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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형제의 봉헌, 복음 때문에

[유수선의 복음의 힘-5]

나는 왜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아무런 인연이 없는 형제들의 공동체 일원이 되어 동분서주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주님의 일이라 믿고 시작해 놓고는 내 생각에 갇혀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허우적대다 물에 빠진다. 이럴 때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나를 다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 형제들이 복음에 거는 희망과 진심어린 마음이 나를 감동시켜 다시 일어나 이 여정을 계속 걷게 만든다.

원래 고아였고 한 번도 가정을 가져본 적이 없는 혈혈단신이지만, 에이즈 감염 이후엔 세상으로부터 더욱 고립되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길거리서 지내던 형제들에게 ‘너는 떠돌이 고아가 아니라 돌아갈 고향이 있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이 공동체는 그들에게 ’돌아와 가진 것을 다 팔아 사야 할 보물이 숨겨진 밭‘이다. 그 중 한 형제의 경우를 소개하려고 한다.

 

사진=한상봉

그는 다섯 살에 이국 땅으로 입양가기 싫어 입양 전날 밤 형들을 따라 고아원을 도망쳐 나왔다. 그 뒤 홀로 다리 밑 박스 속에서 동냥으로, 혹은 껌팔이 구두닦이 등으로 살다가 소년원도 드나들었다. 무학이지만 40년 넘게 숙식만 제공되는 곳이면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몸 쓰는 일이면 어느 정도 다 할 줄 안다. 그러나 감염이 된 후에는 노숙을 하고 알콜 중독이 되었고 결핵도 걸렸다.

12년 전 한 선배가 운영하는 쉼터에서 그를 처음 만났는데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곧 다시 쪽방으로 나가 살았다. 그런데 그가 지속적으로 관계 맺길 원하기에 자매들과 함께 하던 목요찬미기도모임에 초대하였다. 자매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그는 매주 목요일 일찍 와서 청소도 하고 모임 준비를 도와주었다.

그러던 중 재단의 한글공부에 참여하며 쓰기를 익혔고 생활수기공모에 참여하여 상금 50만원과 상장을 받았다.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던 그로서는 난생 처음 받아보는 상장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삶을 써서 받은 상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그는 항상 이 상금 50만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술의 유혹을 이겨냈다. 상까지 받았는데 이제는 정말 사람답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주민센터가 2년 계약 거리 청소 일을 주선해주었는데 이 일을 끝까지 마쳐 보증금을 위한 목돈을 마련하게 되어 마침내 종로 쪽방을 벗어나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사실 큰 변화였다. 옛 생활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삶의 양식을 익혀 술도 담배도 끊고 성실히 살 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내적으로도 아주 놀라운 성장을 하고 있었다. 자매들 목요모임 횟수를 줄이고 형제들 모임을 시작한 이후 이상하게도 그는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안부만 확인하며 별 왕래 없이 2년을 지냈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초 그가 예고 없이 형제들 모임에 찾아와 조용히 봉투하나를 건네고 갔다. 열어보니 5만 원짜리 20장이 들어있었다. 깜짝 놀라서 쫓아가 돌려주려했지만 형제는 한사코 사양하였다. “형제들은 다들 누나한테 도움을 청하잖아... 모임 때 식사까지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텐데. 딱히 후원받는데도 없는 것 같고, 나라도 누나의 짐을 덜어주려고. 재단 사무실에 걸린 표어 <아껴서 나누자>처럼 아껴서 나누려고 가져왔어. 수급 받은 것 중에서 병원 외의 외출을 자제하고 2년간 교통비와 식비를 아끼니 100만원이 되었네. 누나가 형제들을 위해 써 줘“. 가슴이 먹먹하였다. 요즘 누가 표어를 보고 이렇게 성실히 실천할 생각을 하는가?

잘 쓰겠노라 고맙다 인사하고 돌아와 봉투를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100만원, 내게도 선뜻 주기에 쉽지 않은 액수다. 그것도 2년 동안 모으며 마음 변치 않고 내어 놓기란 힘든 일이다. 하물며 한 달에 월세 빼고 40여만원으로 살아가는 수급자에겐 너무나 큰돈이었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21,3-4)란 성경말씀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 돈보다 더욱 갚진 것은 2년 동안 이 공동체를 기억하며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다 자제하고 봉헌한 형제의 마음과 시간이 아니던가? 이 돈을 어떻게 단순히 식비로 써 버릴 수 있으랴? 형제들의 장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이 돈을 그 종자돈으로 사용하리라 마음먹었다.

무엇이 이 형제로 하여금 봉쇄수도원처럼 절제하며 2년간을 살 수 있게 한 것일까? 복음이다. 어떤 만남이나 관계보다 복음을 통해 만난 관계가 그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기에 오늘처럼 만날 날을 희망하며 두메꽃처럼 2년을 숨어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끊어버리지 못한 욕심과 관계들로 허우적대다 때때로 침몰하는 나의 신앙이 부끄러웠다.

“하느님 받으소서! 이 형제가 봉헌한 진심어린 시간과 돈을! 그 긴 시간 동안 당신께 드렸던 영의 간절함을. 미쳐 당신께 드리지 못한 감사도 받으소서! 우리가 이 형제처럼 오메가 포인트를 향해 도도히 흐르고 있는 우주의 사랑의 에너지에 이끌려 이기적인 자아를 벗어 던지는 몸짓을 할 때마다 축복하시어 영원한 사랑의 길로 인도하소서.“

이 형제의 봉헌이 혹여 다른 형제들에게 부담이나 위화감을 줄까봐 공동체 안에서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이 이야기가 내 경우처럼 잠시라도 우리를 소유욕에서 해방시켜 막혔던 사랑의 강물을 세상에 다시 흐르게 하는 마중물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개한다.


유수선 수산나 
초원장학회 이사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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