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헤로데와 예수의 밥상에 초대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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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헤로데와 예수의 밥상에 초대된 사람들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7.04.23 2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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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경제 - 11

예수는 군중을 풀밭에 앉히시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마태 14,19) 제자들은 마을의 시장에 기대를 걸었지만, 예수는 필요한 것을 제공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신뢰한다.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는 행동에서 하느님과의 관련성이 잘 드러난다. 여기에서 예수의 동작을 묘사하는 “빵을 드시다”, “찬미를 드리다”, “빵을 떼시다”, “제자들에게 주시다”는 표현들은 최후 만찬(마태 26,26 병행)에서도 반복될 것이다.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된 당신 백성을 하느님이 광야에서 먹이셨듯이(탈출 16장), 예수는 외딴곳에서 이용 가능한 자원을 많게 하시고 그것을 분배하여 많은 군중을 충분하게 먹인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마태 14,20-21)

by Pieter Brugel the Elder

이와 같이 예수의 행동은 폭군 파라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먹이신 하느님의 행동과 닮았다. 즉 예수는 배고픈 이들이 배불리 먹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시편 22,27; 107,9; 132,15; 욥 22,5-11; 이사 58,6-7; 에제 18,5-9; 34,2-3.8; 집회 34,25-27; 마태 5,6; 6,11; 12-1-8). 예수는 배고픈 이들을 먹이고 양식을 정의롭게 재분배한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개입은 현 상황(status quo)을 뒤집어엎는다. 곧 그분의 개입은 전복적이다.

하느님의 통치는 모든 이에게 풍족한 양식이 공급되는 것이다.(에제 34,25-31) 예수는 많은 군중을 먹임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의미하는 완전함과 온전함, 곧 샬롬을 선취한다. 다시 말해 창조 세계를 충실히 돌보고 기름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미리 앞당겨 보여준다. 예수는 당신의 활동을 통해 안식일, 질병, 죄, 악령, 생명, 자연, 바다에 대한 주인됨을 드러낼 뿐 아니라 식량 자원에 대한 주인됨 보여준다.

로마 제국의 사회-경제적 체제와 예수의 대안적 체제 사이의 분명한 대조는 복음서의 문맥 안에서 잘 드러난다. 즉 사천 명을 먹인 이야기(마태 14,13-21; 마르 6,30-44) 바로 앞에 위치한 본문은 헤로데 안티파스의 생일잔치 이야기(마태 14,3-12; 마르 6,17-29)이다.

헤로데의 생일잔치는 사치와 탐욕의 자리로서 지배 엘리트들만이 초대된 배타적이고 닫힌 연회였다. 헤로데와 지배 엘리트들의 부도덕한 행위와 조작은 결국 세례자 요한의 죽임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반해 많은 군중을 먹인 장면은 변두리로 내몰린 배고픈 이들이 초대된 포괄적이고 열린 자리였다.

예수의 식사에서는 많은 군중이 포함되고 그들에게 풍족한 음식이 제공된다. 그리고 그 식사는 가난한 민중의 안녕을 증진시키고 평등을 실현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이것은 배고픈 이들이 하느님을 신뢰하고 배부르게 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하나의 은유적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왕국, 곧 제국적 질서와 하느님의 나라 사이의 극명한 차이와 대조를 발견한다.

이러한 예수의 행동은 경제 정의와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이다. 그것은 착취와 폭력이 아닌 관대함과 나눔의 실천에로의 초대이다. 정의로운 양식의 재분배와 자원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충분한 식량이 공급되고 사람들 사이의 경계들은 철폐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실현되는 대안적인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예수의 이 요구는 굶주리는 민중과 식량 체계에 대한 기존의 사고와 일상적인 생활 방식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예수는 많은 군중을 먹이는 행동을 통해 로마 제국의 사회-경제적 체제와 시장 경제에 대한 대안을 실천하였다. 그것은 배고픈 이들에게 충분한 식량이 공급되는 새로운 창조, 다른 미래, 다른 세상, 딴 세상의 선취이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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