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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유다와 예수] 무덤정원에 들다

[홍성담 소설: 동행, 유다와 예수 -4]

골고다가 내려다보이는 북서언덕 등허리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둠이 깔렸다.
아래쪽엔 처형장이 희미하게 보였다. 십자가의 횡대만 제거된 채 땅에 박혀 있는 기둥들이 마치 허연 유령처럼 멀리 보였다.

오늘따라 칼날을 갈아세운 것처럼 빛나는 아침 햇살이 언덕에 내리 꽂히고 있었다. 그이가 처형장 언덕에 올라서자마자 쓰러지듯이 무릎을 꿇었다. 그이는 이미 넋이 나간 상태였다. 병사가 몰약을 탄 포도주 바가지를 내밀자 그이는 고개를 저었다. 병사들과 망나니들이 달려들어 그이의 옷을 발가벗겼다.

그이와 함께 끌려온 살인강도 한 녀석이 벌떡 일어서더니 언덕 쪽으로 몇 걸음 도망하다가 이내 병사들에게 붙잡혔다. 병사가 몽둥이로 몇 번이고 후려친 다음 억지로 질질 끌고 와서 그 녀석이 메고 온 횡대 위에 눕혔다. 망나니들이 마구 반항하는 녀석을 제압하여 두 손목을 횡대 양 끝에 밧줄로 묶었다. 녀석이 횡대 위에 묶인 채 발버둥을 치다가 발로 망나니의 가슴을 걷어찼다. 성질이 뻗힌 망나니가 쇠망치로 그 녀석의 양쪽 무릎을 깠다.

병사들이 긴 창 자루로 녀석의 허리와 다리를 꼼짝할 수 없게 얽어 눌렀다. 망나니가 가슴에 올라타 앉아서 쇠못 끝을 녀석의 손목에 대고 망치로 힘껏 내리쳤다. 세 번째 망치질이 빗나가면서 녀석의 엄지손가락을 내리쳤다. 손가락이 부러져 하얀 뼈가 덜렁거렸다. 녀석이 고래고래 악쓰는 소리가 언덕에 낭자했다. 그는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두 눈에서 퍼런 불꽃이 튀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결코 저승까지 따라가 복수하겠다고 이를 갈았다.

망치질을 할 때 마다 온 몸을 꿈틀거리며 악을 썼다. 짐승의 얼굴이었다. 양쪽 손목에 못을 박고 나서 망나니들이 횡대에 맨 밧줄을 미리 세워져있는 수직 기둥 꼭대기에 걸쳐서 끌어 당겼다. 횡대에 양 손이 매달려 올라가면서도 그는 바락바락 악을 썼다. 이젠 목이 쉬어 무슨 소리를 뱉어내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들어 올려진 횡대는 수직 기둥 맨 끝의 홈에 끼워졌다. 그리고 버둥대는 양쪽 발목을 모아서 기둥 아래쪽 둥그런 홈에 우겨넣자 병사가 밧줄로 무릎을 묶었다.

망나니가 눈을 들어 십자가에 매달린 녀석을 바라보며 씩 한번 웃고 나서 쇠못을 발등에 때려 박았다. 녀석이 눈에 흰 창을 뒤집어 까며 망나니를 향해 온갖 욕을 해댔다. 못을 다 박은 망나니가 뒤돌아서서 얼굴에 튄 핏방울과 땀을 소매로 닦으면서 포도주가 가득한 바가지를 숨도 쉬지 않고 들이켰다.

그동안 그이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서 무릎 앞 땅바닥만 바라보았다. 뼛조각과 납구슬이 달린 채찍으로 맞은 곳이 겹겹으로 벌어져 드문드문 허연 뼈가 드러나 있었다. 상처에서 흘린 피가 온몸을 검붉게 물들였다. 포도주를 들이키며 한숨을 돌린 망나니들이 달려들어 그이를 횡대위에 눕히려하자 그이가 손을 저었다.

망나니들이 잠깐 주춤하는 사이에 얼굴을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예닐곱 발자국 건너편에 그이의 어머니가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앉아서 무표정한 시선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 뒤엔 얼굴을 알만한 몇 여성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앉아있거나 서서 흐느끼며 그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와 그이의 시선이 잠시 엉켰다. 막달의 마리아가 흐느꼈다. 그이의 시선이 흔들렸다.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 뜨더니 자신의 횡대로 기어갔다.

그제야 망나니들이 달려들어 우악스럽게 그이를 횡대 위에 눕혔다. 유다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눈을 감고 두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풀숲 땅바닥에 이마를 짓찧으면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고 어금니로 혀를 깨물었다. 손바닥으로 아무리 귀를 틀어막아도 망치질 소리와 그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눈을 질끈 감았지만 고통을 참아내는 그이의 표정이 짐승처럼 떠올랐다. 잠시 후에 곧 조용해지자 고개를 들었다. 그이는 십자가에 매달려 숨을 껄떡이고 있었고 어머니 마리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이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예루살렘 도시의 불빛이 저 아래 멀리 몇 점 보였다. 유월절 만찬 행사를 위해서 에세네 지역의 다락이 높고 마당이 넓은 집을 정해 십여일 전에 예약할 때 모든 비용의 절반을 계약금으로 주었다. 그러나 어젯밤 만찬이 진행되는 중에 그는 정신없이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남은 만찬비를 미처 지불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빚을 지고 산적이 없었던 그였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 도망가서 제각각 뿔뿔이 흩어져 있는 우리 형제들 모두가 빚을 지게 된 셈이고, 더구나 오늘 죽어간 그이의 빚이기도 했다.

우리들 중에 살아남은 형제가 남은 만찬 빚을 기억하여 갚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는 오늘 밤 이 도시를 떠나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길이 점점 좁아졌다. 길바닥이 고르지 못한 탓에 바퀴가 가끔씩 요란한 소리를 냈다. 밤이라서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도시의 북동쪽에 있는 베제다 언덕에 들어서면서 다시 골고다 쪽을 내려다보았다. 하루 내내 뜨겁게 달구어진 땅은 아직도 식지 않았는지 어디서 훈훈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그림=홍성담

바람이 언덕 아래쪽으로 쓸어가면서 모래알 같은 작은 불들이 은근하게 빛을 내면서 한꺼번에 날렸다. 사람들은 저 푸른 불빛을 두고 인골 조각이 흩어져 별빛을 머금어 반사되는 빛이라고도 하고 원한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이라고도 했다.

좁은 길을 지나자 꽤나 넓은 분지가 나타났다. 모두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바위언덕이다. 여기저기 작은 동굴 앞을 틀어막은 큰 바위 돌들의 모서리가 별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어떤 동굴은 입구 천정이 무너져 내려 좁은 틈사이로 속이 시커멓게 내다보였다. 금방 무엇인가가 획 뛰쳐나올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수레 손잡이를 놓고 전대를 풀어 돈을 꺼냈다. 이번 유월절 행사에 쓰고 남은 전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한닢 두닢 세닢... 손끝으로 더듬어서 돈을 세었다. 은전 사십 닢이면 남은 만찬비로 충분하고도 남을 돈이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무덤들을 향해 동전을 뿌렸다. 어차피 산자에게 갚지 못하는 돈은 죽은 자들에게 뿌리는 것이 유대의 오랜 관습이었다. 요즘은 산 자는 물론 죽은 자도 돈이 필요한 세상이었다. 죽음과 삶이 따로 없는 불안한 세상이었다.

수레를 한쪽에 세워두고 아리마대 요셉의 가족묘를 찾아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산헤드린의 의원으로 명망가인 요셉의 가족묘는 이 정원무덤의 서쪽 벽면에서 해 뜨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은 죽은 후에 들어가는 묘지조차도 위치와 생김새가 서로 달랐다. 서쪽벽면의 동굴묘들은 역시 일정한 질서를 이루며 단정하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좀 더 사암계곡을 따라 들어가자 새로 단장한 묘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동굴 입구 옆면에 새겨진 글씨를 별빛에 비추어 보려고 애를 쓰다가 그만두고 주머니에서 부싯돌을 꺼내어 불빛을 냈다. 입구 옆 바위에 끌로 파놓은 ‘아리마대 요셉의 가족묘’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동굴입구를 막고 있는 장방형에 가까운 둥근 바윗돌도 새로 깎아 만든 것이 역력했다. 생각보다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바위 돌을 고정시키려고 아래쪽 바닥에 길쭉한 돌멩이 세 개가 박혀있었다.

요셉의 가족묘를 확인한 그는 아까 서쪽벽면 입구에 세워둔 수레를 끌고 와서 새로운 동굴묘지 입구를 막는데 사용할 바위 돌들을 깎아 세워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요셉의 가족묘가 오른쪽으로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수레를 바위 뒤쪽에 밀어 넣어 감추고 수레를 덮었던 건초더미 한 다발을 내려서 바닥에 주섬주섬 깔았다. 그리고 술병을 꺼내려고 수레 밑바닥을 뒤지다가 묵직한 쇠막대가 손에 걸렸다. 묘지입구 바위 돌을 들어 올려 옆으로 옮길 지렛대로 쓰기 위해서 구입한 것이었다.

술병의 마개를 땄다. 적당하게 익은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주둥이를 입에 대고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서 급하게 술을 넘겼다. 족히 절반은 턱을 타고 흘러서 윗옷을 적셨다. 목젖을 넘어간 술기운이 예리한 칼날로 천천히 목을 긋듯이 빈속을 타고 내려갔다. 오늘 하루 내내 찬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건초더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저녁 상현달이 벌써 밤하늘 한가운데에 빛나고 있었다.


 

홍성담 안토니오
민중의 삶과 해방운동, 통일운동 등을 그려 ‘5월 화가’, ‘통일 화가’라는 수식어로 널리 알려졌다. 동아시아의 문화적 원형에 관심을 기울이며 그림을 통해 폭력에 저항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작품으로 <오월광주민중항쟁 연작 판화 ‘새벽’>과 <‘야스쿠니의 迷妄’ 연작>, 환경문제에 관한 글 그림 《나무 물고기》, 장편소설 《바리》 등이 있다.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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