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랑이 남긴 상처, 그 상흔을 만져보라
상태바
진실한 사랑이 남긴 상처, 그 상흔을 만져보라
  • 조광호
  • 승인 2026.04.14 1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광호 신부의 동검도 이야기
카라바조, 의심하는 토마스(1602)
카라바조, 의심하는 토마스(1602)

1. 사람은 쉽게 믿지 못합니다. 말은 들을 수 있고, 설명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결국 직접 느끼고, 직접 확인할 때 비로소 마음이 움직입니다. 의심 많은 제자 토마스도 그랬습니다. "나는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 이 말은 잘못이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의 솔직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빛나는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먼저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완벽함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십니다. 사랑 때문에 입은 상처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토마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넣어 보아라." 이 장면이 놀라운 것은, 하느님이 인간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의심을 끝까지 받아 주시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2. 영적인 몸의 원형으로 나타나신 나자렛예수의 이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증명 할수는 없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완전히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 확인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신앙 공동체가 전해 온 가장 깊은 증언이라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 체험은 제자들의 목숨과 바꾼 신앙증거와 원시 교회 공동체의. 체험입니다. 인간의 차원을 너머 시공을 넘나드는 영원히 손상 받음이 없는 영적인 몸의 부활이 사실이며, 하느님이 인간의 의심까지도 품어 주신다는 것을 이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 주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3. 르네상스시대 화가 카라바조의 「성 토마스의 의심」 앞에 처음 섰을 때, 나는 멈추었습니다. 극사실로 극적인 장면을 그려 낸 그의 작품은 솔직히 말해서 예수부활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교신자로서 이 그림은 아름답거나 감동적이기보다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토마스의 손가락이 예수의 옆구리 상처 깊숙이 들어가 있었고, 빛은 오직 그 상처 위에만 떨어졌으며, 주변은 거의 어둠에 잠겨 있었습니다. 왜 이 장면은 이렇게까지 사실적으로 그려져야 했는가. 왜 믿음은 이렇게까지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하는가. 그 질문은 오래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압니다. 그 그림은 믿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시작되는 자리를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 마주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고. 

오늘 자비의 주일에 기념하는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는 그 상처를 보며 다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에게 그 상처는 아픈 흔적이 아니라, 사랑이 흘러나오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저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한 뒤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상처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4. 일생을 사제로 살아오면서 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끝까지 자신을 내어 주며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만났던 그 체험은 크고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나의 신앙은 책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이론에서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통해 신앙을 배웠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이웃의 모든 이야기를 다 공책에 적어놓으시고 그들을 위해 남몰래 매일 기도하셨던 인자하신 나의 어머니. 고난과 몰이해 속에서도 끝까지 소명을 다하시고, 부서진 육신이 마지막을 다할 때까지 이웃을 위해 자신을 지켜내신 수도원의 분도 출판사 세바스티안 신부님. 한여름 열린 방문에 노숙하던 미친여자가 몰래 자기 침대에 자는것을 발견하고 자신은 일터 서재에서 쪽잠을 주무시던 그는 내 곁에 계셨던 성자였습니다

이름 없이 살아가지만 삶으로 진실을 드러낸 수많은 사람들. 너무나 감동적인 사람들. 그들의 삶은 설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증언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살아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을 내어 주며, 조용히 그러나 끝까지. 그리고 그 대가로 그들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신비로운 상처에 모든 의문의 신비가 숨어 있습니다

나는 그 상처 곁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때로는 그 고통의 자리에 함께 서기도 했습니다. 그 상처를 만져 보며 남몰래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 상처는 안타깝고,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왜 진실되고 헌신적인 사랑이 상처로 돌아오는가. 그것은 역설이었고, 모순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떨리는 빛을.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빛을 보았습니다. 마치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섬광처럼,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신비. 그것은 한여름 뜨거운 뙤약빛에 쏟아지는 소나기같은 은총의 체험이었고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구리줄에 뜨겁고 떨리는 전기가 흐르듯, 그것은 내 의식을 저 너머의 세계로 이끄는 전율이었습니다.

5. 골고타의 십자가로 이어진 사랑의 끝자리, 그 절규와 모순의 신비. 철옹성 같은 어둠의 벽이 쪼개진 틈새로 비쳐 오는, 가늠하기 어려운 생명의 빛. 부활의 체험은 이제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지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죄 많은 내 삶의 빗장을 여는 빛입니다. 시간 속에 영원을, 유한 속에 무한을 깨우는 신의 숨결입니다.

토마스는 상처를 만지고 믿었습니다. 카라바조는 그 장면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였습니다. 파우스티나는 그 상처 안에서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 손으로 직접 만져 본 그 상흔들을 통해 전율적인. 신앙 체험을 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어집니다. 누군가를 위해 생긴 상처를 진심으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주님.주님.나의 주님.나의 하느님" 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조광호 신부
1967년 천주교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하여 서울 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신부가 된 다음 독일 뉘른베르크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천주교 주교위원회 출판국장으로 천주교 200주년 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독일유학 후 한국현대미술 50년전, 일본 국제 현대미술전 및 국내외(독일, 미국, 오스트리아) 10여 차례 개인전과 여러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월간 영성문화교양지 <들숨날숨>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현재 강화 동검도 채플과 갤러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대표적인 미술 작품으로는 부산 남천 성당 유리화와 서울 2호선 당산철교 외벽의 벽화, 서소문 현양탑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그대 문의 안과 밖에서>, <꽃과 별과 바람과 시 - 조광호 신부 그림 에세이>, <얼굴 - 조광호의 그림과 글>, <Angel - 조광호 신부 명상 Drawing>, <조광호의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있다.

종이신문<가톨릭일꾼>(무료)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

유튜브 강의/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