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안전한 보루를 제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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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안전한 보루를 제공하지 않는다
  • 조민아
  • 승인 2025.03.3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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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조민아 복음묵상 (요한 4.43-54)

예수께서 갈릴래아로 돌아오셨습니다. 고향에서 그를 맞이하는 것은 환영이 아니라 의심의 시선입니다. 기존 질서의 수호자들은 그를 평가하고 무시하죠.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그를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그의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한 왕실 관리가 예수 앞에 섭니다. 그도 기적에 관한 소문을 듣고 달려온 사람이었지만, 그의 믿음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뒤로하고, 기적이 아니면 살아날 수 없는 자리에서 예수를 찾습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무릎을 꿇은 것이죠. 그의 청은 간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그에게 일단 거리를 둡니다. “너희는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내란 사태 이후 탄핵반대를 주장해온 일부 신앙인들은 유난히 “믿음”을 강조합니다. 가슴에 성경을 품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믿음 가운데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자,” “세이브 코리아”를 외치죠. 국가 안보를 내세우고 공산주의, 동성애가 사회적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신앙의 본질이라 외칩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버림 받은 이들과 함께 유랑하며 하느님나라를 선포한 방랑 설교자 예수가 말씀하신 믿음과는 다른 듯 합니다. 그들은 힘을 증명할 확실한 것을 믿고 싶어하죠. 절망과 불안을 대체할 안전한 보루, 독재도 불사하는 권력이 그들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들은 또 자신의 믿음을 위협하는 새롭고 불확실한 것들을 비난하고 증오합니다. 누군가를 탓하고 혐오하고 제거하는 것이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라 믿습니다.

왕실 관리는 어떤가요? 기존 체제가 제공하던 확실성에 기대어 살던 그는 방랑 설교자 예수의 말씀을 믿고 떠납니다. 확신과 안전을 뒤로하고 새로운 부름을 따라 한 번도 걸어 본 적 없는 길을 떠난 것이죠.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하느님을 향한 열망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안온한 보루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나를 지켜주던 보루를 던지고, 내가 붙들고 있던 확신을 내려 놓고, 낯설고 깊은 불확실성의 세계로 온전히 몸을 던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미세한 생명의 떨림과 심장의 울림에 자신을 맡기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향해 닦이지 않은 길을 떠나는 것, 그것이 사랑이신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여정입니다.

 

조민아 마리아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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