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단진복] 여전히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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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단진복] 여전히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
  • 짐 포레스트
  • 승인 2017.12.0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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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의 사다리-27] 옳은 것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은 복되도다

다양한 민족들, 문화들, 그리고 종교들을 흡수하는 놀라운 역량으로 알려진 로마 문명은 그리스도교를 소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교를 따르는 사람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애를 썼다. 그리스도교의 초반 3세기 동안에 세례 받은 사람들은 이 세계에서 그들의 개종이 삶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초기교회의 수많은 성인들은 다 순교자들이다. 그리스말 ‘마르투스 martus’의 의미는 “증인”이라는 뜻이다.

초기교회 때에 “순교는 성인이 되는 것의 확실한 특징이었다”고 로버트 엘스버그가 쓰고 있다.

“주님 안에서 죽은” 사람들과의 통교는 초기교회에 살아있는 실제였다. 그들은 순교자들의 무덤에 함께 모여 그들의 영웅적인 증언을 기억하고 그들의 죽음을 함께 기념하였다... 로마 지역에서 죽은 남녀들은 십자가 위의 그분의 죽음을 따를 뿐 아니라 희생으로 부활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선포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완전히 전적으로 증언하였다. 터툴리안이 말했듯이,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

 

어떤 성인들은 카이사르에게 향피우기를 거절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성 죠지 같은 다른 성인들은 박해의 때에 공개적으로 그들의 믿음을 공표하였다. 죠지가 용에게 창을 던지는 그림은 두려움이라는 야수를 표현해준다.

어떤 그룹의 정체성은 자주 어떤 외부의 위협을 파악하면서 결정된다; 사회그룹에 속한 사람이 그 사회의 적대적인 감정에 도전하면 그는 반역자로 ­아무리 그 동기가 이웃사랑이라 해도­ 간주될 것이다. 나는 “공산주의의 위협”이 모든 사회구조에 영향을 끼쳤던 시기에 미국에서 자라났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절대로 아니었다는 선언문에 서명을 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공언을 거부했기 때문에 감옥에 갔고, 수천 명이 집과 직장을 잃었다. 그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부드러웠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반공산주의가 국가의 정치적 토대가 되었다. 냉전이 끝나갈 무렵, 소비에트의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쵸프의 보좌관이었던 죠르기 아르바토브가 미국의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린 당신들에게 엄청난 일을 하려고 합니다. 당신들의 적을 치워줄 겁니다.”

그리스도인, 시민불복종의 모형

그리스도인들은 고대세계에서 주로 사회질서를 흔들리게 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시민불복종 행동의 좋은 모형이었다. 물론 성 베드로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청했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하여 모든 인간이 세운 제도에 복종하십시오. 황제는 주권자이니 그에게 복종하고, 총독은 황제가 보낸 사람이니 그에게 복종하십시오 ... 주인에게 진정 두려운 마음으로 복종하십시오. 착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 뿐만 아니라 고약한 주인에게도 그렇게 하십시오”(I베드로 2,13-14. 18).

성 바오로도 이와 비슷하게 썼다: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3,1).

그러나 바오로 사도 자신이 그 당시 감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는 순교자로서 죽었는데, 네로의 통치시기에 로마에서 목이 잘렸다. 그의 처형을 명령한 사람들은 바오로와 그의 동료 종교인들이 모범적인 시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황제보다 하느님께 먼저 복종하라

로마가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문제 삼은 이유는 무엇보다 그들이 황제보다 그리스도께 복종했기 때문이다. 성 유피미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듯이: “황제의 명령과 다른 권위를 가진 이들의 명령은 그것이 하늘에 계신 하느님과 반대가 되지 않을 때에만 복종해야 한다. 만일 하느님 뜻에 어긋난다면 그런 명령들에 복종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저항해야 한다.” 고문을 받은 후 유피미아는 303년 디오클레시안 황제 통치 때에 곰에게 던져져 죽임을 당했다. 그것은 4세기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겪었던 죽음의 방식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격화된 황제에 대한 경배를 반대하였으며, 이웃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전쟁과 모든 형태의 피흘림에 대한 반대로 유명했다. AD 173년 이교도 학자인 셀서스(Celcus)가 쓴 자료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양심적 병역거부'라고 부를 수 있는 행동 때문에 재판에 붙여졌다. 셀서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네들이 하는 것처럼 한다면, 황제는 결국 아무도 없이 홀로 고립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힘이 없어진다면 제국도 전혀 법이 없는 야만인들의 손에 떨어질 것이다.”

그것은 합리적인 이의 제기였으나, 교회에게 그리스도의 모범은 최고의 권위였다. 만일 하느님이 로마제국의 생존을 원했다면 그리스도께 대한 불복종 보다 그리스도인들의 충실성에 의해 제국이 더 잘 지켜질 수 있었을 것이다. 구세주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어떤 죽임도 축복하지 않았으며 이렇게 말했다, “칼로 사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이다.”

거룩한 순교자 성 유스티노는 초기교회의 특징적인 태도를 설명하고 있다: 

“전쟁과 상호 죽임과 모든 사악한 것으로 가득 찼던 우리들은 세상에 있는 모든 전쟁의 무기들을 변화시켰다... 칼은 쟁기로 창은 가지를 잘라내는 갈구리로.” 그리고 그는 또 이렇게 쓰고 있다, “전에 서로를 죽였던 우리들은 이제 우리의 적들과 전쟁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거짓말을 하거나 판관들에게 사기를 치지 않을 것이며, 기꺼이 그리스도를 고백하면서 죽을 것이다.”

그러한 덕들을 실천하며 사는 공동체가 로마정부에 위협으로 여겨졌음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실상, 이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박해에 직면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그것이 위치해 있는 사회와 타협하는 만큼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황제의 개종은 구제인 동시에 위험이었다

AD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 반포로, 순교의 첫시대는 끝났다. 그후 수십년동안, 가장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종교는 아주 빨리 가장 환영받는 종교가 되었다. 한때 고문과 처형으로 위협을 받았던 사람들은 이 세계의 모든 물질적인 축복 때문에 위협을 받았다. 황제의 개종은 구제인 동시에 위험이었다. 성 예로니모가 말했듯이, “교회가 세계의 왕자가 되었을 때, 권력과 재물은 늘어났지만 덕은 사라졌다.”

그리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 예로니모와 안토니오 같은 많은 사람들이 사막에서 살기 위하여 도시를 떠났고, 그곳에서 그들이 만났던 거친 환경과 악마들이 그들을 시험에 붙였다. 이처럼 사막의 교부들로 알려지게 된 이들은 그리스도교에 새로운 성인들의 물결을 마련해주었다. 그들의 증언은 사막에서 반쯤 굶주린 동물들과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본성의 야수적인 측면을 극복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내면의 적은 더욱 은밀해서, 더 어려운 영적 전투에 나서야 했다. 마치 “우리는 적을 만났는데, 그들은 바로 우리들이다”라고 말해야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처벌될 위험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여덟 번째 진복이 우리의 선조들만을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아직도 박해가 계속되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인가?

아마도 진정한 문제는 우리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실제로 복음을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우리는 소심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온유한 그리스도인인가? 우리가 처음 4세기동안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가득 채웠던 용기와 온 마음을 다 바쳐 우리의 신앙을 살아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짐 포레스트

[원출처] <진복의 사다리>, 짐 포레스트, The Ladder of the Beatitudes, Orbis, 1999
[출처] <참사람되어> 2002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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