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아닌 것은 모두 없애버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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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아닌 것은 모두 없애버리기 위해
  • 최태선
  • 승인 2025.12.2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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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아주 오래 전 일입니다. 청소년 시절, ‘네다바이’라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물건을 팔면서 상대방의 자존심을 자극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생각할 여지를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그 사람은 자존심을 만회하기 위해 사기꾼의 흐름에 동승했습니다. 그리고 사기꾼을 혼내준다는 그의 사고가 사기꾼의 의도대로 따라가게 만들었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사람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오만 원짜리 물품을 오백만 원에 산 꼴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의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사기는 두 가지 인간의 약점을 파고듭니다. 하나는 공짜를 좋아하는 본능입니다. 누구든 공짜를 좋아합니다. 저는 대형 마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식도 일종의 공짜 본능을 자극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시식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본능을 이용해 미끼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시식을 목적으로 삼아 시식만을 하고 물건은 사지 않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들은 자신의 공짜 본능을 인정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사기가 성립되려면 공짜 본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존심을 건드려야 사기의 작업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팔려는 물건이나 사기 치려는 물건의 가치를 올려놓고, 그런 물건은 아무나 살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거나 거기에서 나아가 대상이 되는 사람을 폄훼하는 발언을 슬쩍 던지면 사기의 대상이 된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가 마비되고, 자신을 입증하려는 본능이 작동됩니다. 그렇게 사기는 자존심을 건드림으로써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의 인생은 거대한 사기극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구조는 ‘네다바이’와 동일합니다. 실재 가치보다 과장된 많은 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현혹하도록 만드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런 후에 우리의 자존심을 자극해서 자아를 부풀게 만들거나 반대로 자아를 작게 인식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면 자아가 부풀거나 축소된 사람은 자존심이나 열등감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고 허상을 좇아 살다 죽게 됩니다. 인생 자체가 거대한 사기극이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생이 이러한 사기극이 되고 맙니다.

“신중하게 살고 싶어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로지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시하기 위해, 삶의 가르침을 잘 배우기 위해,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 내가 잘 살았구나하고 깨닫기 위해서였습니다. 삶이란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기에 삶이 아닌 길은 가고 싶지 않았고,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념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삶을 깊게 살아보고 싶었고, 삶의 정수를 끝까지 마시고 싶었고, 삶이 아닌 것은 모두 없애버리기 위해 강인하고도 엄격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월든 호수가에 들어간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소로우가 한 대답입니다. 하버드 출신의 전도양양한 젊은이가 우리로 치면 농촌으로 간 이유를 그는 위와 같이 밝혔습니다. 그는 삶의 본질을 찾아 월든 호수로 들어갔습니다. 불과 44세의 나이로 죽은 그를 여전히 좋아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그가 발견한 본질적인 삶에 동의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책 <월든>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경제입니다. 책의 첫 장도 “경제”라는 소제목으로 시작되고, 그의 실험은 경제실험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경제가 중심이었습니다. 소로우의 경제실험은 자신의 고향마을인 콩코드 주민들이 부자들의 ‘불안’을 누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스러운 삶을 사는지를 지켜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소로우에게 나중에 큰 병에 걸리게 되면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고생스럽게 일한다고 말했지만 결국에는 큰돈을 버느라고 모두 병에 걸리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우리의 인생을 사기극으로 만드는 주체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돈”입니다. 돈이 우리의 인생을 사기극으로 만드는 주체입니다. 그것은 성서가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사실 그동안 제가 너무 많이 언급한 본문이기도 하고, 너무 여러 번 소재로 삼았던 내용이기도 하지만 “가난”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인생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인간은 가난하지 않으면 삶의 본질적인 사실에 접근하기 불가능합니다. 돈은 인생의 많은 것들의 가치를 부풀려 돈이 없으면 그것을 얻을 수 없다고 현혹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것으로 사람들의 자아를 부풀려 삶의 본질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사기극으로 만들지만 사람들은 그렇게라도 자신의 자아가 부푸는 것을 즐기고 싶어 하고 그것에 만족합니다.

소로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소중한 것은 그가 이 사실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야기한 것을 조금 과장한다면 경제, 즉 돈은 우리의 인생을 사기극으로 만들어 우리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저는 우리의 욕망과 자존심이 우리의 인생을 주도하게 만들어 우리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소로우가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은 제게 욕망을 억제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간해서는 욕망을 따라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과 함께 저의 자존심은 소멸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내 자존심의 자리에는 자존감이 자리하게 되었고, 제 인생은 비로소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따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돈의 사기극에 말려 있는 사람의 눈에는 그런 저의 삶이 초라하고 무의미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늘 무시를 당하고 있지만 저의 자존감이 그것을 능히 감내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 자존감의 근거는 물론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바로 제가 발견하게 된 자존감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그것을 신뢰하게 만듭니다. 죽어도 좋다는 말은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이지만 그런 자존감을 가지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사람만이 삶의 본질을 따라 살 수 있다는 것이 제 인생 이해입니다.

가난이 제게 준 선물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가난해지지 않았다면, 제가 가난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 선물을 선물로 여기지 못했을 것이며, 선물로 받아도 그 선물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돈의 사기극에 말려들어 헛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가난한 삶은 복음의 도화선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단초가 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그처럼 거대한 집단이 되었지만 아무런 변화의 단초도 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가난을 도외시하고, 비참한 것으로 여기는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로우가 보여준 삶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소중한 실험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금의 미국과 중국을 통해서 확인하듯이 돈에 미쳐 날뛰는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지구촌 비극의 현장들은 바로 그런 사기극이 초래한 결과들이고, 거기에서 벗어나 있음을 오히려 행복으로 아는 이들 역시 공멸이라는 그물에 포획되고 말 것입니다.

인류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가난이라는 사실은 역설 중의 역설입니다. 인간은 죽는 존재입니다. 태어나 죽기까지의 기간을 어떻게 사느냐는 개인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와 우주 전체에도 중요한 것입니다. 거대한 사기극의 일부로 살 것이냐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시하는 사람으로 살 것이냐, 이 두 길을 가르는 것은 가난입니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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