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하다, 광화문 시국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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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하다, 광화문 시국미사
  • 이정화
  • 승인 2026.03.2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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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칼럼
사진=이정화
사진=이정화

3월 11일, 광화문에서 ‘탈핵’ 시국 미사가 봉헌되었다. 제주 교구 강우일 주교님이 노구를 이끌고 서울까지 날아오신 것이다. 나는 조금 늦었지만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빼곡히 앉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열 분이 넘는 신부님들과 늘 광장 미사에 자리를 채워주시는 수녀님들, 그리고 다양한 공동체의 커다란 깃발이 매서운 꽃샘추위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예수살이 공동체. 한살림, 녹색당, 정의당 등 많은 단체가 후쿠시마를 기억하고 핵 없는 사회로 나아가길 염원하는 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하고 연대했다.

왜 하필 오늘인가?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가 일어난 지 오늘이 딱 15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그때, 사회복지사 2급을 따려고 실습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대문짝만한 헤드라인이 박힌 신문에는 “일본, 동북 지방의 태평양 앞바다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과 해일로 말미암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어난 방사능 유출 사고”라는 설명이 적혀있었다.

 

사진=이정화
사진=이정화

강우일 주교님의 강론 말씀이 시작되었다. 중후하면서도 강직한 주교님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졌다. 주교님은 독서와 복음을 아울러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주신 귀한 생명과 계명과 말씀을 ‘지키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그것을 ‘지키고’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온 사람이라 불릴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발전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인간뿐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공동의 집’인 지구를 지키기는커녕, 황폐화시키고 폭력을 가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수만 년 동안 얼어있던 빙하가 엄청난 속도로 녹아내리고, 바다와 같던 호수가 바싹 말라서 사막이 되고, 아마존 밀림이 자본가들의 무분별한 개발에 파괴되고, 원주민이 쫓겨나 도시빈민이 되고, 수많은 생명의 종들이 멸종되고 있다. 이러한 재앙과 파괴는 무절제한 인간의 욕망과 폭력 때문이다. 이 무절제한 욕망과 폭력의 대표적 상징이 ‘핵 발전소’이고, 핵폭탄의 ‘이복동생’”이라고 하셨다.

2023년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는 각종 상을 휩쓸며 극찬을 받은 영화다.

나 역시 재미있게 본 영화다. 이 영화는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미국의 핵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핵폭탄을 개발한 내용이다.

주교님은 영화보다 더 실감나게 ‘맨해튼 프로젝트’를 설명해 주셨다. 이 사업은 은밀하고 비밀리에 극비로 진행되었고, 참여한 사람만 13만 명이었단다. 예산 역시 천문학적 숫자였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되고 전쟁이 끝났지만, 이 사업을 접을 수 없었다. 워낙 방대한 사업이라 끝내자니 난감하고 아까웠을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으로 “사업목적 변경”을 해서 '원자력위원회'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걸고 사업은 계속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핵 발전소”이다. 너도나도 앞다투어 핵 발전소가 세계 곳곳에 퍼져나갔다. 미국은 막대한 돈을 들여 핵의 ‘안전 신화’를 구축한다. 핵폭탄은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해서 폭발적 에너지의 핵분열을 한다. 반면 핵발전은 저농축 우라늄을 추출하고 반응속도를 조절해서 에너지를 천천히 발생하게 한다. 하지만 문제는 둘 다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하므로 원자로 '냉각수'가 필수다. 그래서 핵 발전소는 모두 바다 근처에 짓는다.

문제는 냉각수만이 아니다. 원전이 정상 가동되어도 핵폐기물 보관소가 없다. 원전 부지 내에 쌓아두는 실정이다. 일본은 핵폐기물을 바다로 흘려보내는 양심 없는 짓을 하고 있다. 원전은 한 번 열어놓으면 인간이 끄지도 닫지도 못하는, 우리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괴물'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위험한 핵을 포기하지 못할까? 미국의 사업 목적 변경과 비슷한 것이다. 엄청난 자원 투자를 했으니 '아까워서' 손을 털지 못하는 것이다.

주교님은 우리 인간들이 에너지를 무한대로 쓰고 싶은 ‘무절제한 욕망’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셨다. 더 큰 문제는 요즘 세계가 열광하는 ‘AI’다. 이미 우리 생활을 장악하고 있는 AI는 일의 능률을 더 빨리, 쉽게, 정확하게 할 수 있고,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 측면이 더 많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건 우리의 착각이다. AI는 그야말로 ‘전기 먹는 하마’다. AI를 개발하려면 엄청난 양의 data base가 있어야 한다. 당연히 막대한 양의 전기가 필요하고, 거기서 열이 발생하고, 그것을 또 식혀야 하니 냉각수가 필수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레오 14세 교종이 더 우려하는 것은, AI가 우리 인간을 '자가학습’해서, 인간의 감정, 관계를 파괴하는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기계를 만드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이미 독일이나 대만은 탈핵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핵발전에 소극적이던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이 이미 시행했던 핵개발 정책을 다시 시행하려는 것이 우려스럽다. 이것은 탈핵으로 가고자 하는 시류를 역행하는 정책이다. 눈앞의 10년을 바라보고 핵 발전소를 짓는다면 우리에겐 이제 미래가 없다.

지금 우리는 적극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어느 나라의 눈치를 보기보다 '용기'를 가져야 한다. 좀 더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미래를 봐야 할 시점이다. 누군가는 이런 내 생각을 너무 이상적이고 나이브하고 불가능한 생각이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이제 여기서 멈춰야 살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길이 없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아니, 바로 코 앞이 절벽이다. 이제 멈추자. 소비를 멈추고, 개발을 멈추고, 성장을 멈추고, AI를 멈추고, 무엇보다 전쟁을 멈추자. 어느 시인의 말대로 천천히, 근근히 살아야 살 수 있다. 핵은 세상을 살리기 위해 세상을 파괴한다. 오펜하이머는 말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고.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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