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아침,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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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아침, 안부를 묻는다
  • 가톨릭일꾼
  • 승인 2017.04.1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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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ie Mackesy

부활절, 아직 아픈 이들의 안부를 묻는다.
세상이 녹록치 않고. 아직 슬픈 얼굴들 많아
그들의 안부를 다시 묻는다.
부활절 아침, 마리아 막달레나는 행복했다.
주님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었으므로,
주님이 먼저 그녀를 알은체 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이 부활절, 사방각지에서 고요한 고통을 견디는 이들에게
주님이 그네들 이름도 불러주리라 기대한다.
그대들 모두를 기억해주길 기대한다.
아직 축하 인사를 건넬 수 없는 부활절 아침이다.
김사인의 아프고 따듯한 시 한 편 덧붙인다.

2017.4.16 한상봉 드림


바짝 붙어서다

-김사인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뻬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벽에 바짝 붙어 선다
유일한 혈육인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저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 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 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 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시집『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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