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슬픔을 넘어서는 노동,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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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슬픔을 넘어서는 노동, 베네딕토
  • 한상봉
  • 승인 2017.04.2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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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ctus Benedictus de Nursia (480-543)

손끝이 저려옵니다.
손마디 마디가 욱신거리고
이내 잠이 쏟아질 것 같아요.
오늘 하루의 노동은 고달팠지만
오늘 하루의 잠은 달콤합니다.
손바닥을 방바닥에 누이며
지금
행복합니다.
꿈결에라도 어서 오세요, 당신.
편한 제 손을 어루만져요.

노동의 새벽
"가끔은 제 노동이 부끄럽습니다"

그날 새벽이었습니다. 용문까지 가려면 먼길이어서 이른 시각에 깨어 길을 나서야 합니다. 첫 전철을 탔을까요?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일곱 시 가까이 되었더군요.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문청소년수련장에서 아침 아홉시부터 강의를 해야 합니다. 새벽, 하고 부르면 벌써 푸른 잉크가 백지에 번져오는 걸 느낍니다. 밤새 어둠 속에 웅크리던 삶의 생생함이 기지개를 펴는 것입니다.

그 새벽에 전철을 타면,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사람’입니다. 연장가방을 짊어지고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신길 역에서 환승하려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1호선 전철을 기다리며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열차 도착을 알리는 방송음이 들리자, 서둘러 전철 안에 자리를 잡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 “야, 오늘 그치랑 일하기로 했냐?” “그려, 뭐 어때, 다 그런 거지!” 서로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수군거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모자란 잠을 청해보기도 합니다.

이들이 한꺼번에 석계 역에서 내리는 걸 보면, 아마 그곳에서 이들을 데려가려고 기다리는 차량이 있거나, 작업장이 근처일 것입니다. 빛바랜 점퍼와 낡은 구두. 젊은이들은 작업화를 신고 있습니다. 하루의 노동이 하루의 밥이기에, 새벽부터 길을 나서는 이들의 뒷모습이 처연합니다.

나는 이들을 향해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몸을 팔아 일당을 벌고, 나는 입을 놀려 수당을 벌어야 합니다. 그들은 하루에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의 일당을 벌기 위해 새벽일을 나갑니다. 그들의 하루는 고달플 것입니다. 하룻일을 마치고 잠을 청하기 무섭게 새벽은 그들을 깨워 일터로 보낼 것입니다. 나는 서너 시간 강의를 하고나면 30여만 원을 벌어들일 것입니다.

예전에 풍물을 치던 어느 선배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큰 행사가 벌어져 초대되어도 강연을 하는 사람은 큰돈을 주지만, 한바탕 놀아주는 광대들에겐 푼돈을 쥐어준다는 것이 불만이었던 게지요. 바람부는 노상에서 손 비벼가며 공연을 하더라도 따뜻한 물 한 잔 건네주는 사람이 없지만, 강연하는 사람은 미리 나와서 맞아주고, 이야기를 할 때는 따끈한 차 한 잔 단상에 올리는 것을 잊지 않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던 것입니다.

by Ade Bethune

노동에 귀천이 없을 터, 모두가 필요한 일을 적절한 사람이 하는 법인데, 차별이 서러웁다고 하더군요. 세상도 교회도 이미 그어진 분수를 넘어서지 못한다 하더군요. 청량리에서 용문 가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내내 졸았던가요? 아니면 이런저런 밀려드는 상념에 정신을 놓았던가요? 결국 두어 정거장이나 더 가서 정신을 수습하고 낯선 역사에 내렸습니다. 다행히 용문역에 마중 나왔던 수녀님과 연락이 닿아서 강의시간에 겨우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나는 어떻게 강의를 하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내 감기를 추스르며 정신없이 마이크를 잡았던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청중인 대학생들에게 미안하고 송구하더군요. 그래도 어김없이 안주머니에 강사료가 든 봉투를 집어넣고 씁쓸하게 귀가하였습니다. 가끔은 제 노동이 부끄럽습니다.

그분과 함께 하는 노동
"자, 일하게. 그리고 이제 슬퍼하지 말게!"

누르시아의 베네딕토 성인은 ‘노동’에 대한 특별한 영성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그레고리오 교황이 쓴 전기에는 이런 기적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한 어느 콥트 사람이 끝에 낫이 달린 긴 막대기로 연못가의 덤불들을 깨끗이 정리하고 있었다지요. 그러다 쇠로 만든 낫이 물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그 막대기를 물속에 집어넣자 낫이 막대기 끝에 다시 원래대로 붙었답니다. 성인은 이 연장을 다시 콥트 사람들에게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Ecce labora et noli contristari. 자, 일하게. 그리고 이제 슬퍼하지 말게!”

이 문장은 오늘날에도 수도회마다 일하는 공간의 벽에 걸려 있다고 합니다. 이 문장은 일이나 노동에 대한 베네딕토 성인의 생각을 잘 드러내 줍니다. 일은 우리를 슬픔에서 해방시키고, 부질없는 ‘자기연민’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지요.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규칙>을 잠깐 읽어 볼까요.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은 정해진 시간에 육체노동을 하고 또 정해진 시간에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할 것이다 ... 그러나 만일 지역의 필요성이나 가난함 때문에 직접 곡식을 추수해야 할 경우라도 불만스러워 하지 말 것이니, 우리의 교부들과 사도들처럼 자신의 손으로 노동하면서 살 때 비로소 참다운 수도승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심한 사람들 때문에 모든 일을 적절하게 행할 것이다. ... 병들거나 허약한 형제들에게는 한가하지도 않고 과도한 일에 짓눌려 도망치지 않을 정도의 일이나 기술을 맡길 것이다. 그들의 연약함을 고려하는 것은 아빠스가 할 일이다”(규칙 48).

[* 여기서 아빠스(라틴어: Abbas)는 라틴어로 아버지를 뜻하며, 전통적으로 로마 가톨릭의 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는 수도회들과 일부 특정 수도회들에서 속한 자치 수도원의 원장을 일컫는 명칭이다. 아빠스는 “아버지”라는 의미와 “원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집트나 시리아 등에서는 “영적 아버지”, “영적 스승”, “사부”의 의미로 통용된다. 특히 은수자들의 스승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다른 말로는 대수도원장(大修道院長)이라고 부른다. 여성형은 ‘아빠티사’이다.]

성인은 일하는 것, 특히 손으로 하는 노동을 귀하게 여겼답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먼저 자신의 삶에 필요한 용품들을 자기 힘으로 생산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을 직접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 독서를 하는 것처럼 매일 자신의 손으로 노동하는 것은 영성적 의미를 갖습니다. 수도자들은 자신이 만드는 어떤 환상 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쉬지 않고 언제나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고 그분과 일치를 이루어야 하는데, 노동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관상생활을 잘못하면,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피상적인 사람이 됩니다. 한가한 사람은 일에서나 기도에서나 한곳에 몰두하지 못하여, 결국 하느님에게서 도망치거나 골똘히 자신만 생각하는 ‘종교적 나르시즘’에 빠질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실제적인 것이고, 생활 속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이지요.

육체노동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 관상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일하는 모습은 곧 우리 영혼의 상태를 드러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혼란스럽게 꼬이고 얽히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계속 실패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우리가 다른 일에 신경을 쓰고 있거나 잘못된 환상이나 쓸데없는 죄의식에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언제나 내면의 세계를 반영한다고 성인은 가르칩니다.

또한 노동은 그리스도교적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헌신적인 봉사, 섬세함, 이 세상 사물들에 대한 경외감, 겸손 등을 배울 수 있는데, 베네딕토 성인은 당가(當家, 수도원 살림을 맡는 수도자)에게 수도원의 재산과 기구들을 제대 위에 놓인 거룩한 물건처럼 보라고 하였다지요.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알려준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당신의 창조물 안에서 빛나십니다.

그리고 육체노동은 정신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부정적인 느낌과 분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질서를 제공하며, 하느님과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오직 적당한 양의 노동을 할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따라서 누구도 일에 대한 압박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수도자들은 자신이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 일을 통하여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계속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일을 통하여 이 세상을 보호하고 다듬어가도록 하신다는 것이지요.

고요하게 하느님과 더불어 사람 안에 머무는,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공동체

St. Benedict of Nursia painted by Bl. Fra Angelico

베네딕토 성인은 480-490년경에 움브리아의 누르시아에서 태어나 547-575년경에 몬테카시노에서 선종했습니다. 그분이 활동하시던 시기는 평화가 깨어진 불안정한 시대였지요. 로마와 비잔틴 제국이 분열되고, 이민족들은 끊임없이 이동하며 들판을 약탈하여 농사를 지어도 허망한 시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 속에서 우울함과 황량함이 유럽을 지배하고 있었지요.

이 절망의 시대에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원을 창립하는 것으로 응답합니다. 그가 설립한 수도원에서 수도자들은 더 이상 불안정하게 이곳 저곳으로 떠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 머무는 고요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불안정한 시대를 안정시키는 데 한 몫을 하였습니다. 그는 서로에 대한 불신을 거슬러 사람들 속에 있는 착한 뜻과 거룩함을 통해 수도원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물론 베네딕토가 서유럽에서 처음 수도원을 건설한 사람은 아닙니다. 410년경에 칸느 부근에 설립된 레린 수도회가 관상 수도원의 중심이 되었고, 카시안은 마르세유 근교에 동방수도회를 본받아 415년경 남자 수도원과 여자 수도원을 설립하였습니다. 베네딕토의 탁월한 점이라면 오늘날 많은 수도원의 모범이 된 <수도규칙>을 마련했다는 점인데, 예전부터 전해오던 <스승의 규칙>과 같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염세적 관점을 버리고, 이 세상의 사물과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들에게 친절한 정신을 발휘하도록 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란 통제하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 맘대로 돌아다닌다고 믿어서 수도자들에게 행할 것을 세세히 알려주고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자들이 스스로 그리스도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형제 자매들이 한 마음, 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초기교회의 모범을 따라서 수도자들 사이에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관계가 맺어지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규칙을 마련했으며, 여기엔 남성들의 엄격함과 여성의 자비가 성공적으로 종합되었습니다.

그가 마련한 수도규칙의 목표는 윤리적 삶을 살도록 촉구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나아가 하느님을 만나도록 하는 것이었지요. 즉 베네딕토가 생각한 수도생활의 최종 목표는 “하느님을 찾는 것, 종교적 그리움을 채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친절하기를 권하던 베네딕토는 ‘사람’에게 주목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알아가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들과 하느님 안에서 함께 머무는 것들이 수도규칙의 관심사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더불어 노동한다는 것은 곧 사람 안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내 생계를 돕고 다른 이에게 봉사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구체적으로 나누는 노동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과 일치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세상이 모두 수도원입니다. 우리 가정이 수도공동체이며, 내가 일하는 현장이 또다른 수도원입니다. 일상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하느님을 느끼며 자신을 수련하는 삶, 그것이 곧 수도생활입니다.

[출처] <그대 아직 갈망하는가>, 한상봉, 이파르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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