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성찬례는 하나의 생태적인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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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성찬례는 하나의 생태적인 성사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7.05.11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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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경제 - 13
사진출처=pixabay.com

예수의 최후 만찬 이야기는 다음 말씀으로 끝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마태 26,29)

예수와 제자들의 식탁 공동체는 장차 실현될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선취한다. 아버지의 나라는 하느님 뜻의 실현이고 하느님 정의의 완성이다. 구약 성경의 여러 본문에서 포도주는 종말론적 잔치와 연결된다.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6)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요엘 2,24)

“그날에는 산마다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언덕마다 젖이 흐르리라. 유다의 개울마다 물이 흐르고 주님의 집에서는 샘물이 솟아 시팀 골짜기를 적시리라.”(요엘 4,18)

예수의 최후 만찬은 그가 평소 실천한 식탁 공동체, 식사 친교의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의 먹고 마심으로써 인간의 가장 평범한 행위, 즉 가장 일상적인 삶은 구원의 자리가 된다. 예수는 식탁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를 나누었다. 특히 제자들뿐 아니라 당시 유다인들의 사회에서 가난하고 변두리로 내몰렸던 사람들도 그와의 식탁 친교에 초대되었다. 이제 예수는 최후 만찬에서 당신의 몸과 피를 사람들이 먹고 마시게 내어 놓는다. 예수의 식탁 공동체와 최후 만찬을 기억하고 거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성찬례를 통해 그분의 몸과 피를 나누어 먹고 마신다.

빵에 대한 축복과 포도주에 대한 감사를 통해 예수는 음식이 다른 모든 창조 세계처럼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즉 축복과 감사는 창조 세계가 하느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따라서 성찬례를 통하여 창조 세계는 하느님의 작품으로 찬양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찬례는 하나의 생태적인 성사(sacrament)이다.

성찬례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고 베푸시는 하느님에 대한 표지이다. 성찬례의 축복과 감사를 통해 우리는 모든 창조 세계를 위하여 제공하시는 좋으신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예수님의 신앙과 비전을 거듭 반복한다. 따라서 성찬례는 우리가 모든 일상의 활동 안에서 실현해야 할 생태적 지혜를 되새길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우리가 미사 때 바치는 예물 준비 기도는 성찬례와 땅 사이의 명시적 연관성을 표현한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포도를 가꾸어 얻은 이 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

우리는 하느님이 빵과 포도주를 땅에서 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동시에 양식의 생산을 위해 수고한 이들의 고통을 기억한다.

예수를 거행하는 성찬례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이 하느님의 비전을 계시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느님의 비전은 모든 창조 세계를 돌보시고 먹여 기르시는 것이다. 빵과 포도주, 곧 예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이야기로, 그분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가르침으로, 그분의 비전을 자신들의 비전으로, 그분의 죽음을 자신들의 죽음으로, 그분의 부활을 자신들의 부활로 만들도록 초대된다.

성찬례는 우리에게 사리사욕을 위하여 창조 세계의 자원을 통제하는 체제와는 전혀 다른 전망을 제시한다. 즉 성찬례의 식탁 친교는 우리가 나누고 있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의식에로 우리를 초대한다. 만일 우리가 창조 세계를 우리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어떤 것으로 다룬다면 우리의 성찬례는 진정한 성찬례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찬례에 참여한다는 것은 사회-경제적이고 생태적인 차원에서 변혁적이고 전복적인 대안적 행동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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