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사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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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사대주의
  • 최태선
  • 승인 2026.04.1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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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중국의 오래 된 누각이나 건물은 높습니다. 그것은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3층 이상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의 건물을 짓는 기술이 열악했기 때문일까요? 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이중환의 <택리지>를 읽고 리포트를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 질문의 해답을 그곳에서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건축물이 높지 않은 이유는 그것을 중국에 대한 반역으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찾아보면 이런 경우는 우리 문화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대국에 알아서 기는 버릇은 이미 오래 전에 우리 민족의 피에 아로새겨진 디엔에이입니다. 특히 권력을 가졌거나 추구하는 자들에겐 더욱 필수적이었습니다.

이중환의 경우 높은 건물이 중국에 대한 반역이라는 사실을 합리화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지형이 높은 건물과 어울리지 않고 그것이 풍수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그것이 택리지의 골자였습니다. 그것이 사대주의 사고라는 사실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사진출처=국가유산청 홈페이지
사진출처=국가유산청 홈페이지

우리 악기 중에 편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편경은 일종의 피치파이프와 같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악기를 조율하여 전체적인 음을 맞추는 기준입니다. 세종은 그 편경을 중국의 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돌을 사용하였습니다. 당시의 사고로는 정악인 중국의 기준음을 바꾸는 것이어서 이 역시 반역에 해당했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우리나라의 돌로 편경을 만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우리 민족의 자주성이 편경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음악을 스스로 폄훼하여 중국의 “정악(正樂)”과 구분하여 “향악(鄕樂)으로 불렀습니다.

그보다 더 한 것은 훈민정음이었습니다. 사실 훈민정음 자체가 중국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자기 민족의 문자를 가진다는 것은 중국에 대한 명백한 반역이었습니다. 그래서 훈민정음의 서문이 매우 치밀하게 작성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서 중국의 문자로는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자를 배우지 못한 어리석은 백성들을 위해 한글문자를 만들었다는, 자세를 한껏 낮춘 일종의 핑계를 댄 것입니다.

세종 시대에 이루어진 그런 자주를 향한 노력은 이런 일들 외에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광화문에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자주와 기개를 상징하는 적절한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광화문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성조기와 다윗의 별이 새겨진 이스라엘의 국기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그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사대주의이며, 그것이 복음과 역행하는 전쟁과 힘의 숭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 그들이야말로 어리석은 백성임에 틀림없습니다.

최근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잔인한 학살에 대해 지적하는 글을 SNS에 올렸습니다. 이스라엘 외무부가 이에 대해 항의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나경원, 이준석, 한동훈, 안철수와 같은 정치가들과 이스라엘 한인회 회장인 이강근이라는 사람이 지적을 하였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적절치 못한 처신이며 국익에 반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주장이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소인배적인 사고임과 동시에 제국주의를 신봉하는 폭력적인 사고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민족이 털어내야 할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내재하고 있는 사대주의의 발로라는 사실입니다.

작금의 세계는 전쟁의 구렁텅이 속에서 모두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나,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초토화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베네주엘라를 시작으로 미국은 이란을 침공하였습니다. 명백한 유엔헌장의 위반임과 동시에 불법이지만 미국은 오히려 유엔을 탈퇴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미국이 유엔에 막대한 돈을 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으름장은 단순한 으름장이 아니라 실제 위협이 됩니다.

그런 미국의 사고가 바로 제국주의입니다. 트럼프는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한 후 관세 폭탄을 날리다 급기야 베네주엘라를 침공하고, 이란을 공습하고, 아이슬란드를 빼앗으려 하고, 쿠바를 박살내겠다는 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의 가격이 상승하여 물가에 영향을 주었던 것은 약과였습니다. 작금의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침공으로 세계는 지금 유래 없는 에너지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도미노처럼 세계의 경제가 하나씩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전쟁은 어느 한 곳, 혹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파급효과를 미치게 되었습니다.

쇠락하는 제국은 예외 없이 전쟁을 숭배합니다. 전쟁이 제국을 구원할 것이라는 환상, 전쟁만이 과거의 영광을 되살릴 수 있다는 자기기만, 전쟁을 통해 세계를 다시 ‘질서’ 속에 묶어둘 수 있다는 오만이 결합될 때, 제국은 전쟁을 신앙으로 삼게 됩니다. 사실 제국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쇠락의 위기를 불러옵니다. 최고의 자리는 언제나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미국이 과거와 달리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제국이라는 신분 자체가 쇠락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전쟁은 언젠가는 끝난다는 사실입니다. 다 이기기도 힘들지만 다 이긴 경우에도 전쟁이 자기 파괴적이기 때문에 결국 제국은 몰락한다는 것이 역사의 증언입니다. 미국이 다시 위대해진다 해도 결국 미국 역시 전쟁으로 몰락하고 말 것이라는 것이 역사가 인류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사대주의는 제국과 운명을 같이 합니다. 역사의 모든 제국은 멸망했습니다. 그런 제국에 기대는 한 멸망은 보장된 것입니다. 작금의 미국은 이란 전쟁을 기점으로 몰락하지는 않아도 영향력을 크게 상실할 것입니다. 그런 미국에 기댄 사대주의자들 역시 같은 운명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다른 글이었다면 이 지점에서 하느님 나라를 언급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세상이 말하는 정의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자주는 결국 정의의 실현입니다. 제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힘의 논리를 주장하는 제국이 불의임을 천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이 바로 그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타자에 대한 이해, 문화와 역사에 대한 존중, 이해관계의 조율 같은 복잡한 작업은 제국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약자의 변이나 나약함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그것도 최소한의 정의의 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그런 정의의 편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편적 인권’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그런 정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한국의 상황은 갈림길에 섰습니다. 습관적으로 사대주의자들의 사고에 편승하느냐 아니면 우리 역사에 드문드문 보여 왔던 자주의 길을 택하느냐의 선택입니다. 지금이 우리 민족이 뼈에 아로새겨진 지긋지긋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야 할 적절한 시점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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