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그이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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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이의 인사
  • 최태선
  • 승인 2026.06.0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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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그분을 만난 건 십 년 정도 전이었습니다. 매일 오르는 작은 산에 그분이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노숙자인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늘 근처에 빨래가 널려 있었습니다. 어느 날 대화를 하게 되었고, 그분이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돈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만오백 원을 드렸습니다. 대화 중 자장면 곱빼기가 삼천오백 원 하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일주일에 세 번 정도면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장면 세 그릇 값을 드렸습니다.

그분은 늘 벤치에 누워 자고 있었지만 내가 지나가면 갑자기 일어나 “안녕하세요” 하고 크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산에 갈 때는 가지고 다니지 않던 돈을 가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내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저인 줄 알아차렸습니다.

겨울이면 사라졌다 봄이 되면 그곳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겨울에는 지하철 역사에서 지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대략 2년 동안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하철 역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돈 좀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주머니에 있던 돈을 다 꺼내서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하철 역사에 그분이 있으니 지하철 타기가 조금은 신경이 쓰였습니다. 만날 때마다 돈을 드리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지하철 역사에서도 제가 지나가면 어느 새 저를 발견하고 크게 인사를 해서 저를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분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추운 날씨나 비가 많이 오거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날에는 일부러 그곳엘 가서 그분이 계신가를 확인했지만 그분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사라졌습니다. 돌아가신 것인지 아니면 감옥에라도 갇힌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십여 년의 세월 동안 그분도 많이 허약해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돈을 떼어 자신이 노숙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했고, 저를 만날 때마다 마치 그 돈을 곧 받을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저는 꼭 받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해드렸습니다. 그 돈을 받아서 노숙을 그만 둔 것이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노숙자와 계속 만난 것도 처음이고 대화를 해본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제게 밤늦은 시간에 신림동엘 가면 여자들을 만날 수 있다면서 제게 가볼 것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늦은 시간에 신림동엘 가면 그런 여자들이 정말 있는지를 살피기도 했습니다. 제 눈에는 그런 여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역사를 갈 때마다 그분이 있던 자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분이 그리운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분의 인사가 듣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선물처럼 다가온 사람이었습니다.

노숙자이면서도 그분은 늘 청결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빨래에 열심이었고, 음식도 꼭 가지런히 펼쳐놓고 드셨습니다. 제가 지나가면 그렇게 먹고 있던 것을 내밀거나 빨아놓은 수건이나 양말을 선물로 주려고 하였습니다. 지나고 생각하니 그것이 그분의 염치였습니다. 염치란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염치가 있습니다. 염치가 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이건 나누려 합니다. 그분을 통해 그걸 정말 실감나게 느꼈습니다.

노숙자가 빨아놓은 수건이나 양말을 선뜻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런 것들을 받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해드려야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제게는 정말 소중한 인생의 경험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제가 그분을 너무 소홀히 대했습니다. 좀 더 그분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물론 대화는 늘 일방적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이름이나 나이조차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질문을 하면 딴청을 피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그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름을 밝히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나이도 젊기에 밝히기가 싫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니 그런 그분의 태도가 이해가 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이 이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새삼 황금률이 얼마나 위대한 인류의 지혜인지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창조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마태 7,12)

하느님이 꿈꾸셨던 세상은 바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한동안 실제로 그런 세상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 에덴동산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것이 깨진 것은 인간이 하느님처럼 되라는 뱀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떨어진 곳은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황금률은 바로 그것을 복원할 수 있는 비책입니다.

저는 그 노숙자를 위해 긴 운동복을 손질하여 가져다주었습니다. 밤에 이불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동묘 시장에 가서 외투며 장갑이며 양말이며 목도리까지 사다 드렸습니다. 혹 있을지 모르는 굶주림에 대비해 사탕과 초콜릿도 사다 드렸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저는 산에 버려진 운동복을 발견했습니다. 성의를 내팽개쳐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화가 났습니다. 다른 것들도 어디에 버렸는지 보지 못했지만 그분은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착용한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후로는 돈만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저는 분명 제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했지만 그분은 저와 달랐습니다. 제가 대접받고 싶은 것이 그분에게는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입장에서 생각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분의 입장을 제가 몰랐습니다. 새삼 황금률은 제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 전 어떤 글에서 베드로에 의해 눈이 떠진 거지가 불같이 화를 냈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눈이 떠져 더 이상 구걸을 할 수 없게 된 거지가 오히려 화를 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분에게 당장 먹고 살 길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걸 읽고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고아원을 도울 때도 똑같이 경험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아원 아이들을 위해 쓰라고 돈을 기부하는 것으로는 무언가 허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스테이크와 떡볶이를 만들어주었습니다. 100인 분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였지만 제가 만든 등심 스테이크와 떡볶이를 먹는 아이들을 보며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 식당에서 일하는 분이 그 돈으로 그보다 열 배는 더 잘 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제가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그분들에게는 일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같은 재료도 훨씬 더 싸게 구입할 수 있고, 요리 솜씨도 저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 일이 그분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분들에게 돈을 드리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말없이 돈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노숙자는 제 인생의 가장 좋은 스승 가운데 한 분이셨습니다. 생각할수록 그분은 제 인생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분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사라진 후 그분이 그리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반갑게 인사하던 그분의 인사가 많이도 그립습니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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