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이었나 행운이었나 하느님이 내 마음의 물꼬를
터버린 그날부터 그대는 나의 불이며 물이며 밤
이었습니다 그대는 나의 언론이며 창이며 영
감이었습니다 때로 그대는 내 상상력이고
감격이며 희망이며 가슴 설레임이었습
니다 아아 그대는 내 기쁨의 샘이었
다가 영혼을 불러내는 오선지였다
가 풀밭에 내려앉은 팬플루트
소리였다가 바람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이 오늘밤은 내
인내심의 십자가입니다
그런 당신이 오늘밤
은 내 외로움의 수
평선입니다 그
런 당신이 오
늘밤은 빙벽
에 흐르는
침묵입
니다
고정희 시인의 <삼각형 사랑>입니다. 요한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고 합니다. 그곳에 라자로와 마르타, 마리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는 복음서에서나 라자로는 예수님에게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라자로의 누이들도 예수님 아주 친밀하고 허물없는 관계로 나타납니다. 갈릴래아 사람 예수님이 어떻게 유다 지방의 예루살렘 인근 베타니아에 사는 사람들과 우정을 맺을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예수님이 한 때 예수살렘에서 머문 적이 있었던 것일까? 알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다니러 왔다가 우연히 그를 마주쳐 평생의 친구가 되었던 것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한번 만나 영원한 사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라자로가 예수님과 그 일행에게 잔치를 열어주었던 모양입니다. 여느 때처럼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마리아가 보이지 않습니다.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아 있었는데, 난데없이 마리아가 삼백 데나리온이나 하는 값진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고 합니다. 삼백 데나리온이면 당시 노동자의 삼백 일치 임금에 해당합니다. 요즘 우리 돈으로 따지자면, 2~3천만 원어치는 될 것입니다. 이 나르드 향유는 히말라야에서 수입되는 희귀한 것이어서 그만큼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요한복음서에서는 콕 집어서 유다 이스카리옷이 여기에 항의했다고 전합니다만, 이 이야기는 모든 복음서가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전하기 때문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음이 분명합니다. 아마 제자들은 모두 당황하고 헛갈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고, 보잘것없은 이들을 볼 때마다 자기를 보듯이 하라는 말씀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값진 향유를 허투루 낭비하는 마리아를 책망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걸 보고 예수님이 “유다 말이 맞다, 마리아. 그편이 더 나았을 텐데...” 하였다면, 마리아는 민망했겠지만, 예수님의 언행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달리 말합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제자들에겐 두 가지 점에서 충격적인 말입니다. 제자들은 곧 시련의 때가 지나고 곧 좋은 날이 오리라 기대하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 나라가 오면 왼편 오른편이 누가 앉네, 하며 다투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례라니요. 우리가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이라니요. 예수님이 연행되자 제자들이 모두 흩어진 이유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외롭게 죽어가도록 달아난 이유입니다. 의로운 사람 하나가 죽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들에게 납득시키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예수님처럼 사랑하면 예수님처럼 죽는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지요. 다른 한편 유다처럼 예수님의 일관성 없는 태도에 실망해 그분을 배신할 마음까지 먹었다고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일차원적 인간이 아닙니다. 마리아에게 나르드 향유는 단지 값비싼 향유가 아닙니다. 마지막 길을 가실 분에게 드리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인간적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성 제자들과 달리, 스스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장담하는 그들과 달리,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하고, 예수님의 가실 길을 예비하고, 예수님과 더불어 고통 가운데 있기로 작심한 마리아를 두고, 어떤 학자들은 그녀를 ‘첫번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며 동시에 권력을 함께 탐하는 자는 마리아의 형언할 길 없는 사랑과 존경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을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선물로,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해 준비한 것이 순정한 나르드 향유입니다. 마리아는 <삼각형 사랑>의 깔대기 위로 그 향유를 부어넣었던 것입니다. 그 마음을 아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네가 알고 네 마음을 내가 알지, 하는 ‘염화시중’(拈花示衆)의 이치를 깨닫는 순간입니다. 마리아는 꽃을 들어보였고, 예수님은 여기에 화답하십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