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어 시간에 야한 노래를 배웠습니다. ‘서동요(薯童謠)’라는 노래입니다. 한 나라의 공주가 애욕에 빠져 밤마다 몰래 궁궐을 빠져나가 남자와 정을 통하고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사귀어 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라고 전해지는 이 노래는 단순한 노랫말이 아니라 혼인하지 않은 과년한 여성의 질펀한 성애(性愛)를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야한 노래입니다.
백제 무왕이 된 서동이 젊은 시절 선화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도성의 아이들에게 간식(마)을 나누어주며 부르게 했다는 배경 설화가 있습니다. 어찌저찌하여 결국 선화공주와 서동방이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주가 시집올 때 가져온 금이 값나가는 귀한 보물인 것을 알게 된 서동이 마를 캐다가 발견한 수많은 금으로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노래의 내러티브 구조를 보면 백제 무왕은 한 나라의 공주를 꾀어내 결혼할 정도로 지혜(꾀)가 많았다는 것과 마를 캐면서 발견한 많은 금이 보물인 것을 모를 정도로 순박한 사람이라는 인물상을 구성합니다. 궁극에는 수많은 금을 얻었을 때 그것으로 자기를 위해 치부(致富)하지 않고 절(미륵사)을 짓는, 종교적 순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더합니다. 그럼으로써 백제의 왕권이 불교 신앙의 대리자라는 맥락을 제공합니다. 이는 마치 다윗 왕조가 하느님의 대리자이자 백성의 목자로서 율법을 수호한다고 본 이스라엘의 왕정 신학(Royal theology)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동요는 사찰의 창건설화입니다. 그런데 그 사찰(미륵 신앙)이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정은 권력자가 도솔천에서 내려온 미륵불의 화신이라는 이데올로기 위에 있습니다. 권력이 종교를 헤게모니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개신교회가 이단이라고 핏대를 세우던 통일교, 신천지와 윤석열 정권에서 한 배를 탄 뒤로 이단 척결의 구호가 사라진 점도 권력과 종교의 이러한 구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서동요는 주인공 선화 공주의 상대가 서동방이라고 명시합니다. 따라서 노래를 부르는 화자는 3인칭 시점에서 선화공주와 서동방의 애욕의 정사(情事)를 상상하게 됩니다. 선화 공주는 더 이상 물러설 곳 없이 타락한 여인이 되었고, 그 여인을 갈취한 것은 거짓 소문을 퍼뜨린 파렴치한 남자(서동)입니다. 여기서 윤리적 경계선이 무너집니다.
서동의 조작과 선동에 인생이 망가진 여인은 자기를 파멸시킨 남자에게 의존하게 되고 그 나쁜 남자는 왕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다 잘 되었으니 그 간의 거짓되고 불합리한 과정은 합리화될 수 있다는 논리가 이 노래의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섭리 신앙(Providence)의 백제 버전입니다. 섭리 신앙과 서동요의 바탕에는 결과주의 윤리가 있습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과 도덕적 의무가 지켜지지 않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그 과정도 선하다는 논리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싸우는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멸칭(蔑稱)입니다. 이는 사람이나 집단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호칭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1장에서 나타나엘이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이는 나사렛에 대한 지역 비하적인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라는 말은 비하와 조롱의 말입니다. 예수에 대한 이 멸칭이 유대의 종교 기득권자들에게서 편재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도 호남에 대한 비하와 조롱이 있었습니다. 박정희 유신체제가 만든 파멸적인 정치 분열의 선동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분열 책동에 이어 5월 18일을 탱크데이라고 말한 스타벅스 회장 정용진을 따라 배재고가 야구 응원가로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가해자의 야만적인 면상을 보게 됩니다.
멸칭에는 가해자의 얼굴이 있습니다. 멸칭을 사용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것의 서사를 읽기보다 그 이미지만 보게 됩니다. 그럴 때 사고를 정지당합니다. 그래서 진보진영 안에서 노선과 진영간의 대립이 나타날 때 가장 저열한 방식이 멸칭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나쁜 남자>는 사회적 하층민으로 살아가는 건달 ‘한기’가 사랑하는 여대생 ‘선화’를 창녀로 전락시킵니다. 그리고 선화는 자신을 파멸시킨 남자를 받아들여 서로가 공생적 기생 관계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마치 노래를 지어서 한 나라의 공주를 파멸시켜서 자신의 소유로 삼은 서동(무왕)처럼.
지금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영논리와 비판에 나쁜 남자 신드롬(?)이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를 타락시켜 나에게 굴복시키는 방식으로 소유하려는 태도 말입니다. 논리도 뭣도 없이 혐오의 감정을 멸칭에 실어 마구 쏘아대고 있습니다. 이건 살자고 하는 짓이 아니라 같이 죽자고 하는 짓입니다. 부부싸움을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멸칭을 사용하는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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