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K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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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K들에게
  • 김보일
  • 승인 2016.04.2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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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 & Painting

저절로 튀어나오는 감탄사, 비명이나 신음에는 비용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정확한 의사전달과 고도의 상징적인 표현에는 비용이 따른다.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력이 현저히 미달되는 K는 답답하고 미칠 노릇, 애통한 심정이다. K는 과연 누군가? 표현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되는 마이너리티, ‘가난한 이웃사람들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루’들이다.

프란시스 잠이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같은 식자층은 자기의 고통을 자기의 언어로 충분히 표현함으로써 대중들의 사랑과 관심을 얻지만 K와 같은 마이너리티들은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대중들의 사랑과 관심으로부터 소외되는,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더 목마른 자가 우물물을 먼저 마셔야 한다는 필요의 원칙이 허용된다면 세상의 연민과 사랑은 더 큰 고통을 겪었던 K들에게 우선적으로 배분되어야 마땅하지만 승자독식, 우승열패의 세상에서 형편은 그렇지 못하다.

불치의 병이라는 ‘쿠싱’에 걸려 10년 이상 기르던 강아지 뽀가 죽었다. 뽀는 자신의 고통을 칭얼거리는 울음으로밖에는 표현하지 못했다. 뽀에게는 비명과 신음과 울음 이외에 자신의 고통을 미화시킬 어떤 언어도 없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자신의 언어를 가지지 못하고 고통을 침묵으로 참아내고 있는가. 긍휼함이 있다면 프란시스 잠이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같은, 우는 아이에게 줄 것이 아니라. 울고 싶어도 어떤 언어로 울어야 할지 모르는 ‘가난한 이웃사람들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루’와 같은 K에게 먼저 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더 오래 고통스러웠고 더 오래 답답하고 애통해 했을 것이므로.


김보일
배문고등학교 교사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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