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라고 하기엔 많은 양의 비가 와서인지, 바람의 밀도와 냄새가 달라졌다. 강릉의 가뭄이 해갈 되었다니, 요즘 들어 가장 기쁜 소식이다. 늘 우리 곁에 있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소비하던 ‘물’이 없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건 TV 속 아프리카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요즘 같은 기후 위기 시대에, 언제 어디서 ‘물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것을 간과한 나의 ‘무관심’과 고정관념이 부끄러웠다. 그동안 강릉 시민들의 삶이 얼마나 불편하고 불안하고 피폐했을지 나는 상상할 수도 없다.
강남순 교수님은 강의를 시작하시면서 “하루하루가 기적 같은 날입니다. 이 시간이 새로운 기적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적은 우리의 예상을 넘어 ”아하“의 경험을 하는 것이고 그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 요즘은 살아있다는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위에 갑작스런 죽음과 사건 사고가 벌어진다. 정치판은 정치가 아닌 정쟁으로 매일 고성이 오가고, 미국은 세상의 주인이라도 된 듯, 자기들 마음대로 이웃 나라를 주무르고 있다. TV 뉴스나 신문 어디에도 훈훈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적을 경험하고 나만의 기적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나(self)’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복잡하고 쉽지 않다. ‘나’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수 조성모의 노래 <가시나무새>의 첫 소절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이 쉴 곳 없네“만 봐도 알 수 있다. 내 안에는 절대 변하지 않는 ‘고정된 나’도 있지만, 변화가능한 ‘되어가는 나’도 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체성이 “I am who I am”, “I am who I become”이라고 한다. 해석하면 “나는 나다”, “나는 되어가는 나다”라는 뜻인데 알 듯 모를 듯 이해하기 어렵다.
강남순 교수님은 나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나 자신과의 정원을 꾸미는데 도움을 줄 세 명의 철학자와 데이트하기를 제안하신다. 그 세 명의 철학자는 니체, 한나 아렌트, 데리다. 이렇게 대단한 철학자들과의 데이트라니, 주눅부터 든다. 하지만 교수님은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이론이 우리가 써먹을 수 없는 철학이라면 그게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며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어쩌면 말씀도 저렇게 예쁘게 하실까, 큰 위로가 되었다.
악은 어리석음이 아닌 생각없음
오늘은 ‘한나 아렌트’하고만 데이트를 하려 한다. 니체와 데리다는 다음 기회에. 아렌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다. 한나 아렌트를 알게 된 것은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그리고 강하다>(2014, 이봄, 슈테판 볼만) 라는 책을 읽고서다. 짧은 글이었지만 느낌은 강렬했다. 무엇보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 재판을 보고 <뉴요커>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에 ‘비판적 사유의 부재’에서 ‘악의 평범성’이 생겨난다고 분석했다. “아이히만을 당대의 엄청난 범죄자로 만든 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순전히 ‘생각 없음“이다.”라는 그녀의 통찰에 나는 소름이 끼쳤다.
아렌트가 생각하는 자아는 무엇일까? 그녀는 “자아는 언제나 ’복수‘고 ’관계적‘이다”라고 말한다. 자아는 철저히 외딴섬에 고립되어 있지 않고, 자아는 하나가 아니다. “나는 원래 이래...”라는 말은 자기를 고정시키고 상투적으로 이해해서, 결국 자신을 폄훼하고 ’식민화‘하게 된다. 그럼 상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데이트는 반복성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상대방의 새로운 면이 보인다. 까도 까도 새로운 양파처럼. 나 자신도 한편으로는 나를 잘 알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모르는 새로운 ’나‘ 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또 다른 나(me and myself)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나는 유일한 존재다
아렌트는 그녀의 이론 ’탄생성‘을 예수의 말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을 인용해서 설명한다. 교수님은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탄생성을 경험해야 한다”면서 “자기를 고착화 식민화시키지 말고, 끊임없이 내 속에 있는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라신다. 그리고 “나는 ’유일무이‘한, 대체불가능한, unique한 존재다”라고 써놓고 매일 주문을 외우라고 하신다. 교수님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 그래서 행복할 권리가 있는 존재인지 알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한나 아렌트는 ’나‘라는 존재는 ’취약한‘, 연약한 존재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무너지고 쉽게 포기한다. 새해에 거창하게 세운 계획을 삼일도 못 가서 포기한다. 교수님은 그럴 때 절망하지 말고 ’작심삼일‘을 매일 하라신다. 우리는 자기 안에서 좌충우돌 고민하고, 불면의 밤을 보내며 갈등하는 존재다. 우리가 취약함을 가진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끌어안을 때, 비로소 살아갈 힘이 생긴다.
글쓰기, 나의 숨구멍
나 자신의 정원을 가꾸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글쓰기‘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들 때, 글쓰기는 내 ’숨구멍‘이다.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이가 목소리를 내지 못할 만큼 아파할 때, 글쓰기는 내 ’목소리‘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도 있다고 알리고 싶을 때, 글쓰기는 내 ’입술‘이다. 글쓰기는 자기가 자기를 보호하는 방패요, 나만의 서사다. 글쓰기로 내가 몰랐던 나의 결을 느끼고 동료 인간을 만나는 것, 그 출발점은 내가 나와 만나는 것이다.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라고 노래하던, 약간의 떨리는 목소리가 매력적인 최양숙이라는 옛 가수를 추억하는 가을이다. 가을이 편지의 계절이긴 하지만, 이제는 카톡과 이메일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러면 어떠랴! 내가 쓰면 될 것을, 이 가을에 아들이 사목하고 있는 시애틀로 연애 편지를 보내볼까? 아니면, 하늘나라 가신 엄마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써볼까? 이미 두 편의 ’미소의 편지들‘을 보냈으니 이 편지를 받은 이름 모를 ‘너’들은 미소 짓고 있을까? 그들도 이 가을에 누군가에게 미소의 편지를 쓰면 좋겠다. 그럼 그 미소들이 이어져 이 세상은 더 밝아지고 모든 존재는 행복해질 텐데...
오늘 강남순 교수님 덕분에 철학자 한나 아렌트와 멋진 데이트도 하고, 미소의 편지도 보낼 수 있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다음번 ‘미소의 편지들’에는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그대들의 호기심을 작동하시라.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