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교회는 개종자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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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교회는 개종자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다
  •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 승인 2017.10.02 2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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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새로운 창조-10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종교 교육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의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교실에서의 가르침을 강조했다. 즉 학생들에게 올바른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그들이 주일 미사에 올 때 그리스도교적인 삶과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된 교육 프로그램의 실패는 올바른 믿음 -교리 문답에서 배운 것이든 최근에 나온 책에서 배웠든- 이상의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어느 때는 손에 꼽을 정도의 숫자의 아이들만이 주중의 저녁 수업에 나왔는데 만일 부모들이 억지로 보내지 않았다면 그들은 거기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가톨릭 학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뉴 예루살렘 공동체에 관해서 말할 때 나는 그들이 주님과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생명에 대해서 생전 처음 듣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신앙과 신조를 갖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체에만 있는 주님을 체험하기를 갈망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뉴 예루살렘 같은 공동체가 갖는 장점은 우리가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서로 모이기 훨씬 전에, 각자가 서로 많은 방법으로 주님을 만나러 왔다는 점이다.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필요와 실패를 알며, 또한 우리에게 그들을 위해서 봉사 할 수 있는 선물이 있다는 것도 안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강점과 재주를 알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그들의 선물로 도와달라고 청할 수 있다.

우리는 소규모 의 그룹으로 기도하거나 성서 공부를 한다. 누가 우리에게 강요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을 성서에서 배우고, 기도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씩, 아주 크고 비공식적인 성찬례에 참여하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참으로 공동체 구성원간에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며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심에 기쁨을 누린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내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사는 삶, 즉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사는 삶을 통해서만 우리가 성 바오로가 말했던 것처럼 새로운 창조가 된다는 확신을 얻는다. 때때로 말해지듯이, 그러한 창조는 순간적인 종교적 경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많은 사람들의 영적인 부활은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영양분이 공급되지 못했고 양육되지 못했다. 그들은 잠깐동안 그들을 깨워놓았던 바로 그 생각에 의해서 영적 빛이 다시 꺼져버려 다양한 쇄신 운동의 탈락자들이 되어 버린다.

성 바오로의 견해를 보면, 성령은 개인보다는 그리스도를 다 같이 그들의 머리로 삼는 믿는 이들의 몸(공동체) 안에서 발견된다. 계속되는 그러한 공동체 안에서 주님은 개인들이 자기들 힘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실 수 있고 성령은 자라나게 하실 수 있다. 우리는 서로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서로 용서하고 용서를 받는데,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안다.

서로 섬기기 위하여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선물들을 주시는데 그것들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에게 필요하지 않다면, 우리가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그런 선물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을 만들었다고 생각할 때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개인적, 공동적인 성장을 요구하심으로써, 우리 모두가 그것을 실제로 전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신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따분함과 메마름, 유혹과 죄, 질투와 악의, 두려움과 외로움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러한 일은 늘상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성장과 회심은 거의 강요하다시피 요구되는 것이다. 공동체 생활에서는 우리의 약함, 죄많음 등이, 우리가 개인 생활을 하면서 서로 좋은 면만을 보여 주는 생활에서보다 훨씬 더 분명히 드러난다. 같이 살면 우리의 아주 좋은 점 뿐만 아니라 가장 나쁜 면까지도 드러난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한 것은 우리가 치유되어야 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려고 거기에 계시고,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우리 형제, 자매 안에 육화 하시고 우리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구원하신다. 우리는 이 말들을 가톨릭 전통에서 들어왔고 근래에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더 자주 듣고 있다. 그러나 성 바오로에 의하면, 또 프란시스코회 사제로서의 내 경험과 뉴 예루살렘 같은 공동체 회원으로서의 경험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의해서 하나된 믿는 이들의 공동체 안에서, 그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아버지께 의탁하고, 복음에 순종하고 성령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 모든 본당, 모든 기도 모임, 모든 학교, 모든 수도회, 모든 그리스도의 몸의 모임들을 예수님께서는 구원하신다. 그리고 복음은, 구원이 우리 개인, 우리 특정한 공동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계속되는 육화를 통해서 모든 민족, 모든 종족, 모든 종교 그리고 모든 생활방식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교회는 개종한 이들이 모이는 장소라기보다 회개심, 승복과 보편적인 사랑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하느님의 매체이다.


[원출처]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신약>,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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