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일꾼 오프닝 미사가 봉헌된 것은 2016년 5월 15일 성령강림대축일이었습니다. 벌써 10년 전 일입니다. 이날 의정부교구 김오석 신부님이 주례를 맡아 주셨고, 강론을 맡아 주셨던 박동호 신부님은 도로시 데이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우리가 직면한 유혹 가운데 하나는 대단해지고 싶은 욕구”라면서, “작고 소박하고 드러나지 않게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숨어 계신 하느님처럼 은닉한 자비를 일상 안에서 행하라는 것이겠지요. 도로시 데이가 사랑했던 리지외의 소화데레사가 ‘작은 길의 영성’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당시 일꾼운동을 시작하면서 인성회에서 일하시며 <하나되어>, <참사람되어>를 통해 한국에 처음 도로시 데이와 가톨릭일꾼운동을 소개해 주셨던 한현 선생님과 올리베따노 베네딕도 수도원의 이연학 신부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깊디깊은 신앙 안에서 사회적 실천을 길어올리는 운동을 하자는 것이지요. 성급하게 환대의 집이라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말고, 먼저 일꾼을 양성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잠깐 프란치스코 교종이 <복음의 기쁨>에서 말씀하신 “시간이 공간보다 중요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새기게 됩니다. 공간을 얻으면 지켜야 하고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그동안 빠졌던 ‘양적 성장’이라는 욕망의 함정입니다. 시간에 주목하면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하게 됩니다. 일꾼을 양성한다는 것은 더 많이 기다려주고, 더 많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톨릭일꾼은 조직이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캠프이며 학교이고 터미널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좀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톨릭일꾼에서 발행하는 신문과 웹진, 교육과 여타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인들을 배우고 사회적 영성에 눈을 뜨는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여기서 얻은 영감으로 각자 자신의 단체와 조직, 일터와 현장, 직장과 가정에서 “예전과 다른 시선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톨릭일꾼의 레터링을 맡아주셨던 하상희 선생님은 “춤을 추듯이 신명나게 일하는 가톨릭일꾼”의 모습을 글씨에 담아보았다고 했습니다. 도로시 데이의 자서전 제목이 ‘기쁨의 의무’였는데, 정말 가톨릭일꾼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는 우정과 평화 안에서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이 있습니다. 상처와 희망을 안고 가톨릭일꾼의 문을 두드렸던 사람들입니다. 간간이 소식을 전하는 이도 있고, 상처가 덧난 분들도 계시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안에 머무는 분도 계시고, 생생한 영적 활력으로 일하는 분도 계시리라 믿습니다. 토머스 머튼은 “충만하게 살아있다는 것은 자아의 가장 깊은 부분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두고 머튼은 “(살아있는 세계와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고통과 이해, 공감에 대한 능력, 또한 웃음과 재치, 즐거움의 능력, 삶의 선함과 아름다운 것들을 감상하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한 가지, 지금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것보다 그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발견하였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참에 아름다운 한마디 말을 전합니다. 어느 소설에서 읽었던 글입니다.
“너는 음지에서 자라는 꽃과 같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네 씨앗을 햇빛 속으로 나를 것이니
너는 그 햇빛 속에서 다시 아름답게 살게 될 것이다.”
가톨릭일꾼운동을 하면서, 어쩌다 보니 제가 가장 많이 한 일은 글쓰기와 강의였습니다. ‘언어’를 통해 사람들을 만난 것이지요.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요한 1,1) 하니, 말씀을 전하는 것은 거룩함을 실어나르는 수레가 되어야 하겠지요. 그 인부 역할을 잘 하였는지 걱정이 됩니다. 아니 그 일을 하는 동안 성령께서 이끄셨다고 믿고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토머스 머튼은 글쓰기가 기도생활에도 도움이 된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앉으면 내 안에 있는 거울이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고 깊고 고요해서 애쓰지 않아도 거기 비친 하느님을 즉시 만날 수 있다. 하느님은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마치 그 오심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내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것만 같다. 이것이 큰 기쁨의 이유가 아닌가 싶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토머스 머튼의 영적 일기 <요나의 표징>, 1949년 7월 21일에서)
“나의 모든 말들이 나를 부끄럽게 할 뿐”이라고 했던 머튼에게도 글쓰기는 자기성찰의 과정이었으며, 하느님 앞에 투명한 걸음으로 나아가는 수행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하느님은 말 많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듯싶습니다. 영성생활에서 침묵을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겁니다. 그분과 친밀해지려면 먼저 입을 닫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분 앞에서 허튼 소리를 늘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글을 쓰는 시간에라도 성인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분 안에서라면 길을 잃어도 두려움이 없겠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이현주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정말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어느 누구의 글쓰기 요청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강의 요청도 거절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여쭈었습니다. 그때 그분 대답이 걸작입니다. “재주가 그것밖에 없어서.” 그분은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내어놓은 몸이니, 누구든 필요하면 가져다 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줄 수 있는 게 말과 글뿐이니, 말과 글을 내어줄 따름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분 안에서 저도 안심합니다. 그분처럼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가톨릭일꾼운동을 통해서 그 길을 가려고 하고, 그 길 끝에서 눈 밝고 마음 따뜻한 이들도 만나고 싶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
유튜브 강의/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