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방탕과 성공신화를 넘어서,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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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방탕과 성공신화를 넘어서, 아우구스티노
  • 한상봉
  • 승인 2017.04.1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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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Augustine of Hippo (354-430)

사랑에도 방향이 있다.
백엽상의 바람개비처럼
그 방향을 알아챌 수 있다면,
그렇게 가슴 포개어 성령을 맞이할 수 있다면.


성공전략이라니

“시크릿 이기는 자의 조건 배려 멘토 육일약국 갑시다 무지개원리 행복한 변화 백만장자 코스 부자들의 에너지 CEO와 경쟁하라 인생을 업그레이드 하라 마음을 리셋할 때 필요한 62가지 플러스 발상법 두뇌사용 설명서 회사에서 찍히기 딱 좋은 15가지 유형 인생성공 성공에의 몰입 사소한 것에 성공하라 승부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 해피니스 업그레이드 아주 특별한 성공의 태도 미래를 바꾸는 습관 심리공략의 기술 부자 마인드 수업.”

이게 무엇입니까? 제가 이용하는 어느 인터넷 서점의 ‘성공전략/성공학 분야의 대표도서’ 항목을 클릭하니, 이런 책 제목들이 차례로 수두룩하게 컴퓨터 화면에 뜨더군요. 그 일부를 옮겨놓은 것입니다. 모두 2417종의 도서가 있다는 친절한 안내문도 따라와 붙습니다. 전철을 타보면 압니다. 요즘이야 다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예전에 젊은 직장인들의 무릎에 올라와 있는 책은 크게 두 종류였지요. 하나는 ‘자기계발서’라는 멋진 딱지가 붙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들과 달라이 라마 등이 쓴 마음공부 책들입니다.

인생에서 보기 좋게 잘 살아보려고 애타는 사람들에게 처세술과 성공학은 이런저런 조언을 하지만 그 책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살아주지 않기에 우리는 속만 타고, 그 책을 쓴 사람들은 그 책을 많아 팔아서 성공하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곧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과 통하지요.

그 반대쪽에 있을 법한 마음공부 책들은 어떠할까요? 달라이 라마는 당신이 쓴 책을 팔아서 큰돈을 벌지도 써보지도 못하였겠지만, 출판사들은 각박한 세상사에 지친 이들이 샘물 같은 말씀 한 모금 얻어먹으려는 영적 갈망에 기대어 돈을 벌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동산 문제에 골몰하고, 돈 되는 일이라면 영혼이라도 팔아치울 기세입니다. 자기가 소유한 모든 물질적 정신적 영적 자산을 총동원하여 몸과 맘과 힘을 다해 ‘성공’하기로 다짐합니다.

예전엔 소박하게 ‘출세’하기를 바랬습니다. 출세(出世)란 세상에서 돋보이게 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바라는 성공은 무슨 일을 통해서라도 돈을 벌고, 재산 규모에 따라서 존재감을 느끼려는 것입니다. 충분히 행복합니까? 아니요, 아직 돈이 부족합니다. 그들은 한쪽 창문만 열어두고 나머지 창은 모두 닫아걸었습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가슴 아픈 인간현실입니다.

이런 하늘아래서 하느님은 자취를 감춥니다. 사람들이 하느님마저 돈 되는 일에 동원할까 두려워서 그런지 하느님은 당신을 꼭꼭 숨겨두신 것 같습니다. 그분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때로는 성당에서마저 그분은 감실 뒤편에 숨어서 나오실 엄두를 못 내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눈빛이 좀 더 순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좀 더 착해지고, 욕심을 낳는 욕심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만 몸과 맘과 생각을 내려놓고, 당신 면전에 고요히 앉아있기를 갈망하시는 것입니다.

루이 에블리가 이런 책을 썼던가요? <사람에게 기도하시는 하느님>. 그래요, 그분의 자비가, 병아리 같이 철없는 자식을 품는 어미의 마음이 어쩜 우리 손을 잡아끌어 함께 기도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만 되었다.’ 하고 말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고백했다지요. “주님, 당신을 위해 우리를 내셨기에, 우리가 임 안에서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찹찹하지 않나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찹찹하다는 것은 “마음이 가라앉아 조용하다”는 뜻이랍니다. 그러니 그분에게서만 참된 휴식과 평화가 있으며 부질없는 욕망을 다스리는 고요함이 주어진다는 뜻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행하지 않고 성공에 목을 걸고 매달리는 동안 밀쳐 두었던 그분께서 오늘밤 내 영혼을 데려가실 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 생각을 한다면, 우리는 다시 고요한 가운데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St. Augustine of Hippo

욕정과 성공을 위한 무리수

<고백록>을 읽어보면, 북아프리카 교회의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세례를 받기 전까지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354년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로마의 궁정관리이며 신자가 아니었으나, 어머니 모니카는 열심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당시의 관습에 따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 세례를 받지 않았는데, 그 동안 탈선과 갈등을 모질게 겪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온 힘을 다해 30년 동안 아들을 가톨릭교회로 이끌기 위해 애썼다는데, 아우구스티노는 오히려 이러한 모성을 아주 성가시게 느꼈습니다. 그의 관심은 성적인 탐닉과 학문적 호기심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세상사를 꿰뚫어 보는 영민함을 지니고 있었으며, 명성을 떨치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자신 또한 그러한 명성을 나누어 갖기를 원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의 부모는 얼마 안 되는 재산에도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 재능 있는 아들에게 학자나 변호사, 정치가이든 모든 직업에서 출세하기에 필요한 조건을 마련해 주려고 가장 좋은 학교에서 교육받게 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고향에서 학업을 마치고, 문법학자로서 언어와 문학을 배웠으며, 수사학자로부터 변증법과 수사학과 교양과목인 수학, 음악, 기하학, 천문학, 철학을 배웠습니다. 그는 북아프리카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던 카르타고에서 공부하다가 16살이 되기 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이 시기에 성(性)에 눈뜨기 시작했답니다.

그는 마음이 맞는 한 패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온갖 나쁜 짓을 일삼았다고 고백하는데, 372년쯤에 철없는 성관계로 아들을 낳은 뒤로는 한 여인과 계속해서 동거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과 결혼하지는 않았습니다. 낮은 신분이었던 이 여인의 이름은 지금도 알 수 없는데, 아우구스티노가 밝히길 꺼렸던 모양입니다.

한편 아우구스티노는 그 뒤로 지혜와 철학에 대한 관심 때문에 마니교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구약성서의 야만적인 역사와 치체로의 작품에 견주어 볼 때 매우 거친 문체로 이루어져 있던 성경에 실망하여 마니교에 매력을 느낀 것입니다. 그는 카르타고에서 교사로 생활했으며, 마침내 로마에서 지내는 동안에 출세할 기회를 얻게 되지요. 밀라노의 황실은 로마시의 총독에게 수사학의 대가를 구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아우구스티노는 마니교도였던 한 친구의 도움으로 이 관직에 추천되어 밀라노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거기서 해야 할 일은 황제와 다른 중요한 인물들을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연설을 하고, 수사학을 강의하는 것이었지요.

출세 때문에 선택한 아우구스티노의 밀라노 행(行)은 암브로시오 성인을 만나면서 전혀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처음에 암브로시오 주교가 집전하는 미사에 그가 참석한 것은 확실한 진리를 배우기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지요. 다만 그가 밀라노에 도착했을 때 암브로시오가 친절하게 맞이해 준 답례였고, 암브로시오가 위대한 연설가라는 명성에 걸맞은 지 시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아우구스티노는 암브로시오 주교의 강론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이윽고 마니교와 완전히 관계를 끊는 실마리를 마련했던 거지요.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달려온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의 직업상 출세뿐 아니라 결혼이라는 안전한 피난처에서 세례를 받도록 신분에 알맞은 결혼을 주선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를 밀라노의 신분이 높은 집안의 10살밖에 되지 않은 처녀와 서둘러 약혼을 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아우구스티노와 동거하던 여인은 그에게 아들을 맡기고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했지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이처럼 이기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아들의 종교생활과 출세를 위해 걸림돌을 제거해야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로 인해 불행해질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덮어버리는 까닭이지요.

Baptism of St Augustine of Hippo. 사진출처=http://communio.stblogs.org

감추어진 은총

그러나 사회적 성공과 학문적 명성을 추구하던 아우구스티노의 삶은 암브로시오 성인을 만나면서 전혀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나갔습니다. 이집트 수도자들의 아버지인 안토니오 성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것도 이때였지요. 그는 그동안 자기 마음을 사로잡았던 모든 것을 먼저 버려야 했던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는 “너는 그것을 들었느냐?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일어나 하늘을 쟁취하는데, 우리는 심장이 없는 학문으로 살과 피 속에서 뒹구는구나.”하고 외치면서 정원으로 달려 나가 얼이 빠진 사람처럼 배회하다가 이웃집 아이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합니다. “집어라, 읽어라, 집어라, 읽어라.”

그는 안토니오 성인처럼 성경을 펴서 로마서 13장 13-14절을 읽었습니다. “포식과 폭음,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새움 속에 살지 맙시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새옷으로 입고, 욕정을 위해 육신을 돌보지 맙시다.” 이 말씀을 읽고 아우구스티노의 마음에 한 가닥 확실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전합니다.

그는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늦게야 임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이시고, 비추시고 밝히시어 눈멀음을 쫓으시니, 향내음 풍기실 제 나는 맡고 임 그리며, 임 한 번 맛본 뒤로 기갈 더욱 느끼옵고, 임이 한번 만지시니 더없는 기쁨에 마음이 살라지나이다.”

그는 새로운 차원의 ‘사랑’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혜와 욕정을 넘어서는 사랑 말입니다. 그는 “나의 무게는 나의 사랑, 어디로 이끌든지 그리로 내가 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아우구스티노는 387년 성토요일 밤에 아들과 친구와 함께 밀라노의 대성당에서 암브로시오 주교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해 말에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388년에 아프리카의 제 고향에서 전 재산을 내놓아 ‘그리스도교적 쉼(otium)’을 위한 수도 공동체를 동료들과 세웠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위대한 성인들을 본받아 많은 수도 공동체를 세우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사제나 주교가 되는 것은 수도생활에 걸림돌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하였답니다. 북아프리카 힙포에서는, 주교 발레리오가 미사 도중에 아우구스티노를 사제로 추천하고, 공동체가 환호하며 동의하는 바람에 사제가 될 수밖에 없었을 때 자기 영혼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 후로 아우구스티노는 40년 동안 힙포의 사제이자 주교로 활동했지만, 개인 재산을 포기하였으며, 금욕적 삶을 통하여 수도생활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사목자로서 학자로서 영적 인간으로서 많은 글을 썼는데, 사랑을 가장 탁월한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하고 싶은 일을 행하라(Ama! et quod vis fac). 입을 다물려거든 사랑으로 침묵하라. 말을 하려거든 사랑으로 말하라. 남을 바로잡아 주려거든 사랑으로 바로잡아 주라. 용서하려거든 사랑으로 용서하라. 그대 마음 저 깊숙한 곳에 사랑의 뿌리가 드리우게 하라. 이 뿌리에서 선밖엔 다른 게 나올 수 없거니...”(요한 서간 주해 7,8).

성인은 자신의 욕심과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자기 삶의 중심에 ‘나’만이 있었다면 이제 그 자리에 ‘하느님의 사랑’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제 사랑의 동기만이 그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 <그대 아직 갈망하는가>, 한상봉, 이파르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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