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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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힘
  •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 승인 2017.05.01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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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 복음과 사도행전-5
사진출처=blagochestie.ru

십자가의 진정한 모순은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가시관을 쓰셨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모든 장면에서 예수님만이 유일한 자유인이라는 점이다! 그분은 붙잡히셨으나 그 상황에 압도되지 않으신다. 그분은 폭력에 완전한 평화와 비폭력으로 응답하신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분은 인간적인 어둠 속의 고통을 견디시면서 여전히 빛을 믿으신다. 그분은 자신 안에서 빛나는 하느님의 선함으로 주위에 만연된 인간적인 악을 내쫓으신다.

인간적으로 그분은 약하시다. 그분의 두 팔은 나무막대 위에 펼쳐졌고, 두 손은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높이 들어 올려진다. 아무것도 그분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그분은 벌거벗겨져서 모든 사람들이 조롱을 한다. 그러나 그분은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곳에서 가장 강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세상이 그의 온갖 능력을 다해도 결코 알 수 없는 그런 능력의 옷을 입으셨다.

인간적으로 그분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모든 사람들을 미워할 세상적인 이유가 있다. 그리고 당신을 버린 사람들, 그분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 그분이 치유해 준 사람들, 자칭 제자라거나 친구라고 했던 이들을 쉽게 원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미워하고 싶은 유혹에 대항했고 원망하기를 거절하셨다. 미움과 원망은 어둠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빛만이 어둠을 이길 수 있고, 사랑만이 악을 이길 수 있다.

그러면 사랑이 어떻게 악을 이길 수 있나? 먼저 악에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음으로써, 악을 더 큰 악으로 갚지 않음으로써 이길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자존심과 탐욕, 두려움과 자기방어, 분노와 후회가 발단이 되어 시작되는 겨루기를 거절함으로써, 사랑은 이 모든 경기에 종지부를 찍는다.

둘째로, 사랑이 악을 흡수함으로써, 죽을 때까지 사랑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악의 영향을 사랑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고통을 당하고,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음으로써, 인간관계에 해를 끼치기를 싫어하는 고통을 참을성 있게 견딤으로써 사랑은 악을 돌고돌게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흡수한다. 사랑은 악이 와서 머물고 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악을 직접 공격하려고 하시지 않으신다. 그분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분노, 노여움을 패배시키려고 하시지 않는다. 악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악이 쓰는 그런 무기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분은 그것을 아버지께 맡기시고 당신 자신을 내어놓으신다. 그분은 하느님께 구속을 맡기실 것이다. 그분은 성령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그 일을 당신 혼자 할 수 없다. 그분은 십자가에 매달린 그저 한 인간일 뿐이다. 그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로 여기서, 바로 지금 사랑을 하는 일 뿐이다. 그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주신 사랑으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으로 그분은 교회에게 가장 강력한 쇄신과 변혁의 모형을 주신다.

그분은 당신을 싫어했던 세상을 사랑하려고 감싸안기 위해 팔을 넓게 벌리고 계신다. 세상은 어둠 속에 있다. 세상은 빛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고문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어둠 때문에 눈이 멀었다는 것을 너무도 분명히 보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24).

그분은 당신 안에서 세상과 화해하고 계신다. 그분은 세상의 어둠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그분의 빛을 주신다. 그분은 하느님의 빛을 볼 수 있도록 모든 창조물을 자유롭게 해놓으신다. 사랑이 미움에게, 선이 악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주시기 위해서 높이 들려지신다. 그분의 인간성은 신성과 완전히 결합하신다. 즉 그분의 인간적 마음이 그분을 죽이는 사람을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는 방법으로 사랑하신다.

그러나 그분의 인간적인 마음은 고통을 겪을 때 번민에 빠지신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아버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저에 대한 당신의 뜻인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의 사랑을 압니다. 저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알고 그것을 굳게 믿어 왔습니다. 이 순간까지도 당신을 믿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믿을 것입니다. 당신이 죽음에서 생명을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 추함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고 이런 어리석음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저의 모든 것이 당신께 달려 있습니다. 저는 제 최선을 다 했습니다. 이제 당신께 맡깁니다. 저는 손을 놓습니다. 승복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하느님의 뜻에 따랐다는 것을 알고 큰소리로 외치신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가 23,46).

그 순간에 구원은 이루어진다. 그 순간에 수천년 동안의 준비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한다. 그 순간을 위해서 한 지극히 작은 인간이 주어졌고 완전히 거두어진다. 갈라진 틈이 이어진다. 이제부터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영원한 분열은 없다. 많은 형제 자매들의 장자가 그의 완전한 ‘예’를 말했다.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된 세상이 어떤 의미에서 조금, 그러나 번복할 수 없도록 극복되었다. 그리고 주님은 나머지 사람들이 자유로이 따라 오기를 기다리신다.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신약>,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참사람되어 2000년 7월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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