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읽어주는 성경 "남자에게서 여자가 나왔으니 여자는 1+1 같은 건가요?"
상태바
딸에게 읽어주는 성경 "남자에게서 여자가 나왔으니 여자는 1+1 같은 건가요?"
  • 유형선
  • 승인 2017.01.04 1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형선 칼럼] 

약 2년 전, 첫영성체 집중교리를 받으면서부터 큰 딸이 진지하게 하느님에 대해 생각하는 게 저의 눈에도 보였습니다. 일요일 아침마다 어린이 미사를 온 가족이 참여하고 딸들이 주일학교를 마칠 때까지 성당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주일학교 참석이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작년부터 큰 딸이 일요일 아침 어린이 미사를 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단순 했습니다.

“일요일 만이라도 늦잠을 자고 싶어요.”

지쳐있었습니다. 매일 학교에 다니면서 이런 저런 방과후활동에 저녁 태권도 수업을 마치면 저녁 9시가 다 되어갑니다. 토요일 오전 플루트 수업을 3년째 수강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딸이 공부하는 시간을 가만히 따져보니 어른인 제가 직장에서 보내는 노동시간과 비교하여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일요일 만큼은 주일학교 대신 늦잠을 자게 하고 저녁미사에 온 가족이 함께 다닌 지도 일년이 다 되어 갑니다.

두 달 전부터 딸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두 딸들에게 하느님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주일학교를 보내지 않는 대신 일종의 홈스쿨링을 하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일주일에 2~3번씩 잠들기 전 침대에서 읽어줍니다. 큰 딸이 첫영성체 때 선물받은 <그림이 있는 성경>(표동자 엮음, 김옥순 그림, 정태현 성경풀이, 바오로딸)을 읽어주고 있습니다. 구약 두 권, 신약 한 권으로 이루어졌는데 저희는 첫 번째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빠가 성경을 읽어주는 시간은 저에게도 딸들에게도 기분 좋은 시간입니다. “아빠가 오늘 성경 읽어줄 테니 얼른 양치질하고 세수하고 잠옷으로 갈아 입으세요!”라고 제가 말하면 두 딸들은 입으로 “두다다다” 소리를 내며 번개처럼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리고는 침대에 제 양 옆으로 큰 딸과 작은 딸이 나란히 엎드립니다. 성경은 구절구절이 흥미진진한 이야기 책이었습니다. 제가 책을 펼쳐 한 구절 한 구절 읽고 있으면 두 딸들은 한 구절도 놓칠 수 없다는 집중력으로 책을 함께 봅니다.

처음 성경을 읽어주는 날, 천지창조를 읽었습니다. 하느님이 매일같이 무언가를 창조하시고 나면 성경에는 ‘하느님이 보시니 참 좋았습니다’라는 구절이 반복하여 나옵니다. 이 부분을 두 딸이 정말 좋아했습니다. 반복되는 패턴을 딸들이 알아차리고 나서는 제가 ‘하느님이 보시니’라고 말하면 ‘참 좋았습니다’라고 뒤를 이어 딸들이 합창을 하고는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자지러졌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을 딸들에게 읽어주기에는 난감한 부분이 있습니다. 두 딸들은 성경에서 남녀차별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고 강하게 항의합니다. 여기에 딸들의 질문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 하느님은 왜 여자보다 남자를 먼저 창조한 건가요?
- 남자의 갈비뼈를 뽑아서 여자를 만드셨다고요? 남자에게서 여자가 나왔다면 여자는 1+1 같은 존재인가요?
- 결혼할 상대를 얼굴도 보지 않고 부모님이 결정하는 건가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과 브투엘의 딸 레베카가 결혼하면서 레베카는 이사악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하는 건가요?
- 구약성경에는 형제들만 나오지 자매들 이야기는 없나요? 카인과 아벨 형제, 에사우와 야곱 형제, 요셉 형제 이야기 외에 자매들의 이야기는 없나요?
- 하느님은 왜 남자의 하느님으로만 불리는 건지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외에 여자 누구누구의 하느님이라는 이야기는 없는 건지요?

저는 몰랐습니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사십 여 년 동안 남성으로 살아왔기에 여성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열세 살이고 아홉 살인 두 딸들의 눈에도 양성평등은 남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장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두 딸들에게 이 사회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왠지 한 발 뒤에 서야 하는 존재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1+1 처럼 덤으로 취급 받는 존재였습니다. 공식적이고 중요한 사안에서 여자의 이름은 늘 뒤에 숨어있고 남자의 이름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딸들과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도 세상도 모두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남성중심 사회였고 가부장적인 사회였단다’라는 한마디로 모든 질문에 대답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성경을 읽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두 딸의 아버지로서 저는 딸들이 던지는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구해보려고 합니다. 부디 하느님의 이야기를 두 딸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잘 할 수 있겠지요?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