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삼십대에 이미 외롭고 슬펐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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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삼십대에 이미 외롭고 슬펐던 사람
  • 한상봉
  • 승인 2017.06.28 17: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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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시인 고정희는 ‘사십대’라는 시에서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기에, 이미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럽게 접어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고 했다. 그게 어디 사십대뿐이랴? 세치가 늘어나다가 백발을 염려하는 나이가 되어도 ‘나’만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여전히 아직도 “내가 해야 돼!”라고 고집을 부리는 안간힘도 있다. “나를 놓을 줄 알아야 내 앞에서 세상이 문을 열어준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의 필요가 아니라 너의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이 사실상 내게도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좋겠다.

그래서 산상설교에 나오는 “복되다”는 말이 ‘해피’(happy)가 아니라 ‘축복’(blessing)일 것이다. 나만 좋은 것 ‘해피’지만, 너도 좋은 건 ‘축복’이다. 외로운 것은 너무 싫고, 슬픔은 마냥 벗어나고 싶다. 독일 신학자 칼 라너는 “하느님은 근심하는 존재”라고 했다. 무엇 때문에? 인간이 고통받고 슬퍼하는 언저리마다 당신의 외로움과 슬픔이 고여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가 온통 축복 가운데 있기를 바라신다. 세상과 인간을 지으시고 “참 좋다” 하실 때 느낌 그대로 세상이 햇살을 받아 빛을 내며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당신을 마중 나오길 바라신다.

 

사진출처=pixabay.com


얼마 전에 수녀원에서 강의를 하는데,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한다. “지금까지 내 삶을 이끌어 온 힘은 무엇이었는지?” 가장 교활하고 쉬운 대답은 “하느님”이다. 이리 답하고 나면 서로 더 이상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항시 하느님 생각만 하며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싶다. 주교님도 교황님도 그럴 수 없지, 생각한다. 사실상 “그저 어찌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군요.” 라고 답해야 옳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면 그만이다. “그게 다 은총이죠.”

아예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움처럼, 지금도 저며 오는 것은 대학 동기동창의 죽음이다. 군대 마치고 복학했던, 벌써 30년 전 그 겨울날, 그래, 김윤경. 그 친구를 인천 제물역 근처에서 우연히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다방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졸업하면 뭐할 건데?” “신학교 가려고.” 당시 나는 예수회 입회를 준비하고 있었고, 주안공단에 위장취업해서 노동운동을 하던 그 친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사코 만류했다. 종교는 관념론이라는 거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이야기를 여기서도 들어야 했다.

이른바 ‘민중해방’을 가로막는 게 종교라는 그 친구의 발언은 진지했다. 나는 해방신학을 거론하며 ‘실천적인 종교’에 대해서 역설했지만 그녀를 납득시킬 수 없었다. 기분 좋게 만났다가 씁쓸하게 헤어진 한 주일 뒤에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를 만난 며칠 뒤 자취방을 옮겼는데 바로 그날 밤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부고였다.

그 친구의 삶 자체가 외롭고 슬픈 투쟁이 아니었을까? 그 친구의 죽음에 대해 나는 어떤 방법으로든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해답이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유대의 변방 갈릴래아에서 태어나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죽은 예수님을 생각한다. 한 번도 주류에 끼지 못했던 가련한 예수님이었다. 바닥에서 행복했던 사나이였다. 세상에 대한 근심으로 목숨을 바쳐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삼십대에 이미 외롭고 슬펐던 그 사람을 ‘주님’이라고 발음해 본다. 그동안 그리 살고 싶었던 것은 나의 욕심일까? 아니면 그분의 은총일까?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이 글은 의정부교구 소공동체 잡지 <나무그늘> 6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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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NA 2017-07-10 04:04:02
Flan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