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다미아노의 클라라 "우리는 어떤 소유권도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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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다미아노의 클라라 "우리는 어떤 소유권도 포기한다"
  • 월리암 J. 쇼트
  • 승인 2017.10.30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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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즐거움-12

앗씨시의 클라라는 40여 년 동안 소중한 보물처럼 여겼던 ‘가난의 특권’을 살았다. 그는 예수님의 전 삶을 육화의 순간부터 노동과 사명의 성년기를 거쳐, 죽음의 순간까지 가난으로 점철된 삶이라고 보았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제자가 되는 것은, 그분이 살았던 가난의 삶을 끌어안는 것이다.

클라라에게, 자신의 삶과 자매들의 삶은 세상에 ‘거울’이 되는 삶이었고, 주님께서 그런 삶으로 초대한 다른 자매들에게 표양이 되는 삶이었다. 가난은 클라라에게 매우 중요했다. 거울은 가난한 예수였기 때문이다.

동물의 구유에 뉘어졌던 아기의 가난으로부터, 나자렛과 갈릴래아의 노동과 힘든 삶, 수치와 죽음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거울인 예수님의 전 삶은 클라라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준다.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처럼, 클라라와 그의 자매들이 살았던 삶의 방식은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며 거울인 예수님을 투영하는 것이었다.

‘거룩한 가난’ 안에 자매들과 함께 머물려는 클라라의 단호한 의도는 자신과 자매들에게 오랫동안 많은 어려움들을 일으켰다. 클라라는 특히 교회 관계자들이 고정된 수입 없이 살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우려를 느꼈다. 소유없는 삶은 후원자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후원자들은 클라라의 영성의 핵심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살겠다는 선택이 있음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글라라는 가난의 특권을 그리스도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여겼다.

사진출처=communio.stblogs.org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가 새로운 수도회 회칙들의 승인을 금지했을 때, 산 다미아노 수녀들에게는 교회법적인 근거로서 베네딕도회의 회칙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 회칙은 베네딕도가 만들었을 뿐이지, 그들의 창립자인 프란치스코가 만들지 않았고, 클라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베네딕도회의 회칙은 공동 재산의 소유권을 허용하였다. 그리고 클라라가 죽어갈 무렵인 40년 후에야 자매들을 위한 클라라의 회칙이 승인되었다. 공의회 결정 후 수년 동안 자신의 공동체 생활에 분명한 특징을 확립하기 위하여 클라라는 회칙을 청했고 마침내 교종 인노센트 3세의 허락을 받아냈다.

수도공동체에 의한 재산소유권을 허락하고 있는 베네딕도회의 회칙을 받은 클라라와 자매들은 즉시 예외를 청했다. 개인으로나 공동체로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겠다는 청이었다. 그 당시 이것은 교회 안에 전혀 관례가 없었던 일이었다.

여성공동체들은 입회자들로부터 지참금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자주 농토의 형태를 띄었는데 소작농들에게 빌려주어 수입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수도원들은 후원자들로부터 유산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땅이나 빌려준 부동산의 수입, 혹은 제분소나 포도밭에서 들어오는 수입의 형태였다.

당시 교회 당국이 공동체의 구성원들 수에 따라 여성수도원에 예측할 수 있는 일정한 수위의 수입을 요구하는 일은 관례로 여겨졌다. 그러나 클라라는 그리스도의 가난을 따르겠다는 단호한 일념으로 모든 재물을 받지 않겠다고 교황청에 청했다. 클라라는 산 다미아노에 공동체를 시작한지 겨우 삼년 후인 22살의 나이에 교회 정책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청했던 것이다!

프란치스코처럼 클라라도 무슨 철학적 이유나 실천적인 이유로, 자신의 삶을 더 생산적으로 혹은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선택으로 가난을 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 다 가난이 당대의 교회나 사회의 풍요로움에 대한 응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물론 주위의 사람들은 의심할 바 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또 보여졌을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관심의 초점을 하느님의 가슴 벅찬 관대함과 사랑에 두었다. 하느님의 이 사랑은 피조물이 됨으로써 가난을 끌어안는 아드님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표현되었다. 앗씨시의 두 제자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분이 가난을 받아 들였기에 가난을 받아들인 것이다.


[원출처] <가난과 즐거움-프란치스코회의 전통>, 월리암 J. 쇼트(프란치스코회)
[출처] <참사람되어>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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