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단진복] 십자가, 치욕과 영광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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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단진복] 십자가, 치욕과 영광의 상징
  • 짐 포레스트
  • 승인 2017.11.2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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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의 사다리-26] 옳은 것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은 복되도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마태 10,38)

"죄를 짓고 매를 맞으면서 참으면 영예스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통을 당하면서도 참으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렇게 살아가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해서 고난을 받음으로써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I 베드 2,20-21)

"물론, 배불리 먹고 부드러운 새털의 침대에서 딩굴며 낙원에 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낙원으로 가는 길에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니, 하느님나라는 한 두가지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어려움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옵티나의 대 안토니오)

 

사진출처=pixabay.com

평화조성가들을 하느님의 아이들이라고 인정하고 나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박해받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진복을 한번 더 주고 있다. 마지막 진복이 가장 길다. 특별히 중요한 것을 두 번 말하는 것이 셈 문화의 전통이었다. “아멘, 아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그러나 갈채를 얻거나 평화상들을 받기는커녕, 갈라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주 벌을 받고, 때로는 몹시 심하게 받는다. 많은 예언자들과 그리스도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상징은 베들레헴의 별이나 빈 무덤이 아니라 십자가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십자가가 언젠가 종교적 상징이 되리라고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로마제국에서 십자가는 오늘날 우리시대에서 전기의자, 단두대, 그리고 교수형에 쓰이는 올가미와 같았다. 다만 십자가형은 특히 천천히 진행되고 고통스럽고 아주 모욕적인 사형 집행 방법이었다.

판결을 받은 사람은 모든 옷을 다 벗겼다. 십자가 처형으로 죽는 사람은 출혈이 아니라 보통 굶주림, 갈증, 피곤 그리고 심장 파열이 원인이었다. 337년 콘스탄틴 대제가 폐기하기 전까지 십자가 처형은 로마제국에서 노예들, 반역자들, 그리고 특히 혐오스러운 범죄로 판결 받은 사람들을 죽이는데 사용되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늘 낮은 사회적 지위의 비시민들이었다. 유다와 같은 지역에서 십자가 처형은 로마 점령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누르기 위하여 이용되었다. 로마가 예루살렘을 함락한 후 많은 유대인들이 매질을 당하고, 고문받은 뒤에 성벽 바깥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그리스도는 그가 죽을 것이라고 자주 제자들에게 경고했으나 그들은 그 말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가 어딜 가든지 받는 환영을 목격했고 마침내 예루살렘에서는 개선하는 사람처럼 환영을 받은 것도 보았다. 군중들은 “다윗의 자손이여, 찬미 받으소서”라고 소리쳤다. 그러니 며칠 후에 그가 십자가 위에서 죽고 그들은 도망갈 것이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예수가 죽고 묻히자, 그들은 부활을 처음 목격한 여자들의 말도 쉽게 믿지 않았다.

로마 황제의 거만함의 상징이었던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승리의 상징이 되었다. 정교회에서 십자가는 단순히 십자가로서가 아니라 “거룩하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로 여겨진다. 비록 십자가 처형 때에는 거룩하지도, 생명을 주는 십자가처럼도 보이지 않았지만.

부활 후 십자가는 변화된 빛으로, 바오로 사도가 다음과 같이 선언할 수 있을 정도로 보여진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갈라디아 6,14).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광의 왕관으로서 지고 가야 합니다”라고 썼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의하여 우리들 사이에서 성취된 모든 것이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몸에 십자가를 그을 때마다,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분노와 모든 다른 욕망을 밀어놓으시오. 용기를 가지고 영혼의 자유를 누리시오.”

같은 맥락에서 다마스커스의 성 요한은 다음과 같이 썼다:

“그리스도의 모든 행동 ... 그리고 기적은 가장 위대하고 거룩하며 훌륭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훌륭한 것은 그의 귀중한 십자가이다. 십자가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죽음을 이기지 못했고, 첫 번 째 부모의 죄를 속죄하지 못했고, 저승의 권세를 박탈하지 못했고, 부활을 가져오지 못했고, 현재와 죽음까지 무시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지 못했다. 우리의 본래 진복으로 돌아가도록 준비시키지도 못했고, 낙원의 문을 열지 못했고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녀들과 상속자가 되지 못하게 했고, 우리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하지 못했다.”

 

짐 포레스트

[원출처] <진복의 사다리>, 짐 포레스트, The Ladder of the Beatitudes, Orbis, 1999
[출처] <참사람되어> 2002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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