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야만의 시대에
더 나은 대통령을 바라는 기도사랑하올 우리 주님,
저희도 당신처럼 사랑하고 싶습니다.
너를 만나, 그대를 만나
사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더 기다리고 더 고독해져야 한다고
당신께서는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
정작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돌아보고 몸과 마음에 새기라고 하십니다.
역병 코로나 때문에 세상을 향해 너를 향해
나아가는 사랑이 차단되었습니다.
사랑이 그립고, 안타까운 몸살처럼 몸을 뒤척일 때
저희들의 가슴은 역병보다 더 거룩한 사랑으로 가득합니다.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 사랑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몸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탐욕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사적 이익을 탐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정치지도자를 갈망합니다.
부자들을 존중하면서도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존중하면서도
명료한 정치적 식견을 가진 사람이 필요합니다.
지속가능한 경제를 희망하면서
평등한 삶이 가능한 사회를 재구성하고,
이 아름다운 강산을 전쟁의 참혹한 벼랑을 밀어붙이지 않고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그 평화 안에서 자유와 행복을 만들어가는
그런 정치지도자를 원합니다.
따뜻한 정의와 분명한 사랑을 바랍니다.
그 사랑이 나라 전체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우리 안에 깃들어 있던 역병을 사라지게 하고
갈등과 증오, 원망과 분노 대신에
친절과 겸손, 배려와 용서가 우리 가운데 내려앉기를
고대하고 갈망합니다.이참에 소년공이었던 한 사람에게 당신의 축복을 바랍니다.
그이가 흠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고단한 생애만큼 상처 많은 사람입니다.
번듯한 학연, 지연, 정치적 인맥도 없이
늘 변방에서 외롭게 투쟁했던 그런 사람입니다.
차별과 배제로 밀려난 이들처럼
그렇게 고독한 사랑을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 아프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중심과 주변의 경계가 사라지고
더 이상 가난한 이들이 소외받지 않는
공정과 정의가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소서.
우리가 그이 곁에 동행하며,
그이가 나라를 걱정하듯이
우리가 그이를 염려하고 용기를 주고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 당신이 도우소서.
당신께 자비가 있고, 당신께 정의가 있나이다.
아멘.
2022년에 모처로부터 부탁을 받아 썼던 기도문입니다. 우리들의 염려와 상관없이 그 기도는 하늘에 수납되지 못했고, 다른 응답을 받았습니다.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었고, 그가 집권했던 3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양과 염소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려주었습니다. 급기야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통한 내란행위로 파면되고, 이미 벌거벗고 나선 염소들은 하나같이 국민 앞에서 법정에 서야 할 것입니다. 그리되어야, 위태로웠던 민주주의가 복원되고, 부당행위를 상식처럼 부리던 이들이 제 옷을 찢으며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면서, 매번 하던 고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비전으로 보자면 당연히 민주노동당의 권영국 후보에게 귀한 한 표를 던져야 합니다. 정치적 비전뿐 아니라 인간적 품격에서도 뒤지지 않는 후보입니다. 세 차례에 걸친 대선 토론을 보면서, 그이에게 고맙다, 고맙다, 말합니다. 진보정치의 정당성과 진보정치에 나서는 이들의 참신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인격모독적 발언을 자제하고, 진보정치의 향방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과제가 있어서 고민합니다.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사실과 상관없이 많은 논란을 빚어왔기에, 그이가 내란세력을 분명하게 청산할 수 있는 힘을 얻으려면 사실상 ‘압도적지지’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내심 여론조사가 예측하고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 기적적인 표차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달아이에게는 사전투표를 하라고 권했지만, 저는 본 투표일까지 고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번처럼 투표용지의 무게감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한편 이참에 교회문제에 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한국교회는 해방공간 이후 중요한 선거 대마다 적극적으로 교회의 입장을 표명해 왔습니다. 1950년 5월 30일에 치러진 총선거 때 대구교구의 최덕홍 주교는 <총선거에 임하는 가톨릭의 태도>라는 교구장 담화문을 발표해 “가톨릭 정신을 입법부에 널리 침투하기 위하여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정신적으로 우수하며 또 강력한 성격도 가진 가톨릭 대의원을 많이 보내야 할 것은 췌언을 요치 않는 바로서 본 주교는 교구 내 모든 신자들에게 이를 위하여 특별히 천주께 기구하며 각자의 직분과 역량에 따라 힘쓸 것”을 촉구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투표지침까지 세밀하게 공지해 두었습니다.
“① 총선거 일에 모든 교우는 가급적 미사에 참례하고, 국가를 위해 기구하며 될 수 있으면 영성체할 것. ② 반종교, 반교회 입후보자에게 투표함을 금함. ③ 교우 중 교회를 대표할 만한 인사(열심수계하며 교우다운 생활을 하는 자)가 출마하였을 때에는 교우들은 적극 후원할 것이요, 투표구에 교우 입후보자가 없는 지방은 가톨릭교회를 이해하고 옹호하는 친종교적, 친교회적 후보자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마 교회는 우리 사회를 비상시국으로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교도권이란 복음의 시각에서 세상사를 판단하고 신자들에게 가르칠 의무가 있습니다. 목자가 양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언제나 ‘중립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직무를 유기하는 일입니다. 이때 막연히 정의로운 사회를 운운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사실상 민주주의 존폐가 달린 ‘비상시국’에서 치러지는 일입니다. 우리 신자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선거 결과에 심대한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이 양들의 목소리를 듣고 응답하는 것은 목자된 자의 책무입니다. 그러니, 가톨릭교회의 교도권은 주춤거리지 말고 이번 내란사태를 단죄하고, 이 내란사태를 완전히 진압하고 평화를 가져올 후보를 선택하라고 신자들에게 권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선거 당일 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매 시간마다 성당의 종을 쳐서 신자들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 16, 13)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자신과 교회 안에 진리의 영이 당도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이에게 반대 받지 않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행하는 데, 자비를 행하는데 주저하는 사람들은 아직 진리의 영이 닿지 않은 사람들입닏. 옳고 그름이 명확한데 ‘교회일치’를 명분으로 뒷짐지고 물러나 한가한 소리를 하는 사제와 교회지도자에게 이번에는 성령께서 임하시길 기도드립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