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민주주의를 혐오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어떻게 죽였는지 두 눈 뜨고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패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의해 30인의 참주정치를 경험하고, 대안으로 민주주의를 도입했지만 폭력적인 정치체제의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민주주의 역시 다른 방식으로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목도한 것입니다. 참주제(독재체제)는 권력자만 처단하면 되지만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태도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만인 독재의 상태에 빠지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어떤 정치체제가 우월한지 보다 각각의 사람이 지혜를 사랑하고 정의에 대한 올바른 관념과 실행력이 더 우선해야 할 가치라고 보았습니다. 그 지혜는 일상의 삶을 위한 실용적, 기능적 지혜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위해 무엇이 올바른 가치인가를 분별하고 판단하는 합리적 사유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혜를 얻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최고의 정치적 덕목으로 보았습니다.
철학(philosophy)이란 말이 그래서 ‘지혜(philo)를 사랑한다(sophy)’는 뜻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합리적 사유와 태도를 갖지 못한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됐을 때 한 사회가 어떻게 타락하고 몰락하는지 우리는 역사에서 자주 목격합니다. 민주주의가 공산주의와 맞서는 선량한 정치체제이고 전체주의에 대응하여 더 우월한 정치체제라는 오늘날의 주장을 플라톤은 경계했던 것입니다.
파시즘의 창시자였던 무솔리니도 내각제 총리로 시작했고, 히틀러도 민주주의 방식에 따라 투표로 당선되었습니다. 학살자 전두환과 노태우를 지지한 것도 시민이고, 무능하고 부도덕한 윤석열에게 투표하여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도 민주주의 선거제도였습니다. 저렇게 미쳐 날뛰는 트럼프도 미국 시민이 투표하여 뽑은 대통령입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역시 세금 인하와 공공 지출 축소를 공언하며 친기업 정책을 표방했지만 시민의 투표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재정 위기에 빠져 나라 전체가 경제 파탄에 이르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주민을 집단 학살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도 선거로 당선됐고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민주주의 방식에 의해 대중이 선택한 결과입니다. 플라톤은 민주주의의 이러한 문제점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민주주의가 파시즘을 낳는 대리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통찰한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이 합리적 사유와 올바른 판단력을 가졌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상관없이 1인 1투표제를 갖는 것을 평등의 원리로 삼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평등하지만 모든 인간의 가치 판단 능력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외면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동된 대중은 자신이 주입받은 정보와 그것으로 인한 판단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하나의 신념으로 굳히게 됩니다. 자기 생각과 신념이 평등의 원리에 따라 공평하다는 생각, 그것이 민주주의 원리가 만든 대중 파시즘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신념은 집단화될 때 그 힘이 증폭됩니다. 그래서 파시스트들은 대중을 동원하는 데 열을 올립니다. 히틀러식 경례, 독재자의 군대가 행진하며 걷는 거위걸음, 대중 동원체제의 정점인 군사 퍼레이드나 매스게임(mass game) 들은 사람의 정신을 단순화시키고 폭력의 전위부대로 동원하는 데 매우 효율적입니다. 신념이 집단화되고 그것이 파시즘과 결합될 때 명분을 주는 것은 구원 의식입니다. 이 세계를 악으로부터 구원해야 한다는 명분은 세계 질서를 초월하여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과 태도를 갖게 합니다.
파시즘이 동원시키기 쉬운 첫 번째 조직이 군대입니다. 두 번째가 종교 집단입니다. 지난 21대 대선에서 11만 명의 통일교 교인과 10만 명의 신천지 교인이 국민의힘에 입당하여 경선부터 본선에 이르기까지 선거 결과에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이 최근에 폭로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불법 정치자금이 후원된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통일교와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악마화하던 개신교 대형 교회들이 윤석열 지지 대열에 합류했고, 이재명 악마화에 교인들을 동원했습니다. 전광훈, 손현보 같은 목사들은 노골적으로 특정 이념과 정치적 편향성을 대중에게 설파했습니다. 김장환 류의 정치 목사는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를 이용해 한국 보수 정치와 커넥션을 맺고 모종의 음험한 거래를 계속 해 온 것이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진 바입니다.
이들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단과도 협력할 수 있고 독재 파시스트를 지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단을 경계했던 것은 자기 이익에 반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기독교적 가치를 신봉하는 게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자기 이익을 신봉한 것이었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하면 진실을 왜곡하고 폭력도 용인(강요)할 수 있는 이익 집단이었습니다. 기독교 파시즘은 이익과 필요에 의해 선택된 결과입니다.
기독교 파시즘은 메시아 콤플렉스를 이용합니다. 기독교만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종교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교회만이 유일하게 하느님을 대리하고 예수를 독점적으로 소유한 기관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교회주의 기독교는 그래서 과격하고 폭력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종교 학살 사건 들은 자기들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메시아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부도덕한 정치가 이러한 종교 이데올로기를 이용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교회가 방향을 잃을 때 파시즘과 손잡게 되고, 스스로 파시즘의 전위가 되기도 합니다. 나치가 동원한 독일의 제국교회는 교회사에서 가장 야만적인 사건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를 통해 이러한 메시아 콤플렉스를 고발합니다. 선량하고 정의로운 개인은 사회를 좀먹는 악한 인간을 처벌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는 생각의 치부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장 무능하고 연약한, 그리고 부도덕하다고 손가락질당하는 여자 매춘부 소냐를 통해 치유해 나갑니다. 이 사회는 정치체제나 종교 집단의 메시아적 구원 의식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게 아니라, 따뜻한 인간애와 결합하고 연대하는 데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플라톤이 주장한, 철학이라는 합리적 사유와 함께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가치이며 덕목입니다.
종교가 사람의 체온을 잃을 때, 교리가 강화되고 그 교리가 자기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되면, 파시즘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게 됩니다. 체온이 떨어지면 면역력이 저하되고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지듯이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구원 교리에 파시즘의 바이러스가 침투해 있어도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교회에 지혜와 인간성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성 없는 자들이 구원을 힘주어 말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