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공화국'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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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공화국' 맞나?
  • 유대칠
  • 승인 2017.07.2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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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아픈 시대, 낮은 자의 철학 11]

과거 로마제국에서의 일이다. 하지만 과거라고 하기에 지금 우리의 일과 같다. 제국은 점점 거대해졌다. 더욱 더 거대한 제국을 위해 더 많은 전쟁을 해야 했다. 더 많은 자작농이 전쟁에 나서야했다. 당연히 농사와 전쟁을 함께 할 수 없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이들은 결국 부채(負債)로 힘들어하는 가족을 만나야 했다. 제국의 거대한 영광과 그 영광을 일군 병사들의 모습은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제국의 성공은 개인의 것이 아닌 공동의 것, 공유물이 되어야 했다. 전쟁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싸운 이들의 대부분은 귀족도 원로원도 아니었다. 로마제국을 이루는 민중이었다. 그러니 제국의 성공은 민중의 것, 즉 Res Publica(레스 푸블리카), 바로 ‘공유물’이어야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제국의 영광이 아닌 부채였다. 가난이었다.

하느님 앞에 사유물은 없다

제국의 성공은 공유물이 되지 못하고, 사유물이 되었다.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이의 것이 아니었다. 말로는 공익을 위한다는 정치권력자의 사유물이 되어 버렸다. 즉, 공유물이 아닌 Res privata(레스 프리바타), 사유물이 되어버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며, 일어난 그라쿠스(Gracchus) 형제의 토지 개혁도 결국 두 형제의 죽음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빼앗은 자가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것은 빼앗긴 자가 원래 자신의 것을 돌려받는 것보다 더 쉬웠다.

‘사적인’ 혹은 ‘개인의’라는 의미의 라틴어 privata(프리바타)는 ‘빼앗긴 것’이란 뜻이다. ‘궁핍’을 뜻하는 라틴어 privatio과 영어 privation이 모두 이 단어와 관련된다. 빼앗긴 것이란 원래 ‘공공의 소유인 것을 빼앗은 것‘이란 의미다. 즉 사유물은 도둑맞은 공유물이다. 사유지(Ager privatus)란 원래 없다. 하느님은 누군가의 사유물을 창조한 것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것이다. 즉 공유지(ager publicus)다. 그러나 결국은 사유물이 되어 버렸다. 빼앗긴 것을 다시 찾기란 힘들다. 역사상 많은 노력들이 사실 실패로 끝이 났다.

그라쿠스 형제는 사유물이 되어 버린 공유물을 다시 공유물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국가가 다시 보상하고, 반환받아, 농민들에게 재분배하려 했다. 빼앗긴 것을 돌려놓자는 것이다. 쉽지 않았다. 제국의 성공으로 얻어진 거대한 공유지를 사유화해버린 권력자들에게서 다시 구입하여 그 공유지를 분할함으로 민중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려 하였다. 많은 민중들이 지지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미 빼앗아 사유물로 만들어 버린 이에게 다시 돌려받는 것은 힘들다. 정말 힘들다.

그라쿠스 형제

공화국, 공유물로 존재하는 국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은 영어로 Republic이다. 이 단어는 바로 ‘공유물’이란 의미의 라틴어 Res publica에서 파생된 말이다. 영어 커먼웰스(commonwealth)와 같다. 이 영어 단어의 뜻은 ‘공통의 부’다. 라틴어 ‘공유물’이나 영어 ‘공통의 부’나 결국 하려는 이야기는 사익이 아닌 공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공화국’이란 말이다.

로마제국의 철학자 키케로는 공화국을 ‘공동의 이익’이 구현되어야 하는 ‘공공의 것’, 즉 ‘공유물’이라 했다. 또 다른 표현으로 ‘인민의 것’ (res populi)이라했다. 공화국이란 결국 ‘사익’이 아닌 ‘공익’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법체계에 동의한 다수 인민의 결속으로 만들어진 국가다. 이것이 공화국이다. 공유물로 존재하는 국가다.

다시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해야하는 국가이다.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그 공익을 구현을 위하여 다수 인민의 결속으로 만들어진 공유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그 기본적인 뜻도 어색해져 버렸다. 키케로는 카이사르에 맞서 로마제국의 공화주의를 지키려 했다. 민중의 공익을 위해 사익이 양보해야하는 것이 공화주의의 기본이며, 로마제국은 그러해야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에도 로마제국은 공화주의의 이상을 지키지 못했다.

공익을 위한 국가라는 이름은 공허했다. 말 뿐이었다. 결국 국가의 성공은 사유물이 되어 버렸다. 헌신한 민중은 부채에 허덕이는 이들이 되어버렸고, 농노가 되어 버렸다. 로마제국의 이 슬픈 과거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사유물이 아니다.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 어쩌면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의 성공은 특정 세력의 사유물이 되고, 그들의 실정에 의하여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실패는 공유물이 되어버렸다.

마키아벨리의 충고를 기억해야 한다. 한 사회의 몰락은 사익만을 추구하는 불평등에서 시작된다. 부패의 원인도 불평등에서 시작된다. 불평등은 타자에 대한 지배와 억압이 심화되게 하고, 오직 ‘사익’뿐이게 한다. ‘사익’뿐인 세상에 평등은 없다. 이름뿐이다.

공익을 버리고 사익뿐인 대한민국, 타자에 대한 과도한 억압이 능력으로 대접받는 사회, 불평등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 모두를 위한 복지보다 나를 위한 것을 더 생각하는 사회, 이런 사회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공화국이다. 사익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나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바로 ‘우리’를 위한 공익의 공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나를 조금 더 가난하게 한다고 해도 말이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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