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이름은 ‘똥 공장‘이었습니다. 수학 선생이 붙여준 별명이었습니다. 수학 선생은 컴퍼스처럼 뾰족하고 각도기처럼 날카로운 두뇌를 가졌습니다. 그는 단원이 끝날 때마다 칠판에 수학 문제를 써 놓고 한 사람씩 나와서 풀라고 했습니다. 못 풀면 빠따를 때렸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쉬운 문제조차 못 푸는 한 친구에 대해서 온갖 모멸적인 말을 거침없이 배설했습니다. 그 중 가장 심한 것은 ‘똥 공장’이었습니다. 밥 먹고 똥만 만드는 기계라는 뜻이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말이었지만 난 그 멸칭에서 인간으로서의 모멸감을 심하게 느꼈습니다. 수학 문제 하나가 한 인간을 능멸할 만큼 절대적 기준인지 반문하면서 수학 시간을 고통으로 견뎌야 했습니다. 수학에 혐오감을 갖고 공부를 포기한 건 중학교 2학년 때 백씨 성을 가진, 그 수학 선생 때문이었습니다. 먼 훗날 내가 수학에 매력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철학 서적을 탐닉하면서부터였습니다. 수학은 철학이었습니다. 백씨 선생은 철학 없는 수학 선생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대접받는 문화에서 성장하다 보니, 공부 잘하는 게 모든 것의 우선순위이고 기준이 되는 것을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공부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예쁜 여자와 결혼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고,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공식이 우리를 지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공식은 비단 학교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하나의 교리가 됐습니다. 공부 잘하는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고,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들어가는 게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인 것처럼 믿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특별한 은총과 축복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교회 다니고 죽어라 기도하고 성경을 암송하는 걸 의심치 않고 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제도권 밖에서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학교가 가르쳐온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떠나서 교회를 바라보면서 하님이 나에게 하는 말씀은 진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머리가 좋다는 것과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인간을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상품으로 분류하기 위해 만든 기준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지능(IQ)이 높다는 건 단지 현대 산업사회에 잘 적응하고 기능적으로 길들여진 두뇌 상태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프랑스인 알프레스 비네가 지능검사(IQ test)를 개발한 1905년도 이후 인간을 IQ 수치로 줄 세우는 비인간적인 역사가 이어졌습니다. 지능검사를 통해 사람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이 만행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저지른 끔찍한 폭력입니다. 민간인 마을에 폭격을 가해 한 마을 전체를 초토화시킨 것에 비유될 만한 것입니다. 이런 폭력 때문에 교육은 타락하고 심지어 종교도 병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반론을 제기하고 나온 사람이 하버드의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입니다. 그는 사람에게 하나의 지능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지능이 있다는 것을 최초로 주장합니다.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s)’ 이론입니다. 그는 사람마다 기본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지능의 초기 집합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초기 집합 지능은 일곱 가지로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논리수학지능, 언어지능, 공간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 들입니다. 가드너는 이들 지능 외에 더 추가할 수 있는 지능으로 ‘영성지능‘을 이야기합니다. 다른 말로 실존지능이라고도 부르는데,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가진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 만들어낸 종교적 지능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능은 서로 분리되어 별도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여러 지능이 결합하고 협력하여 작동해야 완수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수학 문제를 잘 풀거나 학교 성적이 좋은 것만으로 지능의 기준을 삼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드너는 이 다중지능 이론을 교육을 위한 도구로 제시합니다. 모든 학생에게 같은 내용을 획일화된 방식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고유한 지능이 특화된 학생들 각자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론은 교육 이론 이전에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다른 측면에서 긍정적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한 가지 지능, 즉 산업사회에 필요한 기능적 지능을 판별하고 분류하는 근대성의 폭력으로부터 인간을 구출한 것입니다.
스타벅스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데이 텀블러와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굿즈를 판매하면서 시민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정용진 대표는 재빠르게 사과했지만 그의 평소 정치 이념과 발언에 의하면 그가 몰랐을 리도 없고, 그의 기획일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재벌 가문의 핏줄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아온 그가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이들의 고통을 오히려 가해자의 논리로 비하한 것은 그의 지능이 한쪽으로만 기형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정용진은 공부, 돈, 성공 공식이 만든 괴물입니다.
그런데 지능이 한쪽으로만 기형적으로 기울어진, 이런 괴물들이 서울법대를 나오고 검사와 판사를 하면서 이 사회가 얼마나 위험에 처했는지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괴물들은 인간을 수단으로 보며 노동자에게서 인간의 영적 특성을 제거합니다. 자연과 우주와 예술에 반응하고 감동하는 실존적 아름다움을 훼손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고 생명을 경시합니다. 이런 괴물들을 퇴치하는 게 우리에게 맡겨진 시대적 사명입니다.
괴물과 싸울 때는 힘을 합쳐야 합니다. 스타벅스 불매는 단순히 정용진 회사 하나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수많은 괴물을 퇴치하기 위한 협력적 연대입니다. 괴물과 싸우는 법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방금 윤석열이라는 괴물도 쓰러뜨렸으니까요.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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