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오에게 길을 묻다… “행복하여라,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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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오에게 길을 묻다… “행복하여라,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
  • 한상봉
  • 승인 2017.01.2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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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시 할리크, 분도출판사, 2016

“저의 소명은 교회의 심장에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 성인이 일기에 적어놓은 글이다. 데레사 성인은 한 편의 신학논문도 남기지 않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은 그녀를 ‘교회박사’로 선포했다. 이 당혹스런 결정을 어떻게 이해할까? 신학보다 사랑하기를 열망했던 가르멜회의 젊은 수녀였다. 그런데 더 당혹스러운 것은 미국신학자 토마스 네빈이 꼼꼼하게 연구할 결과, 데레사 성인은 천국과 영생에 대한 믿음 없이 ‘하느님의 부재’를 느끼며 죽었다는 것이다. 교리마저 건너뛸 줄 알아야 성인이 된다는 뜻일까.

<예수의 생애>를 쓴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겟세마니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는 예수님을 이렇게 묘사했다. “사람의 아들이 인간의 무력함과 하느님의 부재, 곧 부재하시는 아버지와 잠들어 있는 벗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흔들리는 추가 되었다.” 이것은 불의한 세상과 귀먹은 천국 사이에서 갈등했던 데레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데레사는 하느님을 갈망했지만, 그녀가 얻은 것은 ‘사랑뿐’이었다. 하느님 없이도 사랑할 수 있는 힘 말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느님께 버림받았던 예수처럼.

이 솔직한 성인은 교회에서 지정한 완덕의 기준을 버렸다. 최후의 심판 때 들고 가려고 꾸준히 선행목록을 작성해두지도 않았다. 그녀는 하느님께서 만인이 꿈꾸는 정상이 아니라 맨 밑바닥, ‘겸손’이라는 비옥한 골짜기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계신다고 믿었다. 오히려 공로를 헤아릴 길 없이 빈털터리가 되어야 ‘복음적 가난’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두고 폰 발타사르는 데레사 성인이 수녀원 연극에서 자신이 배역을 맡았던 잔 다르크처럼 바리사이들의 흔적이 느껴지는 모든 것에 맞서 싸웠다고 적었다.

“데레사는 하느님 홀로 위대하심을 인정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위대함을 확신하도록 몰고 가는 종교의 탈을 쓴 권력의지에 맞서, ...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완덕을 목표로 삼기에 한낱 영적 미용술에 지나지 않는 온갖 수덕실천에 맞서 싸웠다.”

그러니,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수도자라고, 사제라고, 주교이며 교황이라고 해봐야 데레사가 고백한 하느님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설령 신앙의 빛을 잃었다 해도 “헤아리지 않고 그저 사랑하는 것”이다. 시몬 베유는 아예 “사랑하는 이가 모르도록 그를 섬기는 일은 인간 사랑의 가장 오묘한 기쁨 가운데 하나인데, 하느님 사랑과 관련해서는 무신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나는 무신론자에게 동의할 때가 많다”

잔다크 연기를 하고 있는 데레사 수녀

데레사 성인에 대한 이 충격적인 이야기는 토마시 할리크가 쓴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에 담겨 있다. 한국교회 가톨릭신자가 6백만이라고는 하지만, 주일미사 참석률이 3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상황에서, 그 30퍼센트의 신자들도 서로 다른 하느님을 고백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적도 신앙도 고백하지 않는 이들 가운데서 오히려 ‘빛나는 영성’을 감지해야 하는 현실에서, 토마시 할리크는 오히려 무신론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신앙과 하느님에 대해 분명한 답변을 하지 못한 채 진지한 물음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실을 배우려고 한다.

그는 1989년 벨벳혁명으로 공산정권 붕괴 후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자문단으로 일했으며, 체코 주교회의 총대리로 봉직했다. 1992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교황청 비신자대화평의회 위원으로 일했으며, 현재 프라하 카를대학 사회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토마시 할리크는 프라하 어느 지하철역 벽에 “예수가 해답이다.”라고 쓰인 낙서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옆에는 누군가 재치 있게 적어 놓은 또 다른 낙서가 보였다. “그런데 문제가 뭐였지?”

물음이 없는 덧없는 해답이었다. 그것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구호만큼 무의미한 언어이다. 교수 시절에 요제프 라칭거(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나라는 새들이 깃들이는 나무와 같다 하신 예수님의 비유에 비추어 볼 때, 교회는 말라죽은 가지들 위에 이상한 새들이 자주 앉아 있는 나무를 위험하게 닮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생명력을 잃어버린 교회,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다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서 죽은 가지를 매만지고 있는 풍경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오히려 할리크는 “나는 무신론자들에게 동의할 때가 많다.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믿음만 빼고는 종종 거의 모든 점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것은 하느님은 이 세상에 없다는 느낌이다. 하느님께서 침묵하시고 멀리 동떨어져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할리크는 이를 “모든 태양에서 멀어진 순간”이라고 말한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히로시마, 9.11 그리고 우리에겐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의 억울한 죽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절망감이 그런 순간이겠다. 이럴 때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느님 맙소사!”이다.

종교적 환상을 걷어내는 힘, 무신론

굳이 광인의 입을 빌려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예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할리크는 “하느님 없는 세상을 뼈저리게 체험하지 않고는 종교적 추구의 의미, 하느님을 참고 기다리는 일과 그 세 얼굴인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이를 참아주는 것은 사랑이요, 자신을 참고 견디는 것은 희망이며, 하느님을 참고 기다리는 것은 믿음이다.”(아델 베스타프로스)

할리크는 “하느님의 현존의 표징들이 세상 표면에서 쉽게 손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면 진정한 신앙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느님께서 침묵하시는 차가운 밤, 우리 삶과 세상이 불확실함으로 가득 찬 어스름한 순간에 신앙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때 신앙은 확실성과 평안에 대한 목마름을 달래주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숨어 계신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몸에서 무신론의 가시가 떠나게 해달라고 청해서는 안 된다. 무신론은 우리의 신앙에서 ‘종교적 환상’을 걷어 내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다만 무신론에게 최종발언권을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교회와 신앙이 하느님을 온전히 만나려면 갈 길이 멀다. 우리는 아직 그분을 만나지 못했고, 교회는 관료화된 주식회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바닥까지 지쳐 있을 때에도 호렙산을 향해 가던 엘리야에게 천사가 전한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1열왕 19,7)

이미 ‘찢어진 북’이 된 신앙언어

너무나 뻔한 대답만 지니고 있는 교회는 죽은 교회다. 이천년 동안 반복해 온 말만 기억하는 교회는 지금여기에서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다. 그분의 눈물과 기쁨을 나누어 갖지 못한다. 그래서 할리크는 “사제는 능숙하고 상투적인 구호로 남들을 노련하게 조종하는 선동가나 선전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제는 정치인들이나 장사꾼들이 새로운 물건에 관심을 주목시키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동행하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려주며 신비의 문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교회가 써왔던 신앙언어들은 상당수 버려야 할 때가 왔다. 무겁고 딱딱하고 낡아서 복음의 메시지를 표현하기에는 너무 길고 복잡하고 권위적인 말들이 있다는 것이다. 몇몇 신앙언어들은 이미 ‘찢어진 북’이 되어 더 이상 하느님께 찬미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춤출 줄 아는 신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고 한 니체의 말마따나, 엄숙함 때문에 ‘춤출 수 없게’ 된 허울뿐인 신앙언어가 문제다. 미사통상문을 뜯어고쳐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님’이라고 부른다 해서 실상 그분이 더 거룩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거룩해져야 거룩한 우리가 발음하는 그분이 거룩해지는 것이다.

할리크는 어느 개신교 목사의 ‘부흥회’를 처음 보았을 때 당혹스러웠다고 고백한다. 그토록 천박하게 뻔한 방식으로 하느님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유명 브랜드의 자동차를 선전하듯 복음을 선전할 수 있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오늘날 영적 기쁨은, 대중 ‘연예 산업’의 생각 없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는 저급한 예능이라는 값싼 대용품으로 대체된다. 예언자가 되어야 할 이들이 꼴사나운 광대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건 참으로 슬프다.”

가장자리를 중심부로 초대하시는 예수

오히려 예수님은 장사꾼 같은 교회에서 환영받는 ‘고객’ 축에는 아예 끼지 못할 사람들에게 주목하시는 분이다. 눈먼 거지처럼, 제 민족에게서 멸시받던 자캐오에게 오히려 연민을 느끼신 분이다. 예수님이 경험한 세상은 병약하고 공허하고 자기에게만 골몰하는 세상이었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살로 된 마음이 아니라 돌로 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완고하며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 한 무덤 같았다.

그 세상에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이가 많았다. 예수님도 집을 찾지 못해 당신 머리 기댈 곳조차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분은 특히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시고, 그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신다.

예수님은 중심부의 제도와 상징들, 그 사회의 엘리트들과 항상 긴장상태로 살아간다. 성전과 성전 사제들, 종교적 판관들과 고관들,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 특히 도덕적-지적 권위의 화신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긴장을 유지했다. 그래서 결국 그분은 로마제국의 정치권력과 치명적인 갈등에 빠진다. 사실상 예수님의 사명 전체는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가치의 재평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루카 복음에서 ‘하느님의 혁명’을 찬미하는 마리아의 노래에서 예고된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1-53)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될” 것이라는 유명한 말씀처럼(마태 19,30), 할리크는 행복과 그 맞수인 ‘불행’도 역설적으로 표현된다고 말했다.

“행복하여라,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들은 가운데에, 심장부에 올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이 말로 잘 요약된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요지부동의 중심이라고 여기던 것을 깡그리 무시하셨다. ... 대신 그분은 단 하나의 가치를 중심에 놓으셨다. 바로 사랑이다. 그런 다음 ‘가장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을 그 중심으로 초대하셨다.”

이것이 현존하는 교회가 잃어버린 ‘복음의 기쁨’이다. 그러나 교회 역사를 통틀어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으로 불우한 이들과의 연대, 병자와 장애인들에 대한 돌봄, 억눌리고 박해받는 이들을 옹호할 수 있는 용기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교 증언의 고갱이다. 이런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어둡고 퀴퀴한 세상 구석구석에 천상의 향기를 전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진보적으로 앞을 내다보는 눈과, 전통의 토양에 굳건히 서 있는 발과, 세상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손과, 하느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를 고요히 관상하며 경청하는 주의 깊은 귀가 필요하다.”

by Martin Erspamer

교회에 알려지지 않은 성인들

이참에 할리크는 자캐오를 ‘성인’으로 지명한다. 세관장 자캐오는 부자였지만 멸시받던 주변부였다. 자캐오는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리고 예수를 몰래 엿보고 있다. 그러나 기실 예수님이 먼저 자캐오를 발견하였다. 자캐오는 회심의 눈물을 보이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먼저 그와 함께 머물 것이라고 초대한다. 그 순간 먼지 같던 자캐오가 ‘사람’이 된다. 그 기쁨 때문에 자캐오는 제 재산을 나눠줄 것을 약속한다.

할리크는 이 자캐오는 영원한 추구자, ‘엿보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불렀다. 그가 나중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조차 중요하지 않다. 실상 세례 받고 신자가 되었다고 하느님을 아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은 숨어 계시며, 그 진실을 향해 진지하게 마음을 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루이스(C.S. Lewis)가 쓴 <스쿠르테이프의 편지>에서 티슈너 신부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신앙을 저버린 사람을 하나도 못 만났지만 주임신부의 멍청한 강론 때문에 빠져나간 사람은 많이 보았다”고 꼬집었다.

예수님뿐 아니라 어느 인간과도 진정한 사랑에 이르지 못한 사제의 발언은 진부하고 지겨운 소음처럼 들린다. 도로테 죌레가 ‘우리시대 마지막 신비주의자’라고 불렀던 시몬 베유는 죽는 순간 까지 세례성사 받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교회에 소속되기보다는 교회를 위해 죽는 편이 더 기쁘다며, 의식적으로 ‘교회의 대기실’에 머물렀다. 은총은 교적이 아니라, ‘아직 아니’라는 간절하지만 겸손한 열망 안에서 이미 성취된다고 믿었다.

“리지외의 데레사는 자기 신앙의 빛이 가려지는 일식 속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끝까지 간직했다. 니체는 하느님과 계속 열정적으로 씨름했다. 시몬은 끝까지 열정적으로 굶주리며 기다렸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복음의 기쁨>을 발표했을 때, “돈이 새로운 우상”이라며 “견제 받지 않는 경제독재”를 비판했을 때,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교종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이때 교종이 “이 모든 이야기는 사회교리에 따른 것”이라고 하면서 “나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동안 좋은 무신론자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한 적이 있다.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는 시성절차를 통해 그녀의 길이 하느님의 품 안에서 마무리되었다는 교회의 확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니체와 시몬 베유에 관해서 교회가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참에 할리크는 놀라운 이야기를 남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총애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하느님의 은밀한 마음속, 그분의 ‘가슴속에서’(in pectore) 부러운 보호를 받는다. 하느님께서는 교황청 시성성에도 그들이 누구인지 알려 주시지 않는다.”

하느님은 오늘날 예수님의 분명한 제자들을 통해서도 드러나시고, 자캐오처럼 갈망하는 마음에서도 드러나시고, 시몬 베유처럼 당신을 기다리는 겸손을 통해서, 때로는 ‘신의 죽음’을 선포한 사람을 통해서도 드러나신다. 다만 얼간이들만이 교회법과 교리 안에서만 성인을 찾는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복음은 교회가 아니라 광장에서 오히려 장엄하게 선포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에서 드러나듯이, 교회당 불이 꺼진 지 오래 되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조차 “무신론자도 선을 행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했으며, “나는 사방이 꽉 막혀 자신들 보안에만 매달리는 병든 교회보다는 길에 있는 더럽고 상처입고 부서진 그런 교회를 좋아한다”고 전했다.

*이 글은 <가톨릭평론> 2017년 1-2월호에 게재했던 원고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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