 ‘평신도 희년 전대사 지침’을 발표하면서 모든 신자들이 희년의 축복을 누리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모든 본당들은 신자들이 희년의 축복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사목적인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1. 한국 평협은 “내가 너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는 말씀을 주제로 삼아, 신심운동으로는 전대사 참여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를 위한 기도운동을 벌이고, 실천운동으로는 「그리스도인답게 살겠습니다.」운동의 지속적인 실천과 함께 희년의 정신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실천운동을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그 예로 전·월세 올리지 않기, 원수진 이웃과 화해하고 용서하기, 냉담교우 회두 권면, 가난한 나라 어린이 원격 입양 운동 등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한국 평협이 바라보는 평신도 희년의 궁극적 목표는 본당 공동체 복원입니다. 빈부 차이와 사회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박해시절 교우촌에서 모두가 형제자매로 지냈던 것처럼, 본당 공동체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를 실천하는 공동체로 탈바꿈(쇄신)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평협은 평신도 희년 상본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를 담았습니다. 평신도는 사목자를 존경하고 사목자는 착한 목자로서 신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행복한 본당 공동체를 구현하자는 바람에서입니다.(가톨릭 신문, 2017년 11월 19일, 11면 참조) 이를 위해서 우리 안동교구에서는 특별히 강 깔래 신부와 복자 박상근 마티아의 만남과 우정을 하나의 모델로 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동교구 평신도 희년 전대사 지침’에서 전대사 조건 중 하나로 문경 마원성지 순례를 첨가하였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본당

12. 한 평신도가 원하는 ‘이상적’ 본당의 꿈 하나를 소개합니다. “저에게는 ‘이상적’ 본당이라고 할 때 연상이 되는 것은 밤낮 밝혀놓은 창가의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신자에게 기억되는 특별한 메시지처럼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를 통해 구원에 필요한 것을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밤낮으로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본당 사제가 있습니다. 교회를 떠난 모든 자녀에게 ‘우리는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우리에게 돌아오십시오.’라고 말하는 등불과 같습니다.”(새로운 본당, P.15-1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주 하느님 안에서 본당의 쇄신을 통하여 누리는 축복과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2017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천주교 안동교구 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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