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법보다 강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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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보다 강생을
  • 한상봉
  • 승인 2017.08.2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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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모든 삶은 장엄하다]-17

어느 고상한 무리가 따지고 들지는 모르지만, 버즘 먹은 아이들과 가난한 직공들에게 굽실대고 갖은 향응을 베푸는 교회의 모습을 보고 싶다. 세상의 천대받는 무리들이 최소한 여기선 사람 대접을 분에 넘치게 받아 누리는 곳이 교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현명한 분이 전자 계산기를 코 앞에 디밀며 수지타산을 논박하더라도, 못 들은 척하고, 약간은 푼수처럼, “대안(大安)! 대안!” 하며 거렁뱅이처럼 시정(市井)을 맴돌며 천민들에게 설법하던 대안 거사를 닮거나 원효처럼 춤추며 노래하며 극락왕생을 빌어 주는 공동체, 백성들에게 곰살맞고 세도가에게 거만한 줏대가 있고 서글픈 아름다움이 온몸 그득히 배여 있는 사람, 그런 공동체가 내가 귀의한 교회였음 얼마나 좋을까? 이게 다 몽상이라는 게 아비 없고 스승 없는 우리 시대의 업보이다.

 

사진=한상봉

예수처럼 제대로 살 자신이 서지 않는다면 제발 라디오 볼륨을 줄여 주든가, 아니면 대중 가요처럼 찬송가를 따라 부르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된장처럼 눅이고 삭히지 못한 채 상업주의적 기획사의 논리에 따라서 ‘사랑 타령’에 여념 없는 가수들의 조잡한 제스처를 따라서 춤추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다. 제멋에 겨워 승객들의 심사는 뒷전에 두고 ‘거시기 뽕짝’ 테이프를 연상 틀어 대는 시골 버스 기사들처럼 저들만 아는 하늘 나라 언어로 ‘고상한’ 말투에 담아 짐짓 복음을 선포하려 들지 말 일이다.

강생(降生) 신학을 설법하기 전에,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낮은 데로 강생하였는지 돌아볼 일이다. 자신의 스킨 로션 냄새가 버즘 먹은 아이들의 얼굴 속으로 강생하였는지 먼저 맡아 볼 일이다. 포도주를 축성하는 내 손이 예수처럼 목수의 손으로 강생하였는지 컨닝할 일이다.

얼마 전 어느 선배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다.

“형, 거창하게 말해서,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젊은 날 내내 교회 안에서 일해 왔던 선배의 대답이다.
“그건 교회를 떠나는 것이지.”
무우 자르듯 던져진 말에 당황한 나는 다시 물었다.
“그건 왜죠?”
“지금, 교회는 권력이기 때문이지.”
“그건 성직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게 아닌가요? 우리 평신도들도 그렇다는 건가요?”
“당연하지. 신자들은 단지 성직자들에게 권력을 위탁한 것뿐이야.”

선배의 말은 우리 신자들이 성직자로 대표되는 교회를 통하여 사회적 권력을 나누어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교회 안에서 또는 교회를 통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기득권을 보장받고, 이해 관계를 관철시키는 것이란다. 마치 우리가 <조선일보>를 보는 것이 결국은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반북 보수 이데올로기에 이바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교회의 성직자가 권력화된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신자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어느 한 면에서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면에서는 여전히 제도로서의 교회가 의미로운 부분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예전에 내가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학과 신앙의 갈등 때문에 고민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신앙, 권력에 복무하지 않는 신앙이 가능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아직 뭐라 분명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혹시 그 해답 역시 내 안에 있지 않을까?

그 동안 교회의 관행 속에서 빛과 어둠, 희망과 저주의 갈피를 헤집어 보느라고 애써 왔지만, 어쩌면 그 해답은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어느 잡지의 특집 주제처럼 또 하나의 교회가 내 안에 있는 게 아닐까? 교회 안에 아직도 성령이 머물고 있는지 묻는 것보다 사실 내 안에 아직도 성령이 머무시는지 묻는 것이 더 두렵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태도가 아닐까?


[출처] <연민>, 삼인, 2000. 이 글은 제가 삽십대 중반 <공동선> 편집장 시절에 쓴 글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20년이 되었군요. 세월이 흘러도 마음과 생각의 갈피는 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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