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일상, 바닥부터 뿌리부터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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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일상, 바닥부터 뿌리부터 처음처럼
  • 한상봉
  • 승인 2017.07.2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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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모든 삶은 장엄하다]-13

무주 땅, 지금은 광대정(光大頂)이라 부르지만, 본래 해가 뜨는 윗마을이라고 해서, ‘돋을양지뜸’라고 불렀다는데, 이 산골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내가 도사(道士)가 되려나 보다, 하며 반은 비난조로 반은 부러움도 섞여 있을 이야기를 건네곤 한다. 대답은 “그저 웃지요”일 수밖에 없다. 언감생심(焉敢生心),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도무지 마땅치 않다. 하기사 사람으로 한 생애를 살면서 깨달음의 언저리나마 거닐 수 있다면 그도 좋은 일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 세상을 피해서 달아나 버린 게 아니냐는 혐의도 벗어나지 못하였다.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을 성심으로 하시던 어느 신부님은 들으라는 듯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젊은이들이 죄다 귀농인지 뭔지 한다며 떠난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진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산적한 문제가 사실 하나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일꾼들이 전부 도시를 떠나면 세상이 어찌 되겠느냐는 한탄조다. 말이야 그렇듯이 귀농 이야기를 많이들 하지만, 정작 도시 생활을 청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무척 곤혹스러웠다.

사진출처=pixabay.com

이런 이야기가 난무한 것은 결국 귀농하는 이들에 대한 약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듯싶다. 귀농이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더 깊숙이 진입하기 위한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나는 도시 생활이 마치 사이버 공간에서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인텔리’라는 딱지를 떼어 놓지 못하고 사는 이들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먹기는 먹되 먹을 것을 생산하지 못하고, 입기는 입되 옷을 짓지 못하고, 머무르기는 머무르되 집을 짓거나 고칠 줄 모른다. 제 삶을 이루고 있는 거푸집의 일부분만을 우리는 알고 꾸려 간다. 다른 팔, 구십 퍼센트의 삶은 사실상 남의 것을 빌려 쓰거나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상 공간에서 가상의 삶을 꾸리면서 가상의 이야기들을 관념 속에서 토해 놓는 것 아니냐 하는 어설픈 허기를 늘 느끼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살아 움직임’[生活]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과 능력을 회복할 때, 세상을 좀더 투명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귀농은 사실 가상 공간에서 현실로 몸을 옮기기 위해서 방편으로, 과정의 하나로 요청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새 천년은 바닥부터, 뿌리부터, 처음처럼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을 버틸 수 없었기에 나 역시 산골로 찾아 들어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극(克)자본과 탈(脫)자본의 거리

개인적으로 볼 때, 지난 한 해는 참으로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정초부터 급작스런 발병(發病) 때문에 ‘몸’에 대한 예민한 관심을 요구당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기호 식품이지만,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뭐든지 좋아했던 것 같다. 커피며 담배. 그래서 꼭 다방엘 가면 남들 다 커피 시키는데 유독 혼자만 ‘쌍화차’를 시킨다는 사람들을 우스갯거리로 입에 올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몸이 영혼의 감옥이든 영혼의 그릇이든 서로를 따로 떼어 놓고서야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나의 소중한 일부로 받아들이고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어렵사리 받아들였다.

귀농지를 찾아 전국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어처구니없는 배타성과 배신감도 맛보아야 했다. 부인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자신이 ‘운동권’ 또는 ‘천주교’라는 온실 속에서 얼마나 보호받으며 살아왔는지 곱씹게 되었다. 세상은 결코 어수룩하지 않았다. 인정 많은 사람들도 계산속은 그대로 남아서 자신을 부추기고 남을 괴롭히곤 한다.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은 오히려 시골로 떠다니면서 더욱 실감했다.

도시란 너무 노골적으로 자본이 발광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본의 구체적 힘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거리가 필요한 모양이다. 세상 속에 더 깊숙이 들어가 세상과 다른 가치를 살아야 한다면, 때론 공간적으로도 세상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는 모양이다. 거기서 우리 심성 깊은 곳에 도사린 자본주의를 되짚어 내야 한다. 일상 구석구석에 배여 있는 장삿속을 헤아려야 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지난 연말과 새해는 경남 함양에서 맞이하였다. 계관산 중턱에 살고 있는 분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던 것이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어슴푸레 맞보이는 자리. 함께 초대받은 몇몇 가족이 둘러앉아 이른바 밀레니엄 파티를 열었던 셈인데, 자정이 지나고 서로들 새로운 천년에 거는 기대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새 천년에 거는 기대를 말하라고 하니, 마치 우리가 한 천 년쯤 더 살 것처럼 느껴집니다. 앞으로 천 년 동안 어찌 살까 생각하니 감이 오지 않는군요. 다만 하느님 보시기에 하루도 천 년 같고, 천 년도 하루와 같다던 성서 구절처럼, 중요한 것은 하루를 살아도 천 년의 무게를 담아야 한다는 뜻으로 새겨집니다. 새 천년에는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의 거룩함’을 찾는다고나 할까, 그러니 먼저 일상(日常)을 발견해야 하고, 일상에 대한 따뜻하고 투명한 시선이 필요하고, 일상을 거룩한 심경으로 맞이해야 하겠지요.”

일상이 참된 현실이고, 이 현실이 곧 하느님께 봉헌된 세상이며, 우리가 꿈꾸고 살아가는 우주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그렇게 표현한 셈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거룩한 일상’은 ‘일반적’ 또는 ‘상식적’이란 말이 그다지 통하지 않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너무도 평범해서 비범해 보이는 곳에서 발생하는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일상의 발견이 시골 생활에서 더 적절히 찾아질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시골에 사는 삶이 자칫 은둔으로 비추어질지 모르지만, 사실상 더 깊이 이른바 세속사에 얽혀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삶이 어쩔 수 없이 아웃 사이더의 모습으로 읽혀질 가능성이 많다는 점만은 피할 수 없다. 


[출처] <연민>, 삼인, 2000. 이 글은 제가 삽십대 중반 <공동선> 편집장 시절에 쓴 글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20년이 되었군요. 세월이 흘러도 마음과 생각의 갈피는 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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