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죽음 앞에서, 내 사랑의 크기를 가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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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죽음 앞에서, 내 사랑의 크기를 가늠한다
  • 한상봉
  • 승인 2025.04.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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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한상봉 복음묵상 (요한 18,1―19,42)
안드레아 만테냐, [죽은 그리스도]

 

“각진 각목이 어깻죽지와 등허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곧은 물성대로 활짝 퍼지며 내 몸을 비틀 때,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헐떡이는 일초와 일초 사이, 손톱과 발톱 속으로 그들이 송곳을 꽂아넣을 때, 숨, 들이쉬고, 뱉고,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신음, 일초와 일초 사이, 다시 비명, 몸이 사라져주기를, 지금 제발, 지금 내 몸이 지워지기를”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광주항쟁에 마지막까지 참여했던 이가 고문받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 군병들에게 넘겨졌고, 군병들은 사정없이 예수님을 매질했습니다. 당시 동원된 로마군병들은 사마리아 출신으로 가늠되는데, 이들은 항시 유다인들에게 멸시를 당해왔고,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달고 있는 예수님에게 앙갚음을 하듯이 모질게 대했을 게 뻔합니다. 군병들이 내리치는 채찍에는 쇳조각이 붙어있기 마련이어서 예수님의 몸에 채찍이 닿을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선혈이 울컥하고 튀었을 것입니다.

무죄한 이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은 죽어서야 끝날 것 같았다. 그러니, 우리는 게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이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는 말을 이해할 만 합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고, 땅에 엎드려 하느님께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하고 하소연하였던 것입니다.(마르 14,33-36 참조) 교회에서는 오늘의 복음에서 이 수난극을 길게 생생하게 연출하며 읽어보라고 신자들에게 요구합니다. 저 분이 그렇게 모진 고통을 당하신 것은 당신들의 죄 대문이라는 사실을 뼈에 새겨두라는 전갈입니다. 그렇게 죄의식에 기반한 종교가 확대재생산됩니다. 신자들은 이승에서 지은 죄를 다 갚지 못하면 저승에서 예수님이 받았던 것처럼 모진 고통을 영원히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 예수님을 심문하고 고문하고 처형한 사람들은 가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호사를 누리고 있는 성전세력입니다. 정치-경제-종교적 기득권층입니다. 이들이 그 백성 가운데 더 가련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당을 쥐어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동원했습니다. 이른바 한국사회의 태극기 부대는 명확히 두 패가 나뉩니다. 강단과 제단과 무대에 서서 대중을 선동하는 특권계급과 일부 기득권층,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변방으로 밀려난 가난한 노인들과 사회적 불만세력입니다. ‘선동과 동원’으로 지극히 순정한 영혼이 참살된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평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루카 6,21.24)고 말하던 분입니다. 성전을 뒤엎고, 성전세력을 ‘강도’처럼 비난하던 분이었습니다. 회당장, 율법학자, 대지주와 대사제는 자신들이 예수님에게 능멸당했고, 기득권을 위태롭게 한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결국 가난하고 무력한 이들을 옹호하던 그분의 열정이 성전세력의 분노를 사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운명을 달갑게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제대로 예수님 제자처럼 살고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서 수치를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며 내 죽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픈, 그러나 순정한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릴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합니다. 하느님 축복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들은 아마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부활절 새벽에 아직 동이 트기전 어둠 속에서 그분에게 달려가고 싶을 겁니다. 그분 곁에 머물고 싶을 겁니다. 그분의 대한 내 사랑의 크기를 가늠해 보는 하루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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