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사람은 돈 냄새에 쏠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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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사람은 돈 냄새에 쏠리지 않는다
  • 짐 포레스트
  • 승인 2017.07.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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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의 사다리-12] 온유한 이들은 복되도다...

"오 온유함은 얼마나 고결한가!"
- 크리스토퍼 스마트, “우리 주님이요 구세주의 탄생”에서

"사자는 길들일 수 있고 순종하게 만들 수 있으나,
네 자신의 분노는 너를 어떤 사자보다도 더 야생적으로 만든다."
- 성 요한 크리소스톰

진복 사다리의 또 다른 단계는 가난으로부터 슬픔으로 이어지고 온유함에 이른다.

“온유한”으로 번역되는 그리스말 '프라우스'(praus)는 야생동물이 길들여져서 온순해지는 것을 묘사할 때 쓰는 말이었다. 예를 들면 말이 말 타는 사람을 받아들이거나 개가 양떼를 보살핀다고 표현할 때 쓰여졌다.

인간의 영역에서 온유함은 자신을 훈련시켜 거칠고 엄혹하기보다 부드럽게, 폭력적이기보다 비폭력적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온유함이 분노의 두 극단적인 모습들 사이에 있다고 생각했다. 분노의 한쪽 극단에는 차가운 잔인함이, 또 다른 한 극단에는 격분이 있다. 온유한 사람은 지나치게 서두르지도 않고 지나치게 느긋하지도 않다. 이런 사람들은 질책과 경멸을 견디고 그러나 온유한 사람은 복수에 기울지 않으며 회한과 호전성으로부터 자유롭고 평정과 한결같은 영을 지니고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온유함은 인내와 겸손, 부드러움

유대인들에게, 온유함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 인간존재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자질로 여겨졌다. 같은 뜻을 지닌 히브리말은 '아나우'(anaw)인데, 이 말은 시편에서 하느님 편에 서는 사람의 자세를 묘사하는데 자주 쓰이는 말이다. 그러한 사람은 하느님의 지도를 구하며 거룩한 법에 순종하는 것에 대해 회한이나 후회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유대교는 인간존재가 아무리 온유하다 해도 하느님의 “예스맨”이상으로 불리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역설적이게도, 미크(meek)라는 말은 바이킹 전사들이 잉글랜드로 가져왔다. 이 말의 뿌리는 “부드럽다”는 뜻을 지닌 옛 스칸디나비아 말인 mjark이다. Meek는 weak라는 말과 어감 뿐 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똑같은 의미를 주고 있으나, 실제 의미는 노쇠함이나 비겁함이 아니라 인내와 겸손, 부드러움의 뜻을 갖고 있다.

존 웨인의 카우보이 복음

온유함은 모든 사람들에게 어려운 덕이지만, 특히 남자들은 온유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으로부터 도피해왔다. 우리는 온유함을 여성적 자질로 여기도록 세뇌되어 왔다: “여성들은 비너스로부터 오고 남성들은 마르스로부터 왔다,” 등등.

많은 사람들에게 전형적인 남성상은 카우보이들, 총잡이들, 말보로(담배광고) 남자이다. 보통 먼저 총을 쏘고 나중에 질문하는 사람들은 여성들이 아니다. 대부분의 삶을 아프리카에서 보낸 네덜란드의 신부 죠셉 돈더스는 “이것은 존 웨인에 의한 복음”이라고 말한다. “누가 선두역할을 하든지간에 이야기는 늘상 똑같다. 나쁜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은 악을 굴복시켜야 하고 그래서 유일한 해결책은 그들을 죽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내용을 규정시켜 주는 이야기이므로 그것은 ‘복음서’이다.”

온유함, 겸손의 유사어들은 사람들에게 또한 부정적인 의미를 끼쳐왔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데이비드 카퍼필드>에 거미 같은 인물인 유리아 히프가 나오는데 그는 자신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묘사하는 일에 절대로 싫증나지 않는 교활하고 사랑이 없는 차가운 사람이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겸손을 열망한다; 우리는 오히려 자만해지기를 원한다. “나는 __________이 되어 자랑스럽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자랑스럽고, 우리가 이룩한 것, 우리가 속하게 된 국가, 인종그룹이 자랑스럽다. “비천한 혈통” 출신이란 입 속에 은수저를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끈질김과 열심한 노동으로 가난을 떨치고 “자랑할 만한” 일들을 성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온유함은 불복종의 힘

성서적으로 이해하자면, 온유함은 사회적 관점이 아니라 거룩함의 관점을 갖고 선택을 하고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온유함이란 우리가 살게 된 나라의 지배자들과 직장의 상관들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거나 여전히 더 강력한 세력인 우리의 동료그룹과 편안하게 타협하며 지내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온유한 사람들은 정치 권력의 흐름에 끌려가지 않으며 돈 냄새 따라 쏠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방향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양심과 가슴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소리로부터 분리되며, 하느님이 주신 자유를 내던져버린다. 온유함이란 어떤 위험이 와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속성을 의미한다.

하느님을 향하는 온유한 사람은 이웃에게 악한 행동을 하지 않으며 그것을 합리화시키지 않는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참다운 온유함은 어떤 처벌이 와도 불복종하는 힘을 마련하다.

아브라함을 생각해보자. 온유함을 제외한다면 아브라함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오랫동안 잊혀진 아브라함, 그의 소유물과 삶의 자질구레한 것들에 사로잡혀 움직일 수 없고 그래서 우르를 떠날 수 없었을 아브라함,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라고 요청하는 이상한 소리를 무시하는 바쁜 사람으로서의 아브라함만 남을 뿐이다.

그러나 온유한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집을 떠나 자신과 가족들을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도록 허용한다. 다만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창세기 12,1) 하는 말씀만이 그를 인도할 것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창조주에게 “예”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후에 보면 아브라함은 소돔의 멸망을 막기 위하여 하느님과 열정적으로 협상을 한다. 아브라함의 호소를 듣고 하느님은 거주민들 중에 올바른 사람 50명만 있다면 그 도시를 구하겠다고 동의한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은 10명만 있어도 도시를 방면하겠다고 약속한다.

슬프게도 그 도시에는 올바른 시민 10명이 없었고 타락한 도시는 멸망한다(창세기 18,23-33). 그러나 창세기 책은 아직도 중동의 시장에서 행해지고 있는 상인과 고객들 사이의 협상처럼 온유한 아브라함과 권능한 하느님 사이에 일어났던 놀라운 협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브라함의 온유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이야기는 그의 가축지기들과 조카 롯 사이에 갈등이 있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너와 나는 한 골육이 아니냐? 네 목자들과 내 목자들이 서로 다투어서야 되겠느냐? 네 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으니, 따로 나가서 살림을 차려라. 네가 왼쪽을 차지하면 나는 오른쪽을 가지겠고, 네가 오른쪽을 원하면 나는 왼쪽을 택하겠다.’ 그리고 롯이 멀리 요르단 분지를 다 둘러보니, 소알에 이르기까지 마치 야훼의 동산같이, 에집트의 땅같이 물이 넉넉하였다... 그래서 롯은 요르단 분지를 다 차지하기로 하였다”(창세기 13,8-11). 이렇게 아브라함의 온유함 때문에 약속된 땅은 그에게 주어졌다.

사진출처=pixabay.com

겸손한 이를 반기시는 하느님

시편은 자주 하느님이 겸손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비천한 이들을 선호하시며 그분의 심판은 똑똑하고 잘난 체하는 이들보다 낮은 이들 쪽에 기울어지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시킨다. 시편 25장은 하느님께서 겸손한 자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시며 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신다 고 말한다.

149장에서 시편은 하느님께서 “겸손한 이들을 반기시고”­ 권세 있는 이들이 아니라­ “승리의 영광을 주신다”고 하며 이사야서에서 온유한 이들은 “야훼 앞에서 마냥 기쁘기만 할 것”(이사야 29,19)이라고 표현한다.

강철 같은 의지의 모세, 그는 시나이 사막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지만, “땅 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 그만큼 겸손한 사람은 없을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다(민수기 12,3). 매일매일 모세는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복종하기 위하여 애썼으며, 자주 에집트에서의 종살이에 향수를 갖고 되돌아보곤 했던 백성들을 이끌었다. 그는 힘이 있는 지도자였으나 허영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예수, "나는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하다"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응답하는 마리아에게도 빛나는 온유함이 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하느님은 단순히 마리아를 임신시키고 나중에 그 의미를 설명하는 분이 아니었다. 삼위일체의 성자가 마리아의 몸속에서 잉태되어 그의 아들이 되는 하느님의 뜻에 마리아가 자유롭게 응답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인간 역사에 있어 이러한 중요성을 지닌 겸손한 행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의 창조주는 육체를 취하며 우리와 하나가 되었다. 마리아는 구세주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키웠으며 보살피고 제자로서 그분과 함께 있었다.

온유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속성들 가운데 하나이다. 우주를 있게 하고 물위를 걸으며 죽은 이를 살리는 분이 자신에 대해서는 “나는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하다”(마태오 11,29)라고 말한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온유함이 무엇인지 계속 발견한다.

예수는 동물의 피난처인 외양간에서 가난하게 태어났다. 아이 때에는 에집트로 피난 갔다. 어른이 되어서는 옷 이외에 가진 것이 없었고 주머니 속에 동전조차 없었다. (세금을 내는 문제에 대해 대답할 때에 카이사르의 모습이 찍혀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동전을 빌려야 했으며). 그는 노숙자였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누일 곳조차 없다”(마태오 8,20).

그리스도의 첫 번째 기적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라는 마리아의 요청에 겸손하게 복종하면서 아직 당신의 때가 오지 않았다고 말하며 마지못해 행해진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자주 다른 사람들이 일을 수행하도록 허용한다. 자신의 도움을 찾지 않는 사람을 예수가 치유하는 경우는 드물다(두 가지 예외 경우는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과 예수가 체포될 때에 베드로가 귀를 내리쳤던 사람이었다).

나귀를 탄 구세주

구세주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그분은 빌린 나귀를 타고 갔다. 고대 세계의 지배자는 승리의 입성을 할 때 말을 타고 간다. 그것도 자신만을 위한 말, 유명한 품종의 말을 타고 들어간다. 당나귀는 참을성이 있고 부드러운 동물이며 무기와 군대를 거부하는 지도자를 보여주는 완전한 상징물이다.

최후의 만찬 저녁에 그리스도는 사도들, ­첫 번째 주교들이 되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섬기는 모범을 보이며 온유함을 제시한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어 주었다”(요한 13,5). 당황스러운 행동이어서 ­베드로는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그러나 구세주가 사랑의 본질과 지배하기보다 섬기는 것의 의미를 그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더 나은 길이 있을까? 어떤 황제도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준 적이 없다. 그리스도의 이런 몸짓은 우리 중의 그 누구도 완전히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깊이의 사랑과 겸손을 드러내고 있다.

최후의 만찬날 밤늦게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며 예수는 아버지께 간청한다,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소서” 그리고 나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태오 26,39)라고 덧붙인다. 그 기도는 온유함의 진복을 담고 있는 마음의 기도이다. 우리 뜻보다 하느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온유함이다.

마침내,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처형을 받아들이며,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아버지께 용서해달라고 십자가에서 간청하는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보게 된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

악마도 어찌할 수 없는 겸손

또한 에집트와 다른 사막들의 초기 수도공동체 운동의 가르침 속에서 우리는 온유함에 관한 수백 개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

도둑이었으나 수도승이 된 흑인 압바 모세는 한 형제가 어떤 죄, 부족함 때문에 단죄되는 자리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압바 모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한 사제가 “어서 오세요, 공동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압바 모세는 마지못해 나타났으나 깨진 잔에 물을 채우면서 왔다. “스승님,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가 모임자리에 도착했을 때 형제들이 물었다. “내 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내 죄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 죄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나는 다른 사람의 죄를 판단하려고 왔습니다.” 그의 온유한 태도는 다른 이들에게도 감동을 줘서 그들은 형제를 단죄하기보다 용서하게 되었다.

또다른 에집트인 연장자 압바 아나스타시우스는 신구약 성서를 갖고 있었다. 이 성서는 고대 세계에서는 매우 귀한 보물이었으나 그는 방에 있던 성서를 도둑맞았다. 도둑은 이 책을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필사본 장사치에게 가져갔다. 장사치는 성서의 양피지 쪽들을 세밀히 살펴보았지만 얼마나 주어야 할 지 몰라서 며칠 후에 다시 보자고 청했다.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장사치는 그 성서를 압바 아나스타시우스에게 가져갔다. 그는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 성서를 다 살펴보았다. “열 여섯 금화면 적당한 값이라고 생각합니까?”하고 장사치가 물었다. “그래요 좋은 책입니다. 그만한 값이 나갑니다.”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와서 상인은 성서를 가져온 그 남자를 만났고 열 여섯 금화를 주면서 압바 아나스타시우스 원장을 방문했다는 이야기와 그가 동의한 값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저ㅏ 그 남자는 “그런데 그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요?” “아니요 그 말이 다입니다.” “그러면, 성서를 팔지 않겠습니다.” 그는 성서를 갖고 서둘러 수도원으로 갔는데, 성서만 돌려준 것이 아니라 온유한 압바 아나스타시우스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압바 마카리우스의 이야기도 있다. 어느 날 그가 늪지에서 종려나무잎을 들고 방으로 돌아오고 있었을 때 길에서 악마를 만났다. 악마는 계속해서 그를 공격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악마가 물었다, “마카리우스, 나를 이렇게 힘없게 만드는 네 힘은 무엇이냐? 네가 하는 모든 것을 나도 한다. 너는 단식하지만 나는 결코 먹는 적이 없다. 너는 철야를 하지만 나는 절대로 잠들지 않는다. 나를 패배시키는 단 한가지 일을 너는 한다.” 압바 마카리우스가 그것이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었다. 악마는 말했다, “너의 겸손. 그것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너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할 수 없다.”

러시아에서 만난 겸손

현대세계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친 온유함의 모범들을 찾아보려고 기억을 더듬으면서 나는 소비에트 시절 러시아의 수도생활에 대해 쓰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서 조부모가 끼쳤던 특별한 역할에 대해 자주 말했다. 모든 사회적 압력을 다 동원하여 교회로부터 사람들을 분리시켰던 때에도 교회에 계속 가고 예식에 참여했던 사람들이었다. 보통 손자들의 세례를 마련했던 사람은 할머니였다. 교회에 적극적이었던 사람들은 온유하나 강했으며 내적인 힘을 가졌던 사람들이었다. 상의 약속이나 처벌의 위협도 그들을 움직일 수 없었다. 교회의 촛불들은 모두 무신론 국가에 대한 고요한 저항의 행위였다.

세인트 페테스부르그를 레닌그라드라고 칭했던 1987년에 나는 니콜라스 프레오브라쉔스키라는 신부를 만났던 일을 기억한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핵물리학자였다. “내 삶에서 일이 조금만 다르게 돌아갔어도” 하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아마 지금쯤 나는 핵무기를 만들고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그를 그리스도교 신앙에로 이끌었던 영향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1944년 프스코브에서 태어난 그는 러시아정교 신자 가족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 교회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고 어쨌건 종교적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난 신앙에 관한 모든 흔적을 감추려고 애썼습니다. 나는 학생들 앞에서 신앙을 보이고 증언하는 것이 창피했습니다. 십자가를 걸면 그들은 ‘아, 당신은 사제이군요!’하고 말할 것입니다. 신자들에게는 힘든 시절이었지요.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랐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듣길 원하는 대답, 텔레비젼이나 신문에 나오는 대답들을 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의 누이동생이 레닌그라드 포위 때 죽었고, 1915년생인 그의 아버지는 전쟁 전 스탈린 시절에 감옥에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결코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을 잃지 않으셨어요. 아버지는 늘상 우리에게 ‘생명이 우리에게 올 때 받고 절대로 자기자신 이외에 남을 비난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누가 당신을 체포했는지 알고 계셨지만 그들에 대해 절대로 분노를 표현하지 않으셨어요.”

청년기에 니콜라스 신부는 과학에 몰두했고 대학에서는 자연스럽게 물리학을 가르치게 되었으며 동위원소 분리 분야에 전문가가 되었다. “그러자 일하고 있던 연구소에서 나는 군사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이때쯤 나는 책도 발간했지요. 결혼도 했고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내 삶에서 성공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때이지요. 그러나 나는 무엇인가가 빠져있다는 것을 느꼈고 교회로 이끌리게 되었습니다.”

난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물었다. “교회에서 난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꼈어요. 어느 날 레닌그라드의 교회 옆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때 교회 문이 열려 있었고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난 향냄새를 맡을 수 있었지요. 마치 내 부모님과 조모님이 그 향 속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도 그들이 나의 손을 잡아 교회 안으로 이끈 것같이 느껴졌어요.”

그 후로도 더 많은 단계들이 있었다. 그의 주교가 그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의 아버지와 삼촌이 가져다주었던 책들이 있었다. “공부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나는 모든 것을 마음으로 꿰뚫어야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나는 단순히 알기보다 느끼고 싶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또다른 측면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1978년에, 물리학분야에 9년을 보낸 후, 나는 연구소 일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아니었으면 아마 첫 번째 걸음을 떼지 못했을 겁니다. 하느님께 고맙게도 내 아내도 나와 똑같은 걸음들을 뗄 수 있었지요. 내 가족의 아무도 나에게 신앙을 강요하거나 설득시키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늘상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무슨 의미인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 흑인에게서 발견한 온유함

이와 비슷한 온유함의 예를 로사 파크스 같은 아메리카 여성들에게서도 발견한다. 파크스 부인은 앨라바마주의 몽고메리 흑인교회에 열심히 참여했었고, 전국 유색인종인들의 발전협회 지부에서 사무장으로 활동하였다. 1955년에 그는 몽고메리 백화점에서 재봉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해 12월 1일 퇴근해서 시장을 본 후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탔을 때” 하고 그는 이야기를 한다, “버스의 뒷칸 흑인전용 자리가 꽉 찬 것을 보았지요. 그러나 중간쯤에 빈자리가 있었고 백인들은 그 자리에 앉지 않았어요. 세 번째 정거장에서 백인 몇 명이 버스에 탔고 그들은 백인에게 지정된 자리를 다 차지했어요. 그런데 한 백인이 서 있었습니다. 운전사가 돌아다보고 이 백인이 앉을 수 있도록 앞 칸 자리들을 비우라고 말했어요. 그 자리에는 우리 흑인 네 사람이 앉아 있었지요. 우리 네 명은 이 백인 한 사람을 위해서 다 일어나야 했어요. 바로 이것이 인종차별이었습니다.

운전사가 처음 말했을 때, 우리 넷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러나 운전사가 두 번째 말했고 그때 그의 말은 위협이었지요. 그는 ‘당신들 모두는 다 벌떡 일어나 그 자리를 내게 넘겨요,’하고 말했어요. 그때에 다른 세 사람은 일어났습니다. 운전사가 나를 보더니 일어날 것이냐고 물었어요. 나는 아니라고,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는 ‘일어나지 않으면 당신을 체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마음대로 하라고, 체포하라고 대꾸했어요. 난 너무 피곤해서 설 수가 없었지요. 난 더 이상 운전사와 말하지 않았습니다.”

로사 파크스는 체포되었고 유치장에서 하루를 지냈다. “난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하고 그는 기억한다. “그러나 난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매우 귀찮았고 불편하게 느꼈어요. 집에 가고 싶었고 저녁식사를 만들고 그날 밤에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날 밤에 서품된 지 얼마 안 된 마르틴 루터 킹 쥬니어 목사를 포함한 40명의 흑인 목사들이 함께 모였고 그 도시의 버스들이 자행하고 있는 인종차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왔다고 결정했다. 그 그룹에서 가장 젊은 킹 목사는 몽고메리 개선협의회라고 목사들이 이름한 그룹을 이끌게 되었다. 그 다음해에 몽고메리의 흑인시민들은 인종차별 버스들의 승차를 거부하였고, 수천 마일을 걸어다녔으며 불편함과 피로를 견뎠을 뿐만 아니라 위협, 욕설, 폭력 그리고 폭탄세례도 견뎌야 했다. 그들의 긴 걷기 운동은 대법원이 로사 피크스에 대한 몽고메리 지방법원의 판결을 기각하고 공공운송의 인종분리 행위가 헌법을 위반했다고 판결을 내렸을 때 막을 내렸다. 그것은 미국 전역에서 행해지고 있었던 인종분리 행위에 대한 중대한 일격이었다.

1955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민권운동은 버스운전사에게 “아니오”라고 말했던 피곤하지만 단호했던 한 그리스도교인 여성의 온유한 행위에 의해 불이 지펴졌다.

온유함에 관한 이 장은 사순절기에 쓰여지고 있다. 부활 전의 단식주간 동안 매일 정교회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기도가 있는데, 시리아의 성 에프라임의 기도이다. 그 기도는 하느님께 온갖 온유함을 절실하게 청원하는 기도다:

"오 주님이시며 내 삶의 주인이시여,
저에게서 게으름, 나약함의 정신, 권력에 대한 욕망과 쓸데없는 말들을 가져가 주시고
당신의 하인인 저에게 순결, 겸손, 인내와 사랑의 정신을 주십시오.
오 주님이시오 왕이시여.
제 자신의 결점을 보게 하시고 제 형제를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는 세세대대로 복되십니다. 아멘."


[출처] 짐 포레스트(Jim Forest)가 쓴 <진복의 사다리>(The Ladder of the Beatitudes, Orbis, 1999)(<참사람되어> 2002년 10월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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