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8일은 한국에서는 ‘어버이날’이었다. 그날 로마시간 오후 4시 언저리에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 추기경이 콘클라베 4차 투표에서 로마 가톨릭교회 제267대 교종으로 선출되었다. 그가 133표 중 80%에 이르는 105표를 받았다고 숫자를 밝히는 언론들은 단독보도를 앞세웠지만 그건 호사가들의 관심사일 뿐 사람들에는 앞으로의 일이 ‘여러모로’ 염려되었다. 4월 21일 선종한 교종 프란치스코의 짙은 그림자가 아직 선명한 까닭이었다.
새로운 교종의 명칭을 '레오 14세'(Pope Leo XIV)로 소개 한 후 그가 교종으로서 처음 대중들에게 모습을 나타내며 한 말은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La pace sia con tutti voi)”였다. 그는 레오 13세 이래 122년 만에 ‘레오’를 교종명으로 지정한 이가 되었다. 레오 13세라면 20세기가 동틀 무렵 ‘노동권과 사회정의’로서 교회사에 전해지는 교종이었다. 그런데 그가 레오 14세라 스스로 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른 기대는 금물이지만 차차 개봉박두일 것이다.
레오 14세 교종이 수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고, 교회법학으로 석‧박사가 되었으며, 그는 미국인이며 동시에 페루인이고,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출신이라는 등등이 그의 전력을 말해 주고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새로운 교종의 지향점을 대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보다는 그가 주교에서 추기경을 거치며 교종이 되어서도 자신이 사용할 문장 안에 단 한 번도 변치 않고 적어놓은 사목표어인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In illo uno unum)'가 더 큰 울림으로 전해진다. 5월 18일 즉위미사에서도 거듭 강조한 ‘일치’,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언제나 그렇지만 바티칸으로부터 ‘변방’(동의 안할 신자도 있겠지만), 분명 ‘변방’인 한국천주교회에 교종의 지향이 회칙이나 담화를 넘어 그동안 얼마나 영향을 주었을까? 선임 교종 프란치스코가 2014년 방한했을 때 교종이 타고 다닌 경차에 가까운 승용차(놀랍게도 그 차의 상표는 쏘울[SOUL]이었다)를 보고 교회 내외를 막론하고 그의 검소한 태도에 감탄했지만 한국주교단의 관용차는 달라지지 않았고, 그가 방한 첫 날 서울 중곡동 한국주교회의에 방문하며 방명록에 백 원짜리 주화보다 작은 크기로 ‘프란치스코’라고 쓴 겸손한 마음에 역시 놀라워했지만 그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 이제 새로이 취임한 교종 레오 14세와 한국천주교회는 어떤 발자국 소리를 낼 것인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다. 교종에게 기대할 일 이전에 우리를 돌아볼 일이다. 교종은 ‘새로운 교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오래된 미래’ 같은 주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복음자리를 시대에 맞추어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5,37)라는 말씀에 따라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 모두 올곧게 실천하는 일이 남아 있다.
새로운 술 부대가 마련되었다
술이 떨어졌다 말하지 말고
물을 항아리에 부어라
가난한 이의 눈물이면 어떠리
손잡고 더불어 하는 일이라면
기쁨의 축제가,
일상의 기적이,
내 앞에 있으니
김유철 스테파노.
한국작가회의 시인. 삶예술연구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