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나에게 누구인가?
평생 신앙의 아우라 속에서 살아온 내게 아주 근원적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분은 내게 ‘주님’인가, 아니면 ‘임’인가? 묻게 됩니다.
주님은 주인의 높임말이고, 나를 소유한 분이란 뜻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가 곧 나의 주인이며
나의 임금님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교회 전례력에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이 있지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1925년 12월 11일,
당시 교종이었던 비오 11세가 무신론과 세속주의를 경계하고
그리스도의 왕직이 온 인류에 미치고 있음을 강조하는 뜻에서 제정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은근히 교종이 그리스도의 왕직,
곧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려고 한 것 같습니다.
예수를 ‘왕’이라 자꾸 이야기하다 보면,
신앙인들은 그 왕의 기사들이고,
그 권력을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같아 기분이 좋아질 수는 있지만
낮은 자로 오신 예수의 이미지와 복음적 관점을 잃어버릴 위험이 큽니다.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 왕, 임금, 주님으로 고백하기 전에
우리는 그분을 ‘임’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친밀히 다가오시는 분,
그분은 세상이든 교회든 모든 통치자들을 자리에서 내치시고
주변부로 밀려난 가련한 이들을 끌어올리시는 분입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우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벗’이라 ‘동무’라 부르던 예수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동무라 부르고,
우리도 그분의 동무가 되어
우리도 그분의 연인이 되어
죽어도 잊지 못할 임을 만나야 합니다.
박기호 신부님이 예전에 쓰신 책이 한 권 있지요.
<못다 부른 임의 노래>입니다.
그래요, 그분은 주님이기 전에 ‘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임이 부르던 노래를 마저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사무치게 임을 그리워하다 보면,
만해 한용운의 시어처럼 임에게 복종하고 싶고
그분을 ‘주님’이라 부르고 싶어집니다.
내가 그분을 너무 사랑하여
그분이 내 마음을 온통 차지하셨으니
그분은 ‘나의 주님’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주인이었던 자를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먼저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을 먼저 사랑하게 되면
그분은 임이 되고, 이윽고 주님도 되는 것입니다.
그분과 나누는 친밀함 안에서 살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이 참에 많은 성인들이 그분을 ‘임’이라 부르며
연모한 까닭을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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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