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이름이 ‘우주’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숨 멎을 듯 차오르는 한가위 만조의 동검도 들녘 뚝방에서 코스모스를 바라본다. 저토록 가늘고 여린 꽃이 어찌하여 ‘코스모스(Cosmos)’, 곧 우주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코스모스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코스모스(kósmos) 에서 왔다. 본래 뜻은 ‘질서’, ‘조화’, ‘아름답게 배열된 것’이었고, 그 의미가 확장되어 마침내 ‘질서 있게 이루어진 세계’, 곧 우주를 뜻하게 되었다.
그러니 코스모스라는 꽃 이름에는 처음부터 두 가지 뜻이 포개져 있다. 아름다움과 질서. 그리고 우주. 꽃 한 송이 안에 세계의 이름이 들어 있는 셈이다.
좀더 깊이 꽃에 관한 내용을 찾아 보고 더 흥미로운 것은 그 형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송이라고 생각하는 코스모스의 꽃은 사실 수많은 작은 꽃들이 모여 이루어진 두상화(頭狀花)라고한다.
바깥에는 대개 여덟 장. 안팎의 꽃잎처럼 보이는 설상화가 둘러 있고, 가운데 노란 부분에는 수많은 작은 관상화가 밀집해 있다. 하나처럼 보이지만 여럿이고, 여럿이면서 하나의 꽃을 이룬다.
코스모스는 우주를 쏙 빼 닮았다. 별 하나가 우주에 존재한다는 것은 수많은 별들이 관계를 이루어 은하가 되었다는 뜻이다. 생명들이 서로 기대어 생태계를 이루듯, 이 작은 꽃도 수많은 생명이 질서와 관계 속에서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었다.
아름다움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질서를 얻을 때 태어나는 것이다.
2. 가장 연약한 꽃이 가장 큰 질서를 말한다.
코스모스는 기이할 만큼 가늘다. 줄기는 곧 부러질 것 같고, 잎은 실처럼 잘게 갈라져 있다. 바람이 불면 온몸을 흔든다. 장미처럼 자신을 단단히 세우지도 않고, 목련처럼 두꺼운 꽃잎을 갖지도 않는다. 그런데 좀처럼 쓰러지지 않는다. 바람을 거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은 버티는 힘보다 흔들릴 줄 아는 힘에 있다.
나는 이 꽃 앞에서 인간의 문명을 생각한다. 우리는 강해지기 위하여 너무 많은 것을 쌓아 올렸다. 더 높은 건물, 더 빠른 기계, 더 강력한 무기, 더 많은 상품, 더 편리한 생활을 만들었다. 우리는 자연을 정복할수록 문명이 진보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코스모스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높아지려 하지 않고, 지배하려 하지 않고, 바람을 밀어내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흔들린다. 어쩌면 우주의 질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강자의 질서가 아니라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관계의 질서인지도 모른다.
해가 제 자리를 지키고, 강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고, 벌이 꽃을 찾아오며, 꽃은 벌에게 자신의 꿀을 내어 준다. 그 어느 존재도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태계의 질서는 지배의 질서가 아니라 상호 의존의 질서다.
3. 그런데 인간은 코스모스를 ‘카오스’로 바꾸고 있다
오늘 우리는 역설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코스모스’라는 꽃을 바라보면서, 정작 그 꽃이 살아갈 지구의 질서를 허물고 있다. 과학자들은 오늘날 생물종의 소멸 속도가 자연적인 배경 수준을 크게 웃돌고 있으며, 인간 활동이 그 주요 원인이라고 경고해 왔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를 지구 생명사의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전 세계적으로 약 100만 종의 동식물이 멸종 위험에 놓여 있다고 한다. 현재 종의 멸종 속도가 지난 천만 년의 평균보다 수십 배에서 수백 배 높다고 평가하고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지구가 곧 끝난다’는 식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구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가 알고 사랑했던 생명의 세계가 하나씩 침묵하는 것이다. 한 종이 사라지는 것은 이름 하나가 식물도감에서 지워지는 일이 아니다. 수백만 년 동안 이어져 온 하나의 생명의 계보가 끊어지는 일이다.
한 마리의 나비가 사라지고, 그 나비가 찾아가던 꽃이 사라지고, 그 꽃에 기대어 살던 곤충이 사라지고, 마침내 그 모든 관계가 만든 풍경이 사라진다. 멸종은 숫자가 아니다. 관계의 붕괴다. 그러므로 생태 위기의 본질은 어쩌면 ‘종의 감소’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우리가 세계를 더 이상 관계로 보지 않는 데 있다.
산을 목재로 보고, 강을 자원으로 보고, 바다를 어획량으로 보고, 동물을 상품으로 보고, 땅을 가격으로만 바라보기 시작할 때, 세계는 더 이상 코스모스가 아니다. 질서는 사라지고 카오스(chaos)가 시작된다.
4. 멸종의 시대에도 꽃은 핀다
그런데도 올가을 코스모스는 피었다. 바로 이 사실이 나를 오래 붙잡는다. 인간이 지구를 뜨겁게 만들고, 숲을 밀어내고, 수많은 생명을 사라지게 하는 동안에도 꽃은 아무 말 없이 제 계절을 기억한다.
씨앗은 겨울을 견디고, 땅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햇빛과 비와 바람을 받아 다시 꽃을 밀어 올린다. 그래서 나는 이 꽃을 낭만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오늘의 코스모스는 어쩌면 우리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경고다.
“보아라. 세계는 아직 아름답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이 언제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소유하려 한다. 사진으로 찍고, 꺾어 들고, 이름을 붙인다. 꽃을 사랑한다는 것은 꽃 한 송이를 사랑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꽃이 피어날 흙을 사랑하고, 그 흙에 내리는 비를 사랑하고, 꽃가루를 옮기는 벌을 사랑하고, 그 위를 지나가는 바람과 구름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한 송이 꽃을 끝까지 사랑하다 보면 결국 지구 전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생태적 감수성은 미학의 가장 깊은 곳에서 시작될 수 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능력이 살려 두어야 한다고 느끼는 책임으로 나아갈 때, 미학은 윤리가 된다.
5. 우주가 한 송이 꽃이 되어 우리를 바라본다
나는 다시 코스모스 앞에 선다. 푸른 하늘 아래 가느다란 줄기 위에 얹힌 분홍빛 꽃잎. 너무 작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이상할 만큼 큰 세계가 있다. 중심과 주변이 있고, 여럿과 하나가 있고, 질서와 다양성이 있고, 탄생과 소멸이 있다.
우주가 그러하듯 꽃도 그러하다. 아, 그렇다. 우리는 늘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를 찾았지만, 어쩌면 우주는 우리의 발밑에도 있었는지 모른다. 풀잎 하나, 곤충 한 마리, 갯벌의 작은 게 한 마리,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한 송이 안에도 138억 년 우주의 시간이 스며 있다. 그 원자를 만들었던 별이 있었고, 그 별이 죽어 흩뿌린 물질이 지구가 되었으며, 그 물질에서 생명이 태어나 오늘 한 송이 꽃이 되었다.
그러므로 꽃을 바라보는 것은 단지 꽃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다. 우주가 자신을 꽃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내는 한순간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렇다면 여섯 번째 대멸종의 시대에 코스모스가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인간이여, 너는 이 아름다운 질서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배자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인가. 더 많이 차지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생명에게도 자리를 내어 줄 것인가.
가을바람이 분다. 코스모스가 몸을 낮춘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본다.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조광호 신부
1967년 천주교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하여 서울 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신부가 된 다음 독일 뉘른베르크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천주교 주교위원회 출판국장으로 천주교 200주년 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독일유학 후 한국현대미술 50년전, 일본 국제 현대미술전 및 국내외(독일, 미국, 오스트리아) 10여 차례 개인전과 여러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월간 영성문화교양지 <들숨날숨>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현재 강화 동검도 채플과 갤러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대표적인 미술 작품으로는 부산 남천 성당 유리화와 서울 2호선 당산철교 외벽의 벽화, 서소문 현양탑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그대 문의 안과 밖에서>, <꽃과 별과 바람과 시 - 조광호 신부 그림 에세이>, <얼굴 - 조광호의 그림과 글>, <Angel - 조광호 신부 명상 Drawing>, <조광호의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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