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단진복] 하느님의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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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단진복] 하느님의 아이처럼
  • 짐 포레스트
  • 승인 2017.11.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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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의 사다리-25]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울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아이들아, 어서 가자,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방이 있다."
- 흑인 영가 중에서

"하느님의 아이,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러므로 형제들이다.
모든 전쟁은 다 시민전쟁이다."
- 에릭 길

다른 이들과 평화를 세워 가는 이들은 또한 하느님과 그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하는데 너무 익숙해져서 다만 하느님과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하느님께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별로 놀라지 않는다.

고전세계에는 신들이 풍부했다. 죽는 존재들은 신들에 대해 알고 신들의 삶을 상상하여 그들의 불멸성을 부러워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떤 신들이 도움이 될지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쓴다. 때가 오면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불의 선물로 인간을 도왔듯이 신이 인류를 돕고 구제할 수도 있지만, 불멸의 신들은 인간의 자연적인 동맹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인간존재가 하느님의 자녀들이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서로 평화롭게 사는 것은 하느님나라에서 사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들은 유대인들에게 익숙했다. 창세기의 저자들은 창조설화에서 보듯이, 창조의 과정보다는 우리들이 하느님의 거룩한 모상을 담고있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고유하게 만들어진 인간존재임을 깨닫는 것에 더 관심을 두었다. 이 사실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다. 랍비들은 하느님이 단지 한 사람의 아담과 한 사람의 이브를 창조하고 몇 명의 아담, 이브들을 만들지 않은 까닭은 그럼으로써 아무도 다른 사람보다 더 고귀한 자손이라고 주장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고 지적한다.

“...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이라고 불리울 것이다.” 이 구절의 “그들은 불리울 것이다”는 셈족의 표현 방식으로 “그들은 ... 라고 인정될 것이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느님의 평화를 세우는 것을 돕는 이들­전쟁을 방지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보살피고, 두 이웃이 서로 화해하도록 중재하며, 가족의 일치를 회복하는 것 등­이 이 세계에서 하느님의 활동을 돕는다고 인정된다.

그리스도는 그런 사람들을 가능한 높이 평가하는데, 이 평화조성가들은 하느님이 바라는 일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평화조성가의 원형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이 진복에 관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듯이: “이것은 유일한 아들의 일이 되었다: 즉 갈라진 것을 합치고, 분리되어 있는 것을 화해시키는 것이.”

사진출처=pixabay.com

형용사가 적은 히브리 언어에서, 어떤 특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그의 가장 뚜렷한 자질의 “아들”이라고 표현된다; 예를 들면 그들의 폭풍 같은 성격 때문에 사도 야고보와 요한은 “천둥의 아들들”이라고 불리었으며,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고 묘사되었다. 번역은 또한 “천둥의 아이들” 혹은 “위로의 아이”라고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하느님의 아들이나 아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신성하다는 것을 말하는 또다른 방식이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그리스도는 우리 자신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가 지닌 복잡함을 드러낸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우리 뜻대로 살고 우리의 유산을 써버리며 가족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상실할 때까지 삶을 손상해 버리는 우리 인간의 경향을 보여준다. 그분은 결국 회심으로 마무리되는 반항의 이야기를 말한다. 아들의 모습을 보면, 돌아오는 참회의 행위를 한다; 하느님을 상징하는 아버지는 '유보하지 않는 자비'로 응답하고, 아들의 위치를 즐겁게 회복시킨다. 아들은 참회를 통하여 한때 그가 거부했던 아이로서의 자질을 회복한다.

그리스도는 추종자들에게 그들의 적을 사랑하고 그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하늘에 계신 당신 아버지의 자녀들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주시기 때문이다.” 날씨가 올바른 사람에게만 호의를 베풀지 않는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기 때문”(마태오 5,45-46)이다.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가?”라는 질문을 제자들이 했을 때 그리스도의 대답은 확실히 그들이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아이를 그들 가운데 세우고 말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누구든지 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고 내 이름으로 한 아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바로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마태오 18,3-5).

마태오 복음의 다음 장에서도 그리스도 앞으로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려오자 예수님은 “그들 위에 손을 얹으며”, 다시 말하자면 아이들을 축복하는 이야기가 나오며 같은 맥락이 계속된다. 제자들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시간낭비를 하지 않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그런 일로부터 아끼기 위하여 부모들을 제지하려고 하지만 그리스도로부터 책망을 듣는다. “아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하늘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오 19,13-14). 이런 이유 때문에 정교회 본당에서는 항상 아이들이 먼저 성체를 받는다.

하느님의 아이처럼 사는 것은 당신의 머리가 회색으로 변할 때에도 어떤 아이 같은 측면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의존, 의지의 상황 속에 있는 것이 아이의 가장 분명한 특징이다­자율성은 생각할 수 없다. 아이는 그의 부모들을 기쁘게 하는데 열심이고 그들에게서 배우려고 한다. 아이는 행동과 관계에 온 마음을 다해서 집중하고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에 절대적인 주의를 기울인다.

우리집 근처의 공원을 최근에 걸으면서 나는 한 아이가 길가 덤불 속의 꽃들을 보려고 반복적으로 발길을 멈추고 매번 자기가 본 것을 아버지한테 보여주는 걸 본 적이 있다. ­다행히 아버지는 급한 기색이 아니었고 기쁘게 응답해주었다. 다섯 개의 꽃잎을 가진 한 작고 하얀 꽃이 그 아이를 멈추게 하고 놀람으로 가득 차게 하는데 충분했다. 그 아이 덕분에 그후 매일 아침 그 길을 걸으면서 나도 자주 당연하게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작은아이의 영혼은 마음의 질병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나쁜 것에 대한 기억이 없고 그들을 괴롭힌 사람들에게로 돌아선다”하고 성 요한 크리소스톰이 썼다. “그는 화려한 옷을 입은 여왕보다 누더기를 입더라도 자신의 어머니를 더 좋아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는 모든 것을 부유함이나 가난으로 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재기 때문이다 ... 그는 필요한 것 이상을 구하지 않는다. 모유를 충분히 먹은 아이는 엄마의 가슴으로부터 고개를 돌린다. 그는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 지나가는 문제들은 그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싸우려고 시도했던 두 사막의 교부들의 다음 이야기는 어린애다운 자질을 잘 보여준다:

많은 세월동안 함께 살면서 전혀 싸우지 않았던 두 노인들이 있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다른 노인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도 싸워보자.” “난 어떻게 싸움이 시작되는지 모르는 걸.” 하고 그의 친구가 대답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자, 봐, 우리들 사이에 돌을 놓겠어. 그리고 내가 ‘이건 내꺼야’하고 말하면 자네가 ‘아니, 이건 내꺼야’하고 말할 수 있지. 그러면 우리가 싸울 수 있을 꺼야.” 그래서 그들은 중간에 돌을 놓고 첫 번째 사람이 말했다, “이건 내꺼야”. 그의 동료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 그건 내꺼야.” 이렇게 되자 첫 번째 사람이 말했다: “그렇다면 돌은 네꺼야, 가져가 그리고 네 갈 길로 가” 그래서 두 사람은 싸움을 할 수가 없었다.

짐 포레스트

[원출처] <진복의 사다리>, 짐 포레스트, The Ladder of the Beatitudes, Orbis, 1999
[출처] <참사람되어> 2002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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