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대표적 시 <황무지>의 첫 구절은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한다. 누군가는 이 표현이 봄의 생명력을 노래하는 전통적인 시각을 뒤집은 ‘반어법’이라지만, 나에게 4월은 말 그대로 잔인한 달이다. 그 잔인함은 생명과 죽음을 함께 노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순과 부활, 어둠과 빛, 꽃의 만개와 낙화가 함께 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그 ‘애매함’이 참으로 잔인하다.
오늘은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가 되는 날이다. “올해는, 이번 해에는, 설마, 아직도?, 왜?”라는 단어를 10년하고도 2년을 더 되뇌면서 절규하고 기대하고 희망했다. 그러는 동안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는 우리들의 철석같은 다짐은, “이제 그만하라.”“지겹다”는 말로 희석되고 퇴색되었다. 세월호 노란 리본이 낡고 바랜 것처럼.
하지만 나는 올해도 4월의 잔인함을 그냥 지나칠 용기가 없다. 그래서 세월호 12주기 추모 미사를 드리고, 기억공간 액자에 걸려 있는 304명의 희생자 한분 한분의 이름을 부르며 또다시 약속한다. 기억하겠다고, 잊지 않겠다고, 그대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얼마 전에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에게 세월호는 무엇이니?” 그러게. 내게 세월호가 무엇이길래 4월이 되면 가슴앓이를 하고, 가방에 노란 리본을 매단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달리 보이고, 내 기도 지향의 제1순위가 된 걸까? 아마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없는 것과 같을 거다. 그것을 ‘연민’이라고 해야 하나, ‘양심’이라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 나는 그 친구에게 말했다. “지금의 나는 세월호 이전의 나와 다른 나”라고.
“세월호 1주기를 추모하러 광화문 미사를 갔던 날, 미사 내내 비가 억수로 내렸다.” 7주기 봄을 맞으며 나는 이런 글을 썼다. 10주기 때는 <세 가지 안부>라는 기억 영화를 보았고, 11주기 때는 '바다호랑이' 고 김관홍 잠수사에 대한 글을 썼다. 글을 쓴다는 건 나만의 애도이자 '기억법' 이다. 그런데 글의 내용이 별로 바뀐 게 없다. 예를 들면, “나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단 한 걸음도 진척되지 않았고, 바뀐 것이라고는 세월밖에 없다고 분노하고 절망했다.”라든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촛불 정부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라든가, 매일매일을 사순절처럼 사는 유가족들이 내년에는 진정한 부활을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식이다.
다행히 오늘 세월호 참사 이후 처음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세월호 12주기 기억식에 참석하여, 11년 동안 비어 있던 대통령 자리를 채웠다고 한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기본과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 고 했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발언을 했는데 이 말이 왜 이렇게 울컥하고 감동을 주는지, 이 말을 듣기 위해 12년을 기다린 유가족들의 심정을 나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하고, 그리고 다짐하는 한 304명 한분 한분의 이름과 그들이 미처 이루지 못한 304개의 꿈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다. 애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애도는 슬퍼하는 것을 넘어, 돌아가신 분들이 이 세상에서 다 이루지 못한 꿈을, 우리의 어깨에 매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 세월호 참사 관련 미공개 기록의 공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을 차근차근 요구하고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세월호 참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일어났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제2, 제3의 참사를 막기 위한 ‘생명법’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이 단식농성을 하고, 삭발을 하고, 오체투지를 하고, 죄인처럼 거리를 헤매는 일이 없는 대한민국이 되길,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 없는 대한민국이 되길, 이제 더 이상 우리의 4월이 잔인한 달이 아닌, 따뜻한 기억으로 가득한 달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 피워 낼게 있기 때문이야"(박노해의 걷는 독서 中)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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