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막은 설악산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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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막은 설악산케이블카
  • 황인철
  • 승인 2017.01.23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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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철 칼럼]

지난 1월17일, 서울 시청 근처에서는 조촐한 축하잔치가 열렸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사실상” 무산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물론이고, 종교인, 국회의원, 기자, 산악인, 문화예술인 등 각계각층에서 설악산 케이블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이들이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작년 말 12월 28일, 문화재위원회 덕분이었다.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대해서 10명의 위원 전원의 동의로 “부결”을 결정하였다. 이로써 2000년 대 이후 3번째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사진=황인철

2012, 2013년 이미 1,2차 시도는 애초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거부되었다. 환경성, 경제성 모두 문제라는 이유때문이었다. 하지만 2015년 8월28일,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양양군이 신청한 3번째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조건부로 허가하였다. 지난 두 차례의 불가결정을 뒤집은 결과였다. 국립공원 내 개발사업은 덕유산 스키장 이후 18년 만의 일이었다.

어떤 학자는 이 날을 “생태국치일”이라 불렀다. 환경부가 스스로 보호하겠다고 정한 국립공원을 포기한 날이라는 의미였다. 그동안의 생태계 보전정책의 흐름을 역행하는 처사였다. 환경부의 이런 결정 뒤에는 청와대가 있었다. 박근혜의 “평창올림픽에 맞춰 조기추진했으면 한다”는 한마디 지시는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는 방편이 되었다. 대통령까지 지시하고 환경부가 앞장서는 이 정부의 행태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졌었다. 결국 작년 말 케이블카 추진의 배후에 소위 박근혜-최순길 게이트의 핵심인사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그 의구심은 해소되었다.

국립공원위원회의 허가결정으로부터 정확히 1년4개월이 지난 날, 문화재위원회는 천연기념물 171호인 설악산천연보호구역에 케이블카는 안 된다고 결정하였다. 문화재위원회의 회의록을 보면 동물, 식물, 지질, 경관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케이블카가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산양의 서식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며, “천연보호구역 내에 외래종(식물 및 병원균)의 침입 가능성이 증대”할 것으로 보았다.

지질분야에서는 케이블카 계획지역에 “지구진화 단계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증거들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경관과 관련해서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상당히 훼손할 것”으로 보았다. 그동안의 사업자인 양양군의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그리고 국립공원위원회와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케이블카의 영향을 왜곡, 축소하여왔던 환경부도 망신을 당한 셈이다.

결국 이번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은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를 바로잡은 것이다. 설악산 케이블카는 1970년 박정희 정권 시절 시작되었다. 국립공원 지정 1년 전에 박정희가 허가해준 속초 권금성 케이블카는 40년 넘게 박정희 친인척의 특혜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제2의 설악산케이블카 사업, 곧 오색케이블카 사업 시도는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1982년에 강원도와 건설교통부가 2차례나 시도하였지만, 문화재위원회는 모두 불허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34년 전의 역사가 부끄럽지 않은 결정이 2016년에 다시 내려졌다.

설악산은 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구역,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등 한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보호받는 지역이다. 이러한 설악산의 정상부, 생태적으로 가장 민감한 지역까지 거대한 철탑을 박아서 관광객들을 끌어올리겠다는 발상은 생태계 보전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설악산과 같은 핵심 보호지역은 전 국토의 1%에 불과하다. 이곳만이라도 온전히 자연의 몫으로 남겨두자는 취지다. 설악산이 뚫리면 다른 산들은 속수무책이다. 국립공원위원회 조건부 결정 이후 지리산, 속리산 등 전국의 30여 곳에 우후죽순처럼 나오는 케이블카 계획이 이를 반증해 준다. 이번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은, 국토의 1%에 불과한 핵심 보호지역조차 얼마나 개발논리 앞에서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번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4대강사업, 설악산케이블카와 같은 개발 앞에서 환경부는 자신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은 그동안의 생태계 보호정책을 거꾸로 거스르는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향후 전국의 케이블카와 같은 보호지역 내 난개발도 주춤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에서부터 박근혜 정부의 케이블카 추진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곳에서는 자연도 위태로울 수 밖에 없다. 프란치스코 교종도 환경과 사회의 문제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환경위기와 사회위기라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당면한 것입니다." (찬미받으소서 139항)

케이블카 부결 뒤에는 촛불의 힘이 있었다. 2015년 조건부 허가의 배후에 박근혜의 지시가 있었다면, 2016년 부결의 배후는 박근혜 탄핵이 있었다. 민주주의, 인권, 사회정의, 환경문제는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 있다.

아직 넘어야 할 많은 고개들이 많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곳곳에 뿌리내린 박근혜로 상징되는 불의한 구조와 시스템은 여전하다. 노동자, 농민, 청년, 여성들의 삶이 나아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환경과 안전을 위협하는 원전과 개발 옹호세력은 여전히 강고하다. 우리 앞에는 긴 터널이 놓여있다. 설악산케이블카 취소라는 결실은 그 어둔 터널을 걸어갈 작은 힘이 되길 희망한다. 

 

황인철 마태오
녹색연합 환경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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