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접할 때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입니다.(마태 20,1-16)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를 비유하신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그 선한 포도밭 주인은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에게도, 오후부터 일한 일꾼들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지불합니다. 불공평도 이런 불공평이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일을 한만큼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정의가 아닐까요?
선한 포도밭 주인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한 때는 ‘시장’에 대한 문제 제기의 목소리가 커질 때쯤입니다. 우리는 노동시장을 통해 우리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습니다. 정의로운 임금은 노동자가 일한 시간과 능력, 실적 등을 고려한 액수입니다.
그런데 노동시장에 노동력을 판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업자입니다. 예전에 취업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때는 실업자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습니다. 무능력하고 게으른 사람, 국가의 복지혜택을 바라는 사회의 낙오자라고요. 그런데, 요새는 젊고 유능한 실업자들이 많아졌습니다. 게다가 일을 하는데도 가난한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이를 ‘노동빈곤’(working poor)이라고 합니다.
지난 2월 26일 인천 서구 심곡동의 한 빌라에서 살던 문하은양(12살)이 혼자 집에 있다가 화재로 숨졌습니다. 그 시간 하은양의 아빠는 신장투석을 받고 있었고, 엄마는 인근식당에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하은양의 집 우편함에는 체납요금독촉 고지서가 한 가득이었다고 합니다. 구청은 하은양 가족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차상위계층도 아니고 기존 복지제도 지원 대상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소득이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사람이 존엄성을 누리면서 살려면 필요한 돈의 액수가 있습니다. 최저생활도 지탱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국가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지불합니다. 그 액수는 너무 적어 가난을 벗어나기에는 어림도 없고, 기초생활 유지도 어렵습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존엄한 삶을 보장해주려면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청년실업자가 증가하는 요즘, AI가 사람의 일을 대체하기 시작하는 요즘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제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존엄한 삶의 기본을 국가가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반드시 현금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시장’을 통한 정의가 아니라 ‘존엄성’에 기초한 정의를 말해야 할 때입니다. ‘시장’을 통한 정의의 관념으로는 선한 포도밭 주인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일꾼들이 하루에 필요한 액수를 모두에게 지불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수많은 하은양 가족들은 그런 의로운 나라를 고대할 것입니다.
심현주(율리안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가톨릭 신학과에서 사회윤리를 전공하고, “글로벌 문화와 지역 문화 간의 관계”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현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대우교수,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독일 Ordo Socialis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