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가톨릭일꾼 송년미사를 봉헌했다. 2025년 한 해 동안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미사와 강의로 진행되었는데, 어느새 일 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다. 이번 미사는 가톨릭일꾼 공동창립자인 도로시 데이를 추모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미사 주례를 하신 김상식 바오로 신부님은 2024년 12월3일 선포된 비상계엄과 해제 후 일 년의 시간을 소환하면서, “타락은 언제나 한 순간에 오지 않는다. 작은 비양심의 묵인, 작은 거짓에 대한 침묵, 작은 특권에 대한 무관심이 쌓일 때 어둠은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간다.”는 말로 강론을 시작하셨다.
도로시 데이는 한 시대를 살면서 이 ‘침묵’을 가장 염려하고 두려워했다. 그녀는 “우리가 불의에 익숙해지는 순간, 우리는 불의에 공범이 된다.”고 했다. 신부님은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이사야서 7장 11절)는 말씀으로 아하즈 왕의 ‘계산’하는 신앙과 마리아의 ‘순명’하는 신앙을 비교하셨다. 아하즈는 국가적 위협 앞에서도 하느님보다 군사동맹과 정치적 계산을 신뢰했다.
하지만 마리아는 처녀가 아이를 잉태할 거라는 천사의 말에 “예”라고 대답한다. 마리아의 이 단순한 “예” 속에는 역사를 여는 순명이 들어 있다. 마리아는 두려웠지만 도망치지 않았고, 묻되 계산하지 않았고, 망설이되 침묵으로 숨지 않았다. 마리아의 “예”는 체념이 아니라 깨어있는 신앙의 결단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예언자의 선택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도로시 데이는 마리아의 순명의 길을 따른다. 그녀는 미국 사회의 불의와 빈곤함 가운데 한평생을 가톨릭일꾼으로 살았다. 그녀는 “사랑은 한 번의 감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견디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노숙인과 함께 한 삶, 전쟁과 폭력에 대한 거부, 교회 안팎의 오해와 비난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그녀의 삶은, 마리아의 “예”가 역사 안에서 어떻게 다시 도로시데이를 통해서 태어나는지 자각하게 해준다. 그녀는 “침묵은 중립이 아니고, 침묵을 권하는 것은 불순종하라는 것과 똑같다”고 말한다.
도로시 데이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고 교회를 향해 침묵하지도 않았다. “나는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비판한다고, 침묵은 예수가 가르친 사랑이 아니”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신부님은 도로시 데이와 협력자 피터 모린이 꿈꾸었던 가톨릭일꾼의 소명은, 할 수 있는 일은 적지만, 급진적인 사고와 삶의 행동을 충실히 유지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톨릭일꾼 운동의 시작은 가난한 이들에게 한 끼 식사를 주면서 시작되었고, 도로시데이와 피터 모린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은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을 인간으로 존중했다.
도로시 데이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누누이 깨어있으라고 하면서, “우리는 신자로서 예수를 팔아서 성공하라고 가르치지 않았고, 예수를 통해서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 충실하라 불림 받았다.”고 한다. 대림 3주일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대림이 주는 의미를 되새긴다. 회개, 식별, 성탄으로 인해 기쁨으로 다시 일어섬. 신부님은 “대림은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태도 전환’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가톨릭일꾼 미사에 참여한 우리에게 ‘대림’은 묻는다. “너는 어디에 서 있냐고.” 여기에 도로시 데이는 응답한다. “가난한 이들의 곁에 서 있을 때, 우리는 가장 복음의 한복판에 서 있는 거라고.”
신부님은 마침 기도로 강론을 마무리하셨다.
“주님, 저희가 아하즈의 계산이 아니라,
마리아의 순명을 선택하도록 도와주시고,
도로시 데이처럼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는 교회,
침묵하지 않는 교회, 다시 예언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대림의 어둠 속에서 임마누엘의 빛이
이 땅의 교회와 사회 안에 다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저희가 나설 수 있는 용기와 이끄심으로 저희를 불러주소서. 아멘
크리스마스가 내일모레인데도 성탄 느낌이 나질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형 백화점과 대형 교회, 심지어 내가 다니는 성당에도 산만큼 커다란 대형 트리가 나를 주눅 들게 만든다. 이번 주 가톨릭 주보에는 ‘2025 명동 겨울을 밝히다’라는 제목의 ‘축제 지도’가 간지로 들어가 있다. 2027 세계청년대회 (WYD) 홍보용일 것이다. 세상은 너무 밝은데 그 밝음은 ‘가짜 밝음’ 일색이다. 화려한 네온사인, 몇 개인지 가늠할 수 없는 전구가 달린 대형 트리, 나무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꽁꽁 싸매 놓은 반짝이는 조명들, 그 밝음 어디에도 진짜가 없다. 눈이 피곤할 뿐이다.
예수님은 칠흙 같은 어둠 속, 가난하고 지저분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우리가 관심해야 할 것은 “진짜”를 알아보는 '눈'이다. 진짜인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들은 가난한 목동들과, 희미한 별빛에 기대어 길을 찾은 동방 박사들이었다. 오늘 우리가 추모하는 가톨릭일꾼의 공동창립자인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 그리고 매달 가톨릭일꾼 미사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진짜를 알아보는 이 시대의 ‘빛’이 아닐까? 어둠이 짙을수록 그 빛은 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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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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