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하늘을 바라면서도 땅에 성실한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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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하늘을 바라면서도 땅에 성실한 예수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7.01.16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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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묵시 - 3
Odilon Redon, “Christ In Silence”wikipaintings.org

“예수의 가르침과 활동은 미래의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묵시 문학적인 기다림에 의해 형성되었는가?” 혹은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를 현세적인 지혜 문학적인 개념으로 이해했는가?”

예수는 본래 탁월한 지혜의 스승으로서, 인간의 참된 행복, 원수에 대한 사랑, 위선에의 경고, 말과 행동의 관계, 단순한 생활 방식, 하느님에 대한 신뢰 등을 가르치면서 당대의 사회적 관습을 바꾸려고 했던 반(反)문화적인 지혜의 스승이었는가?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 활동에서 종말론적이고 묵시 문학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지혜 문학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려는 일부 학자들의 시도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다.

제2성전 유다이즘에 관한 새로운 연구는 지혜 문학 전승과 묵시 문학 전승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당시 유다이즘에서처럼 역사의 예수에게도 지혜 문학 전승과 묵시 문학 전승은 서로 결합되어 있었다.

묵시 문학적 전승은 후대의 초대 공동체에 의해 예수에게 덧칠된 것이 아니라 애당초 그분 안에서 지혜 문학 전승과 함께 결합되어 있었다. 따라서 예수에게 묵시와 지혜는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라 통합(integration)의 대상이었다.

예수에게 있어는 지혜 문학이 말하는 땅과 묵시 문학이 가리키는 하늘이 결코 분리될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땅과 하늘, 지혜와 묵시는 상통(相通)할 것이었다. 땅은 하늘과 관계없이 고립된 땅이 아니었고, 하늘은 땅과 관계없이 닫힌 하늘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라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신다. 예수는 하늘의 가치와 질서를 땅에서도 실현하려 했던 분이시다. 그에게서 하늘과 땅은 연속성(continuity)을 가진다.

성경 시대의 사람들은 삼층 구조의 세계관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맨 위의 하늘과 그 아래의 땅, 맨 아래의 셔올로 이루어진 이 세계관은 전체 성경 이야기의 배경을 이룬다.

하늘은 하느님의 세계이고 땅은 인간의 세계이며 셔올은 죽은 이들의 세계이다. 이러한 배경 안에서 예수 사건이 서술된다. 예를 들어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인간이 된 것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것으로 표현되고, 그가 죽은 것은 셔올로 내려간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은 죽은 이들 중에서 일으켜진 것이고,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어간 것은 승천, 즉 하늘로 올라간 것으로 표현된다. 이와 같이 복음서는 예수에게 일어난 일들을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에 입각하여 하강과 상승, 즉 내려옴과 올라감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세계관에 따라 예수에게 있어 하늘과 땅의 연속성이 표현된다. 이 연속성의 문제는 역사의 예수과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서도 제기된다. 역사의 예수는 지상의 예수, 인간 예수, 부활 이전의 예수, 땅의 예수이다. 이에 비해 신앙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 하늘의 그리스도이다.

사실 그리스도교의 역사 안에서 고래로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분리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다. 이 둘 사이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주장들이다. 이것은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하고, 역사와 종말, 역사와 신앙을 분리하려는 시도이다. 결국 땅과 하늘을 분리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예수는 하늘과 땅, 묵시와 지혜를 당신 안에서 통합하였다. 이러한 예수에게서 출발하는 그리스도 신앙은 하늘과 땅의 통합, 묵시와 지혜의 상통, 역사와 종말의 소통을 지향한다.

그리스도인은 그 뿌리는 땅 속에 깊이 내리지만 그 가지는 저 높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나무처럼, 이 땅에 살지만 하늘을 향해있고, 하늘을 바라보지만 땅에 두 발을 디디고 서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과 땅의 긴장 안에 살고 있다. 땅에 살면서도 하늘을 향하고, 하늘을 바라면서도 땅에 성실한 삶, 그것이 바로 예수의 삶이었고 그분을 뒤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와 같이 역사적 예수 뿐 만 아니라 제2성전 유다이즘에서는 지혜 문학 전승과 묵시 문학 전승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서로 결합되어 있었다.


송창현 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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