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도로시와 우정을 나눈 사람들
상태바
[도로시 데이] 도로시와 우정을 나눈 사람들
  • 로살리 뤼글
  • 승인 2017.02.13 14: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로시 데이는 상대방의 상황 속에 실제로 들어가는 매우 위대한 선물을 가지고 있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도로시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고 느꼈다. 그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쏟고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미주리주 센트 루이스의 볼렌 카터)

도로시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연결되고 그가 그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모든 사람들과 결합하고 있었다. 피터 모린이 “그리스도의 사자들”이라고 불렀던 이들–음식과 있을 곳을 청하러 왔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도로시는 많은 친구들과도 연결을 가졌다. 그는 공동체와 관계들을 넓혀갔고 사람들이 그에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도록 했다. 그와 함께 살지 않은 사람들도 그에게 깊은 매력과 사랑을 느꼈다.

일꾼 집의 효소, 스탠리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관계는 16살 때 도로시에게 와서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았던 리투아니아 사람 스탠리 비쉬네브스키였다(도로시보다 훨씬 젊었던 스탠리는 도로시가 죽기 일년전인 1979년에 죽었다).

스탠리는 시위에서 날뛰는 말로부터 도로시를 보호해주기도 하는 등 참으로 도로시에게는 기사 같은 존재였다. 신체적으로 도로시를 방어해주고 끊임없는 농담으로 도로시의 기분을 치유해주기도 했다. 스탠리의 존재는 일꾼에 효소 같은 역할을 했고 안정감을 주었다. 타말이 말하듯이, “스탠리는 항상 긴장을 흩어지게 하기 위하여 적절한 말을 했다.” 쉴라 듀건이 설명한다:

❧ 도로시는 절대적으로 스탠리를 흠모했다. 그는 리투아니아 소년으로 일꾼에 와서 똑같은 모습으로 머물렀다. 진짜로 노동자 출신이었다. 진국이었다. 스탠리는 일꾼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도로시에게 가장 가까웠다. 도로시를 결코 떠나지 않았다. 물론 도로시도 스탠리를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었고 보금자리에서 그를 밀어내보려고 애쓰기도 했으나, 도로시 자신도 그에게 의지하면서 어머니 노릇을 하였다. 실제로 도로시가 어머니로서 돌본 사람은 스탠리밖에 없었다.

스탠리는 도로시에게 말할 이야기들을 생각하느라 밤늦게까지 있었고, 똑같은 이야기들을 계속 반복해서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로시는 그냥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스탠리는 이런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머리(head)들을 쪼개면서 서로를 알게 된다.”

도로시, 수천 명의 어머니

도로시가 친구들과 맺은 우정 관계는 가히 전설적이었다. 매리 래트롭은 도로시를 “수천 명의 어머니”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짐 더글러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도로시에 대해 이렇게 분석한다:

❧ 도로시는 사람들에 대해 매우 특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주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말할 때 “그건 경이롭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 안에 하느님의 신비가 있으므로 참으로 “온통 경이로움으로 가득찼다”고 생각한다. 그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데에는 정말로 경이감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사람들의 가능성에 대해 깊은 감동을 느꼈는데, 이런 심정은 때때로 본인들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가능성 보다 더 깊은 것이었다.

도로시의 몇몇 친구들은 관계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는 능력이 도로시에게 있다고 말한다. 캐트린 럼프가 이렇게 말했다:

❧ 그는 나의 취약함을, 나도 그의 취약함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를 보호하고 나 자신을 강요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매우 간결하고도 무언의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는 절대로 나를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도로시는 나의 약함을 알았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이 도로시에 관해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부분이다. 나는 상처받고 있는 사람을 도로시가 밀어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도로시는 나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려고 애썼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나한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에드 터너는 도로시의 이런 배려가 가족의 가치관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 도로시는 오래 된 친구이든 새 친구이든 간에 모두 지극히 충실했다. 페기 베어드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 도로시는 그를 티볼리로 데려갔다. 그러나 도로시에게는 각 사람이 자기 힘으로 서야 한다는 데이 가족의 사고의 특징이 보인다.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그가 직접 청해야 한다. 데이 가족은 응답하는데 매우 관대하다. 그러나 그들은 멀리 뻗어나가지 않는다.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은 방해하고 침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도로시는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관대한 사람으로, 너그러운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선 그에게 청해야 한다.

톰 코넬은 도로시를 “영혼을 읽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 도로시는 사람들의 상황을 느꼈고 그들의 상황에 대해 말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도로시가 알았을까?”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사람과 전날 밤 술을 함께 마셔서 그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았다. 그러나 도로시는 함께 있지 않았다. 도로시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정확하게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영혼을 읽는 것이다. 그렇다, 도로시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짐 훠레스트는 1960년대에 일꾼에 있었는데, 그 역시 도로시의 이런 자질을 발견했다:

❧ 도로시는 내가 남성과 여성문제–평등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도로시는 새침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젊은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성적인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도로시가 성적인 자유 그 자체를 신봉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다만 성욕에 대해선 인정했다고 본다.

도로시의 가장 전설적인 우정 중의 하나는 피터 클라버 수녀와 맺은 우정이었다. 나는 수녀가 100살이 넘었을 때 인터뷰할 수 있는 혜택을 누렸다. 클라버 수녀는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도로시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의 소임은 복된 삼위일체의 선교회 회원으로서 뉴저지주 뉴와크 대교구에서 아프리카계 흑인들과 관련된 일이었다. 나는 피터 모린과 도로시 데이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으나, 어느 신부에게서 얘기를 듣고 그들을 만나러 뉴욕에 갔다. 그들은 아직 일꾼 신문을 발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로시는 내가 주었던 1달러를 첫 번째로 받은 기부금이라고 항상 주장했다.

도로시와 나는 진짜 친구가 되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아프리카계 흑인들에 대해 일을 하고 있어서 도로시의 관심을 샀던 때문일 것이다. 흑인들은 힘이 없는 사람들이다.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끌림은 도로시의 마음의 갈구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 길거리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아침을 함께 먹거나 특별한 일로 함께 만날 때에, 도로시는 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것이 우리들의 일생에 걸친 우정의 시작이었다.


출처: <DOROTHY DAY : Portraits by Those Who Knew Her>, by Rosalie G. Riegle, Orbis, 2003. <참사람되어> 편역, 2007년 4월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