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성경에서 말하는 부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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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성경에서 말하는 부의 경제학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7.02.07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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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경제 - 2

성경에서 소개되는 부의 경제학이 가지는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의 경제학은 토지나 다른 자본과 같은 생존을 위한 자원에 대한 인간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생존 자원이 하느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인간은 단지 그 자원을 사용하고 돌보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거절한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15.21)

둘째, 부의 경제학은 자원에 대한 접근에 있어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다. 자원의 소유권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 주장은 다른 이들의 접근을 배제하고, 자원의 집중을 초래한다. 그래서 토지의 생산물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주장한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루카 12,16-19)

셋째, 부의 경제학은 자기 확장, 자기 과시를 위한 소비를 주장한다. 이것에 따르면 자원의 생산물은 소유자의 배타적 소비를 위한 것이다.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 으뜸가는 나라의 귀족들! 그들에게 이스라엘 집안이 의지하러 가는구나... 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수금 소리에 따라 되잖은 노래를 불러 대고 다윗이나 된 듯이 악기들을 만들어 낸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아모 6,1-6)

넷째, 부의 경제학은 수익을 위한 분배 구조를 주장한다. 즉 이익을 위한 교환은 베풀기보다는 더 많이 얻기 위한 것이며, 가진 이에서 필요한 이에로의 흐름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것에서 가지는 것에로의 흐름이다. 그래서 가난한 이와 부자 사이의 간격이 더 커지고, 소수의 풍요와 다수의 가난이 한 사회 안에서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그들이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고 가난한 이들의 살길을 막는다.”(아모 2,6-7)

그림=kathe-kollwitz

다섯째, 부의 경제학이 가지는 기본 견해는 인간은 충분함을 모르고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재물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삶에 있어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재물의 축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여섯째, 부의 경제학이 중요시하는 기본 가치에 따르면 풍요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에 기초한다.

“불행하여라, 불의를 꾀하고 잠자리에서 악을 꾸미는 자들! 그들은 능력이 있어 아침이 밝자마자 실행에 옮긴다. 탐이 나면 밭도 빼앗고 집도 차지해 버린다. 그들은 주인과 그 집안을, 임자와 그 재산을 유린한다.”(미카 2,1-2)

일곱째, 잉여의 처분에 있어서 부의 경제학은 계층 분리를 옹호하고 이를 위해 잉여를 축적한다. 상위 계층은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빼앗고 구조적 폭력을 이용하여 재물을 쌓고 사치스런 생활을 한다.

“너희가 힘없는 이를 짓밟고 도조를 거두어 가니”(아모 5,11), “힘없는 이들을 억압하고 빈곤한 이들을 짓밟으며”(아모 4,1), “의인을 괴롭히고 뇌물을 받으며 빈곤한 이들을 성문에서 밀쳐 내었다.”(아모 5,12)

여덟째, 부의 경제학의 목표는 끝없는 부인데, 인간은 결코 충분함에 만족하지 않는다.

“빈곤한 이를 짓밟고 이 땅의 가난한 이를 망하게 하는 자들아 이 말을 들어라! 너희는 말한다. ‘언제면 초하룻날이 지나서 곡식을 내다 팔지? 언제면 안식일이 지나서 밀을 내놓지? 에파는 작게, 세켈은 크게 하고 가짜 저울로 속이자. 힘없는 자를 돈으로 사들이고 빈곤한 자를 신 한 켤레 값으로 사들이자. 지스러기 밀도 내다 팔자.‘”(아모 8,4-6)

아홉째, 부의 경제학의 결과는 자원의 착취, 계층 분리, 억압이다. 이것은 모든 이의 선을 위한 이익의 공정한 균형과 기본 권리를 보증하는 연대 위에 형성된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리고 계층 간의 분리는 빈곤의 한 가운데에 존재하는 부유함을 초래한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루카 16,19-21)

이러한 계층 분리를 유지하기 위한 힘과 억압은 증가하게 된다.


송창현 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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