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복음선포자에게 생명보험은 없다"
상태바
프란치스코 교종 "복음선포자에게 생명보험은 없다"
  • 교종 프란치스코
  • 승인 2017.05.01 1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종, 4월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25일 아침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미사를 봉헌하면서 그리스도인에게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은 항상 거리로 나서야 하며, ‘보장된 생활’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고 확고한 신념에 차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미사에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교종 자문 9인 위원회 추기경들이 함께 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명을 주셨습니다. 곧 복음을 전할 것, 예루살렘에 머물지 말고 기쁜 소식을 모든 이들에게 선포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갈 것을 촉구했습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파견 사명은 복음은 결코 앉아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길을 가는 중에, 늘 여정 중에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나가서, 멈추어 서지 말고 항상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참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모르는 곳이나 예수님이 박해받는 곳, 혹은 예수님의 본래 모습이 왜곡된 곳으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선포하기 위해서 우리는 나가야 합니다. 이 나가는 행동 안에 생명이 함께 하며, 복음을 선포하는 이의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생명보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만일 어떤 복음 선포자가 생명보장을 추구한다면 그는 복음의 참된 선포자가 아닙니다. 

사진출처=Home Dad Smiling

나가지 않고 머물러 있으면 안전합니다. 첫 번째 사명은 이렇습니다. 가라, 나가라.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는 항상 나가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체적인 여정이든, 영적인 여정이든, 고통의 여정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병자들이 정말 많은 병자들이 하는 복음 선포를 생각합시다. 그들은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고통을 봉헌합니다. 그렇지만 항상,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나갑니다.
 
그렇다면 이 선포의 방식은 어떤 것입니까? 마르코의 스승이었던 성 베드로는 이러한 방식을 아주 명료하게 묘사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자신을 낮추시고 겸손하게 되셨기 때문에 복음은 겸손하게 전해져야 합니다. 하느님의 방식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복음 선포는 카니발이나 축제가 아닙니다. 이런 것은 복음 선포가 아닙니다. 복음은 겸손을 통해 선포되고, 세속성의 유혹을 이기는 것입니다. 복음은 인간적인 권력을 통해서 선포될 수 없고, 위를 향해 상승하는 것만 추구하는 마음을 통해서는 선포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는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도록’ 부르심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겸손은 왜 필요합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굴욕을 통해 겸손의 선포, 영광의 선포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음선포 과정 중에 우리는 유혹을 겪게 됩니다. 권력의 유혹, 교만의 유혹, 세속의 유혹, 그리고 수많은 세속적인 유혹들이 있고 이 세속적인 유혹들이 우리를 설교하거나 기도하도록 이끕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 곧 아무런 힘이 없고 오염된 복음을 설교하는 것은 참된 설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진짜라면 복음선포는 유혹을 겪게 됩니다.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복음선포를 지지하더라도 결코 유혹 받지 않았다면 악마가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쓸모없는 것들을 설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화하기 위해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주님께 청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항상 참된 설교 안에는 어떤 유혹이나 박해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항상 생각합시다.

우리를 붙잡아주고, 힘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셨을 때 약속하셨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를 위로해주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선포에 충실하다면, 만일 우리가 십자가의 스캔들, 비정상적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위해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면, 만일 우리가 복음선포를 겸손하게, 참으로 겸손한 방식으로 행한다면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행동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세례 받은 모든 이가 참된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분께 대한 신뢰를 가지고 겸손하게 복음화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육신을 취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친 일이요, 스캔들이지만, 주님께서 우리 가까이 계시고 우리와 함께 행동하시며 우리의 활동을 확인해 주신다는 인식을 가지고 복음을 선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